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조커' 포스터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이젠 고(故) 히스 레저를 보내줄 때가 됐다. 영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는 DC 최고의 빌런, 조커의 기원을 파고든다. 배트맨을 향해 "넌 날 완성시켜"라고 읊조리던 '다크 나이트' 속 조커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조커'는 이전 DC 히어로물은 물론 숙적 배트맨과도 독립된 한 인물의 서사를 새롭게 썼다. '조커'(Joker), 세상을 웃기고 싶었던 남자가 미쳐버린 세상에서 택한 길은 미친 세상을 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TV쇼 애청자인 그는 진행자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 같은 코미디언을 꿈꾼다. 허나 현실은 쓰레기로 들끓는 고담시의 행사 광대다. 부르는 곳이든 어디든 나가 웃음을 파는 게 그의 일이다. 뜨거운 열망과 순진한 선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그를 냉소하며 모욕한다. 상담사조차 '세상은 당신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일갈한다.

일그러진 얼굴도 미소로 바꿔주는 광대 분장처럼 그의 삶에도 기괴한 웃음이 덧칠돼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그는 이따금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광대의 웃음에 젊은이들은 웃는 대신 주먹과 발길질로 응수한다. 시장에 출마하는 거부 토마스 웨인을 구세주로 믿는 늙은 어머니는 행복할 리 없는 아들을 늘 '해피'라 부른다.

그는 제 삶이 비극임을 절감하면서도 어떻게든 멀쩡히 살아보고자 애쓴다. 어느날 그는 동료가 준 총 한자루를 손에 쥔다. 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바뀐 듯 들뜬다. 총을 제 머리에 쏘는 시늉을 하는 이웃 여인에게도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울부짖듯 웃음을 토해놓는 광대에게 세상은 여전히 가혹하다. 점점 미쳐 돌아간다. 견디기를 멈추고 광기에 저를 맡긴 후에야 그는 진짜 웃음을 찾는다.

미치광이 범죄자, 교활한 선동가, 희대의 악마, 잔혹한 사이코패스… 배트맨의 숙적으로 탄생한 조커는 수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주됐다. 스크린에서도 마찬가지. 웃는 얼굴로 굳어버린 '배트맨'의 잭 니콜슨, 참혹한 사연을 꾸며내던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 기괴한 사랑꾼이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자레드 레토도 저마다의 조커를 그렸다. 악당 조커를 타이틀롤에 올린 첫 영화 '조커'는 출발이 다르다. 배트맨 이전에 조커가 있었다.

▲ 영화 '조커' 리뷰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미친 세상이 만들어낸 반(反)영웅이다. 선량하고 외로웠던 남자가 조커가 되어가기까지를 세밀히 그린다. 그 과정은 불운한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판타지의 세계에 그려진 영웅과 악당의 놀음에 멈추지 않는다. '조커'는 처연한 심리극이자 사회드라마이기도 하다. '조커'에 비친 고담시는 현실의 거울이다. 불평등한 세계는 공감능력을 상실했다. 선량하고 연약한 이에게 더욱 잔인하다. 가진 자들의 무관심 속에 소외된 이들의 분노한다. 영화는 악당 조커를 도시의 혼돈과 약자의 분노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과감히 끌어올린다.

조커가 더 안타깝고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데는 타이틀롤 호아킨 피닉스의 힘이 절대적이다. 그저 압도적이다. 내내 일인칭 시점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인데도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는 구두 무게마저 힘겨운 듯 헐떡이던 아서 플렉, 문 하나를 넘어 시간이 멈춘 듯 해방의 춤을 추는 조커를 몸짓만으로 설득해낸다. 마치 아서 플렉이 조커가 그저 되어간 게 아니라,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경이롭지만 무시무시하다. 미친 세상에서, 당신도 조커가 될 수 있다.

10월 2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15세 이상 관람가.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영화 '조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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