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조선에 여성 사관이 있었다? 진실을 기록하는 용기있는 여성 사관, 구해령의 이야기를 담은 MBC 수목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극본 김호수·연출 강일수 한현희)이 막을 내렸다. 결혼하지 않겠다며 족두리를 쓴 채 도망쳐나와 당당히 시험에 합격,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관으로 성장해가는 조선의 첫 문제적 여사(女史) 구해령의 이야기는 탄탄한 성장기, 전복의 쾌감, 그리고 설레는 로맨스가 함께했다. 왕자님과의 결혼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불행이라 외치는 여주인공이라니! 

전에 없던 사극, 전에 없던 조선 여인 캐릭터에 뜨거운 호응도 이어졌다. 이 당찬 이야기의 중심, 타이틀롤 구해령을 연기한 이가 바로 배우 신세경(29)이다. 쏙 녹아났다는 말이 부족해 보였다. 여성이 꽃이 되길 요구받던 시기, 다른 꿈을 꾸며 스스로가 불량품이라 자책하던 여인 구해령이 제 힘으로 궐에 입성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 목소리로 말해가는 순간순간, 구해령에게서 신세경이 보였으니까. 

신세경은 10년 전 화제의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사랑을 고백하지도,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했던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10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탄생한 새로운 사극에서 왕자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제 길을 걷는 조선시대 커리어 우먼이 됐다. 당당하고 씩씩하고 아름답게 성장을 증명한 그녀, 신세경을 만났다. 

▲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일단, 신세경 유튜브가 화제다. 구독자가 66만이라고.

"이렇게 사랑받을지 몰랐다. 감사하다. 예상하지도 않았다. 요리하고 그런 걸 좋아해 일기쓰듯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는 요소를 찍다보니까 먹을 것 해먹고 강아지 산책시키고 한다. 일상이라 하면 그게 다다. 편집도 다 제가 한다. 파이널컷을 독학했다. 잘라다 붙이기만 하는데 그 이상으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자의반 타의반 슬로우를 지향하는 채널이 됐다. 실버버튼 달라고 유튜브에 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못받았다. (웃음)"

-늘 다른 사람이 쓴 대본, 구상에 따라 연기하다 직접 모든 걸 하는 만족감이 있을 듯하다.

"맞다. 그런 만족감이 있다. 남이 쓴 대본 따라 연기했는데 이건 기획 출연 촬영 편집 모두가 신세경이다. 편집하는 재미가 있다. 컷의 길이에 따라 느낌이 바뀌는 게 보이니까 그 재미가 있더라. 연기에도 영향이 있을 거다."

-'신입사관 구해령'이 막을 내렸다.

"촬영을 다 마치고 한 주 정도 방송을 기다려보는 게 처음이다. 보통 찍음과 동시에 그날이나 다음날 방송이 됐다. 묘한 기분이다. 마무리를 시청자 분들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고 제가 만족스러운 만큼 시청자도 만족해주셨으면 좋겠다. 저로선 좋은 결말이다. 서로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3년이 지나 구해령은 승진해 후배가 생겼고, 이림과의 사랑도 계속되고 있다.

"수습을 거치고 정직원이 된 셈이다. 3년이나 걸린다니 진짜 '빡세다'.(웃음) 시대상으로 봤을 때 저는 이미 혼기가 지난 노처녀지만 대군이 혼인 안하고 머물러 있기는 한다. 어떻게 그리실지 궁금했는데 귀엽고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마무리한 것 같다. '결혼해서 오래오래 살았습니다'가 멜로영화의 보통 해피엔딩이라면 해령에겐 혼인이라는 것 자체가 심각한 갈등 요소다. 해령은 노처녀로 살고싶고 부부인으로 살기가 싫은 사람이다. 이림과의 혼사를 거절하고 그 이야기를 할 때 내심 걱정했다. 구해령이라는 캐릭터의 성향과 내 삶을 살아가겠다는 흐름이 초반부터 있긴 했지만, 멜로 중심에 있는 여자주인공이 '나 혼인 싫어' 하는 걸 공감해주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봐주셨다. 그런 시대가 됐다는 말씀에 적극 공감한다."

▲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주체적 여주인공 해령은 사극에선 보기 힘들었던 인물이다. 이질감이 느껴질 법도 하다.

"고민을 좀 했다. 제가 이전에 출연했던 사극과도 결이 다르다. 클래식한 정통 사극 톤이었다면 이번엔 판타지가 가미돼 있다. 게다가 실제 시대상과는 걸맞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가 괴리감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조선시대 여성이라면 자고로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하는 고정관념에서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구해령은 '조선시대를 살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던 여성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작품이니까."

