▲ 곽경택 감독이 지난 20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개봉을 앞두고 스포티비뉴스와 만났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유지희 기자]곽경택 감독이 영화 '장사리'로 돌아왔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약 820만 관객수를 동원한 '친구'(2001) 등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왔던 것처럼, '장사리'는 곽 감독의 DNA가 묻어있다. 17살 피난선을 타고 남한으로 내려온 평안남도 출신의 아버지 이야기다. 이는 곽 감독이 '장사리'를 통해 '반전(反戰)'을 그릴 수 있었던 출발점이자 이유다.

'장사리'는 어리고 힘 없는 학도병들의 이야기 뒤에 강대국들 이권 다툼에 휩쓸렸던 과거 한반도 상황을 담았다. "반전주의자이지만 평화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밝힌 곽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당시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더 나아가 지금의 우리나라가 과거를 통해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 감독 곽경택, 김태훈,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공동제작 필름295) 개봉을 앞두고 스포티비뉴스가 곽경택 감독을 만났다.

'장사리'는 단 2주 간의 훈련을 받고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평균 나이 17살 학도병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9월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 작전 하루 전 경북 영덕 장사리에서 벌어진 실제 전투다.

이하 곽경택 감독과 일문일답이다.

-'암수살인'(2018,각본·제작) 이후 '장사리'로 돌아왔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영화를 열 몇 편 정도 했고 나이를 먹어가서 여유가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긴장되고 설렌다.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태풍'(2005)을 했을 때 젊은 혈기에 모든 걸 쏟아붓고 개인적으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이즈가 큰 작품, 더구나 배와 물이 결합된 작품에 대한 기피가 없었다고는 말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번 더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면 굉장히 더 열심히 잘해보자 생각했었다. 이번 영화에 참여하면서 전작에서 했던 실수, 누수를 최대한 줄이려 했다. 그래도 안 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있더라. 그래도 어쩌겠나. 할 줄 아는 게 이거(영화)밖에 없는데.(웃음)"

-왜 이 작품이어야 했나.

"다른 두 작품을 준비 중이었는데 잘 안 풀렸다. 그 이야기가 주위에 전해졌는지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에게 '장사리'를 제안 받았다. 처음엔 '인천상륙작전'(2016) '포화속으로'(2010)와 비슷한 작품이라서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죄송합니다 제가 할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거절했는데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고, 장사리라는 메인 소재만 있으면 시나리오를 다시 써도 괜찮다고 하더라."

-'장사리'가 한국전쟁을 다룬 기존 작품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나.

"오히려 차별보다는 일맥상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마이너리티에 대한 조명이지 않을까. 영화에는 세상에 알려진 영웅이 없다. 다른 작품에서 이미 그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나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장사리 전투는, 있었다는 것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건이다. 국가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많은 갈등이 있지만 평화라는 돔 속에 살고 있다. 고마움이 있다."

▲ 곽경택 감독이 지난 20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개봉을 앞두고 스포티비뉴스와 만났다. ⓒ한희재 기자

-제작보고회부터 평안남도 출신의 아버지 얘기를 많이 했다. 부친이 큰 영향을 미쳤나.

"굉장히 크다. 성필(최민호) 캐릭터는 '가족들과 피난을 내려오다가 혼자 남겨졌다면'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이건 아버지 삶에서 왔다. 여러 명의 인물을 통해 각자의 사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륜(김성철)이가 11 남매이고 친적집에 살았다는 것도 실제 삼촌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밥상머리에서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없었을 거다."  

-반전(反戰)에 대한 생각은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나.

"아버지로부터다. 반전(反戰)이라고 해서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는 강자의 역사이지 않나. 한국전쟁은 우리 힘으로 독립을 못해서 발생한 비극이다. 우리가 힘이 없으면 또 당한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극 중 이춘복이라는 인물을 네거티브하게 그린 이유도 당시 어른들은 내게 한심했기 때문이다. 아무 준비 없이 아이들을 그렇게 내몰아야 했나."

