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게로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류중일 LG 감독은 6번 타순을 '폭탄 타순'이라고 부른다.

상대 배터리가 4, 5번 타자를 경계해서 볼넷을 내주거나 4, 5번 타자가 잘 쳐서 만들어진 찬스가 6번에서 자주 걸린다는 이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타순을 짤 때 6번 타자에게 많은 공을 들인다.

경험이 많고 찬스에 강한 선수들을 자주 써 왔다. 삼성 시절 이승엽이 그랬고 시즌 초반 박용택도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 LG의 6번 타자는 페게로다. 페게로는 영입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으나 9월에는  24타점을 쓸어 담으며 제 몫을 해냈다. 9월 월간 타점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장기인 파워를 앞세워 6개의 홈런도 때려 냈다.

그러나 페게로는 약점이 너무 뚜렷하다. 바깥쪽 변화구에 좀처럼 대응을 하지 못한다. 바깥쪽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몸 쪽 높은 공에도 쉽게 손이 나간다.

투수들은 몸 쪽 높은 공은 실투 위험 때문에 잘 던지지 않는다. 주로 페게로의 바깥쪽을 공략한다. 특히 좌투수의 슬라이더는 페게로의 최대 약점이다.

물론 모든 좌완 투수들이 페게로에게 강한 것은 아니다. 조금만 실투가 되면 큰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폭발력은 갖고 있다.

하지만 최고의 집중력과 최고의 선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는 포스트시즌에서는 페게로에게 실투를 던질 만한 좌투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승부가 결정된 뒤라면 모를까 박빙 승부에선 바깥쪽 변화구가 매우 날카롭게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페게로는 지난 3일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NC 좌투수들의 바깥쪽 승부를 이겨 내지 못하고 무안타에 그쳤다.

6일 키움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무안타로 침묵했다.

▲ 페게로 ⓒ한희재 기자
중요한 건 이날 페게로를 상대로 한 투수는 모두 우투수였다는 점이다. 우투수의 바깥쪽 공략에도 맥을 추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0-0으로 맞선 7회 2사 1, 2루 찬스였다. 페게로는 이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며 고개를 떨궜다.

키움은 이 위기에서 투수 교체를 택했다. 불펜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좌완 오주원이 유력해 보였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5회 이후 불펜 운영은 마무리를 정하지 않고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주원이 마무리 투수이긴 하지만 페게로가 좌투수에게 약점을 보였던 만큼 오주원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됐다.

키움의 선택은 반대였다. 조상우를 투입했다. 키움 불펜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를 선택한 것이다.

조상우는 정규 시즌에서 페게로에게 안타를 맞은 바 있다. 한 타석뿐이었지만 빠른 공 위주의 조상우는 페게로와 힘의 대결에서 약점을 보일 수도 있다는 예측이 가능했다.

실제로 페게로의 패스트볼 상대 타율은 0.348나 된다. 투심 패스트볼도 0.375로 잘 쳤다.

그러나 페게로는 조상우의 빠른 공에 좀처럼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볼 카운트 2-1의 불리한 상황에서 조상우는 3개 연속 빠른 공 승부를 들어갔다. 페게로의 방망이는 이 빠른 공에 계속 포인트가 늦었다.

페게로의 스윙이 따라나오지 못하자 키움 배터리는 대놓고 빠른 공 승부를 들어갔다. 결국 페게로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원래 약점이 심했던 좌투수의 바깥쪽 변화구였다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우투수의 빠른 공에도 대처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모두 조상우만큼 스피드를 낼 수는 없겠지만 조상우가 통한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키움은 페게로에게 걸린 찬스에서 보다 다양한 옵션을 쓸 수 있게 됐다.

반대로 페게로는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생긴 셈이다.

페게로가 조상우의 빠른 공에 대처하지 못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장점마저 살릴 수 없다면 페게로의 한계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LG 타선은 정규 시즌 막판부터 페이스가 조금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4번 김현수의 침묵도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폭탄 타순인 6번의 페게로마저 흔들린다면 득점력이 더욱 감소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페게로가 조상우와 승부는 이겨 내야 하는 이유다. 우투수의 빠른 공부터 해법을 찾아 나가야 바깥쪽 변화구에 대해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

1차전과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면 그 길은 출구를 보여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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