-'신입사관 구해령'이란 작품을, 구해령이란 인물을 몹시 좋아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알았나. 너무 만족스럽고 너무 좋았다. 어떤 기분이었냐면, 해령이 족두리 단 채로 별시를 치르겠다고 달려가는 신이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여성 중에 규원 안의 꽃으로 내 삶을 끝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내 꿈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 거다. 해령이 그 절규를 이뤄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그 이후에도 묘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낀 장면이 많았다. 단순이 일을 한다는 걸 넘어 보람을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하백의 신부' 등 전작을 봐도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생각도 든다.

"캐릭터의 주체성만을 놓고 작품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작품이 다양한 것의 집합체이기도 하고 캐릭터만 놓고, 이야기만을 놓고 결정하지 않는다. 종합적으로 놓고 그 여러가지의 합들이 좋아 참여해야겠다 했던 작품들이 공교롭게도 주체적 여성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취향이나 개인적인 지향이 그런 여성 캐릭터일 때 더 끌리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된 계기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데, 시대가 바뀐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저로서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건 '신입사관 구해령'이 단순히 성별의 차별에 대항하는 작품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우리도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더더욱 아끼게 되나보다."

-제작기간이 길었다. 

"첫 촬영이 4월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되고 체력적으로 여유있게 촬영한 게 처음이라 너무 행복했다. 대사를 온전히 습득하고 외울 수 있다는 시간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온전히 연기하는 데 집중하는 행복이 이런 거구나 느꼈다. 저뿐 아니라 스태프도 생기와 에너지가 다르다. 기와 에너지를 상대 배우에게만 얻는 게 아니다. 그런 점들이 달랐다."

-완성도 높은 비주얼, 아름다운 영상미도 돋보였다.

"시각적인 요소를 짚어보자면 사관복도 여자 사관이 역사에 없었기에 창조를 했다. 그런 것도 너무 마음에 들고, 사관복의 하늘색도 여름의 자연과 잘 어울렸다. 파릇파릇 푸릇푸릇한 정서다. 비주얼이 잘 나왔다 생각은 했지만 사실 야외촬영은 아비규환일 때가 있다.(웃음) 대사하고 있는데 동정 속에 벌레가 타고 들어하기도 하고, 습한 계절에 벌레와 동거동락하며 찍었다. 실상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이런 곳에 우리를 데려오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했다. 방송 나오는 장면을 보면 너무 예뻐서 납득할 수밖에 없고 그랬다.(웃음)"

▲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이림 역 차은우와 호흡은 어땠나.

"지난 4월 8일이 첫 촬영이었다. 첫 촬영과 방송 시작의 격차가 어마어마해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요새는 시청률 기준도 모호할 뿐더러, 의미와 메시지에 더 의미를 두고 작품에 임했다. 그처럼 상대 배우와의 합에서도 확신이 있었다. 이 친구가 표현하는 캐릭터가 대본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인다는 확신. 적역이라는 생각도 했다. 20년간 녹서당에 갇혀있다 이제야 세상에 나온,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인물이었다. 차은우가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가 믿으면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얼굴천재로 불리는 상대와 연기하는 게 신경쓰이기도 했나?

"사실 전작에서 합을 맞춘 분들도 다 잘나셨다. 다들 빛나는 분들이다. 저희가 시각적 합도 보여드릴 수 있지만 캐릭터의 합도 보여드리겠다 생각했다. 처음부터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투샷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시겠지 믿으며 했고, 믿은 만큼 신선하고 푸르게 잘 나왔다. 저는 좋았다.(웃음)"

-드라마의 타이틀롤을 처음 연기했다.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작품이 남녀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까지 심도있게 그린다. 다양한 이야기를 가볍지 않게 다룬다. 처음에 임하기로 결심했을 땐 약간 부담감이 있었지만, 촬영하며 보니 혼자 짊어지려 애쓸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호흡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어우러졌다. 무거운 부담보다는 책임감이 있었지만, 기분좋은 책임감이었다. 극을 이끄는 한 사람으로서 감독님과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극중 해령이라는 인물이 끌고가는 선이 중요하다보니 의문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이 생겼다. 그 부분을 들어주셔서 기뻤다." 

▲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어떻게 의문과 의견을 맞춰갔나.