-영화 초반 20분 가량을 전투 신으로 채운다. 클라이맥스일 수 있는 장면을 앞부분에서 보여주는데. 

"학도병들의 상황을 관객들과 함께 모르게 하고 싶었다. 배 안에서 구토하고, 밖을 나가보니 정신 없는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들을 관객들도 함께 느꼈으면 했다."

-영화의 주제도 앞부분에 담았는데.

"그 당시 17살이었던, 전투에 참가한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도병들은 애국심보다 의협심이 컸다. 위험하다는 인식은 밑바닥에 있지만 의협심이 강한 친구들이 애국심을 끌어안고 자원했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상황 대처력이 있었겠나. 뒤죽박죽된 상황이다. 민족끼리의 아픔이지 않나. 그걸 초반에 보여주고 싶었다. 또 나이를 들고 난 후에 한국전쟁에 대한 정의가 되더라. 강대국들의 이념 대리전이다. 그런 것들이 확실히 인식되면서 과연 이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전쟁은 빨리 끝나야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상황, 인식에 대한 혼돈을 집어넣었다."

-당시 학도병의 적(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군의 모습을 최소화해서 보여준다. 그렇다보면 관객이 캐릭터들에 몰입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생기지 않나.  

"각색 전에 받았던 처음 시나리오는 인민군이 그렇게 표현돼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물들이 이 영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인물들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떤 전쟁영화든 강력한 악당의 전형이 상징물처럼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죽임으로써, 넘어섬으로써 해결되는 영화가 아니다. 학도병의 희생 이야기, 여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애초 시나리오 내용에 있던 부분을 없앴다. 적(敵)은 규모, 사이즈로 표현했다."

▲ 곽경택 감독이 지난 20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개봉을 앞두고 스포티비뉴스와 만났다. ⓒ한희재 기자

▲ 곽경택 감독이 지난 20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개봉을 앞두고 스포티비뉴스와 만났다. ⓒ한희재 기자

-학도병 이야기라서 액션 신을 쓰는 데 한계가 있다. 어떻게 찍었나.

"선택 기준은 '처절함'이었다. 또 '내일을 향해 쏴라'(1969)를 몇 년 전 다시 보면서 느낀 게 스멀스멀 다가오는 공포가 크더라. 학도병 700여 명이 갔지만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식량과 물자가 부족한 상황 등에서 이명흠(극 중 이명준 실존인물) 대위가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아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적(敵)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 등을 고민하면서 이들에게 멀리에서 날아오는 포탄, 해변가의 기관총 등으로 그런 공포감을 표현했다."

"현장에서 아이디어도 나왔다. 고현웅 무술 감독이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무술팀을 배치해 데모로 찍어왔는데 참 잘했더라. 카메라 감독도 강력한 샷만 건질 수 있다면 괜찮다고 해서 만들어진 신도 있다."

-극 중 배우 김명민(이명준 대위 역) 분량이 예상보다 적더라. 배우 메간 폭스(매기 역) 분량을 위한 편집이 있었나.

"아니었다. 메간 폭스가 현장에서 디렉션을 안 따라주면 자르려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잘 따라와주더라. 처음엔 서로가 어색했지만.(웃음) 명민 씨에게는 '학도병 이야기이지만 처음 이들을 이끌고 마지막에 억울한 입장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출연 제안을 했고 가슴 아픈 이야기에 공감해줬다."

-종군기자 매기 역이 없어도 학도병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나.  

"나도 처음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정체가 없는 허구적 인물이 왜 굳이 필요하느냐라고 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당시 실존 종군 기자였던 마가렛 히긴스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고 단독영화는 아니더라도 조명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분을 모델로 생각하고 매기 역을 만들었다. 또 장사리 전투와 군 본부를 최소한이라도 이어줄 사람도 필요했다."

▲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포스터.

'장사리'는 오는 25일 개봉한다.

스포티비뉴스=유지희 기자 tree@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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