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포티비뉴스
[스포티비뉴스=부산, 김현록 기자]신작을 프랑스에서 작업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손편지를 쓰며 프랑스 배우들과 소통했다고 털어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3일째인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첫 프랑스영화로, 프랑스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등이 출연했다. 프랑스 영화계의 대스타가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딸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회견 2시간 전 비행기로 김해공항에 도착, 곧장 기자회견장으로 달려왔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기자회견 직전 물을 엎지르자 직접 달려가 휴지를 가져오는 소탈한 면모로 현장에 소소한 웃음을 안겼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미국 배우 등과 작업한 결과물을 내놓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어를 넘어선 작업에 대해 "제가 일본어밖에 못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됐다. 뛰어난 통역사가 함께했다. 6개월간 현장에 함께해 주셔서 도움을 받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또 평소보다 더 의식했던 것은, 말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한 손편지를 많이 써서 배우들에게 전달했다"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쓰는 방식인데, 외국인 만큼 의식적으로 손편지를 쓰는 분량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9년 배두나와 함께한 영화 '공기인형'을 언급하며 "10여년 전 배두나 배우와 작업했다. 공통 언어가 없는 가운데 촬영을 해나가면서 서로가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부분이 결여돼 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가 필요없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컷이 나온 뒤 다음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언어가 없이도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됐다. 또 서로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게 됐다"면서 "그런 일이 이번 현장에서도 일어났다.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재미가 아닐까. 언어를 뛰어넘을 수 있구나 새삼 느꼈다"고 덧붙였다.

▲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포티비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프랑스 영화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만들어지는 데 칸 황금종려상의 영향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 기획은 2015년 출발했다. '어느 가족' 전부터 이 영화에 대한 준비가 있었다. '어느 가족' 이후 기획을 시작했다면 부담을 느꼈을 텐데, 원체 평소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히려 칸에서 영화를 받은 직후에 뉴욕에 가서 에단 호크를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 섭외하러 했다"면서 "그 배우가 '콩그래츄레이션'이라며 인사를 하면서 '이런 시점에서 제안을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죠'라는 말을 하더라"라고 에단 호크 캐스팅 뒷이야기를 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때 정말 상받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칸 황금종려상의 혜택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출처|스틸
이번 영화의 출발은 감독이 십수년 전부터 교류해 온 줄리엣 비노쉬. 언젠가 함께 영화작업을 하고 싶다는 줄리안 비노쉬의 제안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플롯 상태의 이야기를 건넨 게 2015년이었고, 카트린 드뇌브, 에단 호크가 합류하면서 감독이 꿈꾸던 구상이 현실화됐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카트린느 드뇌브란 배우 자체가 영화사에서 빛나는 배우이고 현역이기 때문에 그 여배우의 매력을 가능한한 다면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저에게는 가장 큰 과제였다"면서 "카트린느 드뇌브라는 여배우의 단면을 곳곳에 조명함으로서 다면적으로 묘사해보고 싶었다. 어머니이자 할머니이자 여배우이자 딸인 그녀의 모습을 다층적으로 그리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포티비뉴스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 및 한일 갈등 문제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영화의 힘, 연대의 힘을 강조한 거장의 답변에서는 품격마저 느껴졌다.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예상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5년 전쯤이었는지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적 압력을 받아 개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다. 전세계 영화인이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지 목소리를 냈다. 저도 미력하나마 지지 목소리를 내고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그는 "그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에 왔고 저도 이자리에 올 수 있게 됐다. 그 당시 부산영화제가 대응을 잘했고 아주 잘 견뎌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정치적 문제라든지 고난을 겪었을 때, 고난에 직면했을 때 영화인들이 연대하고 연대를 깊이 내보이면서 이런 연대가 가능하다는 걸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또한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왔"고 강조했다. 이어 "이 자리에는 그 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영화를 만드는 사람 뿐 아니라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 다른 영화계 사람들이 이자리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마무리했다.

▲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포티비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경사스러운 해에 의미있는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제가 영화감독으로 데뷔 한 이후부터 줄곧 같은 세월을 걸어 온 영화제다. 숱한 고난을 겪으며 함께 발전한 영화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저는 평소 일본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일본 영화를 찍는다고 의식하지 않는다. 프랑스 영화를 만든다고 의식하지도 않았다. 다만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창동 감독, 지아장커 감독 등 동시대 영화를 만드는 아시아의 동지들, 벗들에게 늘 자극을 받고 영감을 받았다. 저 또한 그분들에게 보여드렸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5년간 영화를 만들었다. 아시아의 영화인이다라는 생각이 제 의식 근저에 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것이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의 현장에서 만나는 영화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평소 눈에 보이는, 국가라든지 공동체, 이런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풍요로운 영화라는 큰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면서 "그런 내셔널리즘이라는 것과는 무관한 지점에 있는, 서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고 영화를 통해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는 경지, 심경을 느꼈을 때 정말로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런 시간으 거치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낀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오는 10월11일 도쿄에서 개봉하며, 베니스에 이어 아시아프리미어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국내에서는 연말 개봉을 앞뒀다.

한편 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부산 영화의 전당 등 6개 극장 27개 스크린에서 전세계 85개국에서 온 299편(월드 프리미어 118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27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스포티비뉴스=부산,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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