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가 6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LG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척, 이재국 기자] 가을은 전설의 계절이다. 가을은 영웅의 계절이다. 가을은 기록의 계절이다. 가을은 역사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우리에게 추억의 계절이다.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가 다시 한 번 전설을 썼다. 가을의 영웅이 됐다. 7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MYCAR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9회말 1-0 승리를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터트리며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만들었다.

KBO리그 출범 38년째. 역사가 겹겹이 쌓인 만큼 많은 기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을야구에서 끝내기 홈런이 나온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번 박병호의 끝내기 홈런이 역대 10번째다. 준PO에서 3차례, 플레이오프(PO)에서 4차례, 한국시리즈(KS)에서 3차례 기록됐다.

10번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역사의 순간들…. 올드팬이라면 장면 하나하나 기억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극적인 타이밍에 터져 나온 포스트시즌 끝내기 홈런. 그 중 팬들의 기억 속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끝내기 홈런은 무엇일까. 역대 가을이 선물해준 포스트시즌 10개의 끝내기 홈런 순간을 다시 한번 추적해 본다.

▲ 추억의 태평양 선수들. 맨 오른쪽이 김동기이며, 오른쪽에서 3번째 선수가 당시 태평양 투수였던 양상문이다. ⓒKBO 한국프로야구 화보
①김동기(태평양) 1989년 준PO 1차전

10월 8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준PO 1차전. 1988년까지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제도로 운영됐지만, 1989년 단일시즌제를 처음 도입했다. 포스트시즌 제도도 3위와 4위가 격돌하는 준플레이오프 제도를 처음 만들어 시행했다. 여기서 이긴 팀이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방식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준PO, 그것도 1차전부터 기막힌 승부가 펼쳐졌다.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가을야구에 진출한 태평양은 준PO 1차전에서 태평양 주전포수이자 간판타자인 김동기의 끝내기 홈런으로 인천야구 최초 포스트시즌 승리까지 챙겼다.

연장 14회초까지 0-0으로 좀처럼 점수가 나지 않았다. 연장 14회말 2사 2·3루서 태평양 5번타자 김동기가 삼성 2번째 투수 김성길을 상대로 혈전을 끝내는 3점홈런을 쏘아 올렸다. 준PO뿐만 아니라 KBO 포스트시즌 전체를 통틀어서도 사상 최초의 끝내기 홈런. KBO리그 출범 후 8년 만에 처음 나온 포스트시즌 홈런이었다. 그해 19승으로 신인왕에 오른 태평양 박정현은 연장 14회까지 무려 173개의 공을 던지며 완봉승을 올렸다.

②이만수(삼성) 1990년 PO 2차전

10월 7일 대구에서 열린 준PO 2차전. 삼성은 극적인 홈런으로 승리를 거뒀다. 9회말 들어가는 시점까지 3-4로 끌려갔지만 선두타자 김용철이 한희민을 상대로 4-4 동점 솔로홈런을 날렸다. 이어 1사후 타석에 들어선 이만수는 한희민을 상대로 볼카운트 0B-2S로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다. 그런데 한희민은 곧바로 승부를 들어왔다. 3구째 한가운데 공. 이만수는 좌중월 끝내기 솔로홈런을 날렸다. 5-4 역전승을 완성하는 결승포였다. 1차전 2-0 승리에 이어 2차전까지 잡고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랐다.

▲ 이만수 ⓒ한희재 기자
③김선진(LG) 1994년 KS 1차전

10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S 1차전. LG와 태평양은 연장 11회까지 1-1로 승부를 내지 못하고 사투를 벌였다. 태평양 선발투수 김홍집은 10회까지 140개의 공을 던지며 혼신의 힘을 다해 LG 타선을 막아내고 있었다. 6회 대주자로 나간 김선진이 11회말 1사후 타석에 등장했다. 김홍집의 초구(이날 경기 141구째)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솔로홈런을 쏘아 올려 2-1 승리를 결정지었다. 역대 KS 최초 끝내기 홈런이었다.

김선진은 당시 그해 말 정리 대상으로 분류돼 있었다. 1990년 LG에 입단한 뒤 허리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이 홈런으로 2000년까지 선수생명을 연장하게 됐다. '개털'이었던 김선진의 별명은 홈런 한 방으로 '용털'로 바뀌었다. LG는 1차전 끝내기 승리의 여세를 몰아 태평양을 4승 무패로 꺾고 1990년 첫 우승에 이어 구단 역사상 2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25년 전 이 우승이 LG의 마지막 우승이다.

④박철우(쌍방울) 1996년 PO 1차전

1990년에 제8구단으로 창단한 뒤 1991년부터 1군 무대에 뛰어든 쌍방울은 만년 하위팀이었다. 그러나 1996년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돌풍을 일으키며 PO에 직행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10월 7일 전주구장에서 현대와 PO 1차전이 열렸다. 현대는 준PO에서 한화를 2연파하며 PO 무대에 올라왔다. 9회초까지 0-0. 연장전의 기운이 감돌던 9회말, 선두타자 조원우의 대타로 박철우가 타석에 나섰다. 여기서 박철우는 현대 정명원을 상대로 2구째 직구를 받아쳐 백스크린을 때리는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PO 사상 최초의 끝내기 홈런이자 쌍방울 최초 가을야구 승리를 확정짓는 결승포였다. 아울러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대타 끝내기 홈런을 친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박철우는 앞서 1989년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8안타(타율 0.444)로 MVP를 차지하기 했다. 올 시즌 두산이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우승을 결정지을 때 끝내기 안타를 친 박세혁의 아버지다.