"신기한테, 작가님이 동갑에 여성분이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마치 제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듯 생각이 너무 같아 놀랐다. 작가님이 동갑에 여자분이시라는 거다. 또 놀랐다. 이후 받은 대본에서도 생각이 크게 다르거나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은 없었다. 작가님도 좋아하셨다더라. 마치 '내가 생각하던 바를 이 대본에 적어주셨어' 느낀 것처럼, 서로 주고받는 시너지가 좋았다."

-작품을 보면 구해령이 마치 신세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스로도 해령이 나같다 생각하며 연기했나.

"처음부터 느꼈다. 해령은 가진 불씨는 같은데 저는 사회화돼서 표현 못한 걸 가감없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행복했다. 네, 바로 저다.(웃음) 일을 하는 거지만 일을 떠나서도 즐거움을 느끼며 참여한 순간이 많다. 특히 이 작품은 보신 그대로다. 오라버니에게 '한평생 오라버니가 부러웠고, 집 밖에서 쓸모있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말하는 장면도 그렇고, 대사들이 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 주옥같은 구절구절이 많았다. 평상시에 표현하고 싶었던 상당부분을 구해령이 대신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공감과 지지를 보낸 시청자도 많았다.

"모든 걸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지만 되도록 챙겨보기도 했다. 저는 그런 반응들이 굉장히 뿌듯했다. 이 일을 함에 있어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부분이다. 시청자들의 공감, 이 의미를 알아봐주시는 것. 기뻤고 행복했다. 단적인 예로 혼인에 대한 에피소드라든지. 이전 다른 사극에서 보여주지 못한 갈등에서 여주인공의 태도를 보시고 전적으로 공감해주시고 지지해주실 때 너무 행복했다."

▲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신입사관 구해령'을 마치니 의욕이 더 생기나.

"긴 촬영을 했지만 체력이 축날 정도는 아니어서 '끝나면 바로 뭐해도 되겠는데' 생각도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 체력 앞에서 겸손해졌다. 휴식을 취하면서 차기작을 고민해야겠다. 저는 잘 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도, 제 균형감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쉬고 충전이 돼 있어야 참신한 기분으로 새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겠더라. 저같은 경우는 대단히 큰 변화를 꾀하는 것처럼 안 보이더라도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인물이라 생각하면서 나름의 변화라 생각하며 임한다. 비록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변화다. 새로운 기분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담뿍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한다."

-변화가 안 느껴질 리가. 10년 전 작품이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그 안타까웠던 '세경'을 연기했다. 더구나 현대극에서.

"그렇게 보면 많이 다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10년 전 ('지붕뚫고 하이킥'의 '세경'은) 모든 말을 삼키는 캐릭터였다. 지금은 조선시대에서 모든 말을 다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180도 다른 것 같다. 이게 판타지 요소가 가미돼 있고 픽션의 요소가 있지만 이런 작품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다는 데 감사하다. 그걸 내가 연기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마치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처럼 느껴졌다니까 또 뿌듯하기도 하다."

-스스로 부침을 느낀 적도 있었나.

"20대 초반. '하이킥' 이후다. 큰 사랑을 받아서 정신없이 살았던 시기다. 슬럼프라 말하기 부끄럽지만 힘든 시간이었다. 스무살이라 뭘 몰랐고 알기도 힘든 때다. 스케줄은 너무 많고 당장 일정이나 예정된 작품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일한 시간이라, 축복인데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정신없이 보내다가 회사에 도움을 청했고 마음을 돌볼 시간을 보냈다. 그 뒤에는 마음을 잘 돌보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체크하시더라. 그 이후부터는 괜찮았다. 이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 같다. 선배님 등을 보며 알게 모르게 배우기도 한 것 같고."

-이번엔 어떻게 쉴 계획을 세웠나.

"전혀 계획 없다. 지난주 촬영 마치고 바로 밀린 스케줄 하고 인터뷰 하고 좀 쉬고. 여행 운동 체력회복… 그리고 강아지들과 시간 보내고 그러지 않을까. 유튜브로 보시게 될 거다. 이젠 크리에이터로서 본업에 충실하려 한다.(웃음)"

▲ 배우 신세경. 제공|나무엑터스
-'신입사관 구해령'은 신세경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그동안 해온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다. 차별하면 안되니까.(웃음)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 봤을 때 가치관과 가까이 맞닿아 있고 정신적인 고통이나 고민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온전히 연기에 임할 수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기억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해령이를 보내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해줄 말? '너 살던대로 잘 살아라!' 그렇게 해도 걔는 잘 살 것 같다. 그리고 '굴복하지 말고!'"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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