⑤펠릭스 호세(롯데) 1999년 PO 5차전

10월 17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PO 5차전. 양대리그(드림리그와 매직리그)가 처음 도입돼 PO는 7전4선승제로 펼쳐졌다. 4차전까지 삼성이 3승1패로 앞서 있었고, 9회말 들어갈 때 5-3으로 앞서 있었다. 삼성 마운드에는 임창용이 버티고 있어 삼성이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따내는 분위기였다. 롯데 선두타자 김대익의 2루타와 박정태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이어 마해영이 삼진을 당해 1사 1,2루가 됐다. 여기서 타석에 등장한 펠릭스 호세는 볼카운트 2B-2S에서 임창용의 5구째를 통타해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3점홈런을 날려 6-5로 승부를 뒤집었다. 역대 포스트시즌 최초로 역전 끝내기 홈런이 나온 순간이었다.

이 홈런 한 방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롯데는 2승3패로 추격한 뒤 결국 7차전 혈투 끝에 4승3패로 삼성을 격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1승4패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롯데가 팬들에게 선물해준 마지막 한국시리즈 무대였다.

▲ 마해영 ⓒ곽혜미 기자
⑥마해영(삼성) 2002년 KS 6차전

11월 10일 대구구장. 삼성이 3승2패로 앞서간 가운데 6차전에 펼쳐졌다. 9회초까지 LG가 9-6으로 앞서고 있어서 7차전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9회말 마운드에는 LG 마무리투수 이상훈. 1사 1,2루에서 이승엽이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날렸다.

그러자 LG는 투수를 최원호로 교체했다. 타석에 등장한 마해영은 여기서 우월 끝내기 솔로홈런을 날려 10-9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끝내기 홈런은 사상 최초였다. 아울러 삼성 구단 역사상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한방이기도 했다.

▲ KIA 나지완은 2009년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 9회말에 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날린 바 있다. ⓒ한희재 기자
⑦나지완(KIA) 2009년 KS 7차전

3승3패로 맞선 가운데 10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와 SK의 KS 7차전. 그리고 5-5 동점으로 진행되던 9회말. 1사후 타석에 들어선 나지완은 볼카운트 2B-2S에서 SK 채병용의 높은 직구를 받아쳐 좌중간 펜스를 까마득하게 넘겨버렸다.

시리즈 끝내기 홈런은 2002년 삼성 마해영에 이어 역대 2번째였지만, 7차전 끝내기 홈런은 사상 최초였다. 최종 7차전 시리즈 끝내기 홈런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딱 한 차례(1960년 피츠버그 빌 마제로스키)밖에 없는 진기록이다. 타이거즈 역사에서 1997년에 이어 12년 만이자 KIA로 간판이 바뀐 뒤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⑧박정권(SK) 2018년 PO 1차전

10월 2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 SK는 PO 1차전부터 혈전을 벌였다. 5회까지 8-3으로 앞서 낙승이 예상됐으나 넥센이 홈런포를 가동하며 따라붙었다. 송성문의 연타석 2점 홈런에 이어 외국인 타자 제리 샌즈의 7회 3점포로 8-8 동점이 돼버렸다. 흐름은 넥센 쪽으로 넘어가는 분위기.

SK에는 가을사나이 박정권이 있었다. 9회말 선두타자 최정이 볼넷을 얻어 나간 뒤 제이미 로맥이 2루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1사 1루. 박정권은 타석에 들어서더니 넥센 마무리투수 김상수의 3구째를 걷어 올려 끝내기 아치를 그리며 명승부를 마감했다.

▲ SK 한동민이 2009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한국시리즈행을 확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친 뒤 감격스런 표정으로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곽혜미 기자
⑨한동민(SK) 2018년 PO 5차전

거짓말 같은 승부가 만들어졌다. SK와 넥센이 2승2패로 맞선 가운데 11월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최후의 일전이 펼쳐졌다. SK는 9-4로 앞선 상황에서 9회초에 들어가 쉽게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따내는 듯했다. 그러나 안타와 실책이 이어진 뒤 박병호에게 동점 2점홈런을 맞아 9-9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10회초 임병욱의 적시타로 넥센이 10-9로 리드를 잡아 SK로서는 역전패 분위기.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10회말 김강민이 넥센 신재영을 상대로 동점 솔로홈런을 때려낸 뒤 한동민이 9구째를 통타해 끝내기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SK는 백투백 홈런으로 11-10으로 재역전승을 거두고 KS 진출권을 획득했고, 한동민은 KS에서도 6차전 연장 13회초 우승을 결정하는 솔로홈런을 때려내면서 MVP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 키움 박병호가 6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LG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친 뒤 헬멧을 벗어던진 채 기뻐하고 있다. ⓒ한희재 기자
⑩박병호(키움) 2019년 준PO 1차전

10월 6일 고척 스카이돔. LG와 키움은 선발투수 타일러 윌슨과 제이크 브리검의 역투를 시작으로 9회초까지 0-0으로 맞섰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0-0 무득점 공방에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은 박병호였다.

선두타자로 타석에 나선 박병호는 LG 2번째 투수 고우석의 초구 직구(시속 154㎞)를 기다렸다는 듯 후려쳐 한가운데 펜스를 넘기는 끝내기 솔로홈런을 만들었다. 고우석은 역대 포스트시즌 최소 투구수 패전투수가 됐다.

박병호는 그동안 포스트시즌에서 극적인 홈런을 쳐 왔지만 팀이 패해 웃지 못했다. 2013년 준PO 5차전에서 9회말 구원등판한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날렸지만 팀이 연장 13회까지 가서 패했다. 지난해 PO 5차전에서도 4-9로 끌려가던 9회에 2점차까지 따라붙은 상황에서 거짓말 같은 2점홈런을 날렸지만 결국 연장 10회에 패하며 KS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2019년 준PO 1차전에서는 팀이 승리하면서 박병호도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스포티비뉴스=고척, 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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