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성 촬영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스포티비뉴스=부산, 김현록 기자]첫 주말을 넘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의미있는 해이기 때문에 더 의미있게 다가온 것일까. 정일성 촬영감독, 박찬욱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등. 국적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거장의 속내를 들어보는 시간은 영화제만의 선물이다. 오랜 시간 영화 한 길을 걸으며 묵직한 행보를 보여온 거장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영화만큼 깊은 울림을 남기며 영화제의 격과 거장의 품격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올해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한국 촬영감독의 회고전이 열린 것은 이번이 최초고, 세계적으로도 예가 드물다. 1957년 영화 '지상의 비극'으로 데뷔한 정일성 촬영감독은 이후 '화녀' '최후의 증인' '만다라' '만추' '황진이' '본투킬' '춘향뎐' '취화선' '천년학' 등의 촬영을 담당하며 한국영화의 변곡점마다 자취를 남겼다. 그는 "나의 영화 원동력은 불행했던 현대사"라며 영화인으로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를 고민해왔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한 지 60년이 됐다는 그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필모그래피 중 부끄러운 영화들이 교과서가 됐다며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이 땅에 태어나 산 사람들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찍어낼 수 없을까 고민한다. 어떻게 촬영을 했으면 하는가 늘상 생각했고, 숙제처럼 다가왔다. 제가 찍은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저는 아름답게 찍으려고 노력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어떤 앵글로, 카메라 포지션으로 아픔을 극대화 시켜 우리 역사의 이어짐을 보여줄 수 없을까 초점을 맞췄다…. 미국 영화의 아류작을 찍고 싶지 않다. 흉내 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영화를 일절 보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모방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봉준호의 '기생충' 1년 전, 칸에서 먼저 황금종려상의 낭보를 전한 일본의 대표 감독이다. 수상작 '어느 가족'은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엔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프랑스에서 줄리엣 비노쉬, 카트린 드뇌브, 에단 호크와 함께한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는 공감을 전한다. 그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영화인의 연대를 강조한 그는 "존경하는 아시아의 영화인들로부터 넘겨받은 릴레이 바통이라고 생각하겠다"며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평소 일본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영화를 찍는다 의식하지 않는다. 프랑스 영화를 찍는다 의식하지 않았다. 아무튼 좋은 영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창동 감독, 지아장커 감독 등 동시대 영화를 만드는 아시아의 동지들, 벗들에게 늘 자극을 받고 영감을 받았다. 저 또한 그분들에게 보여드렸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5년간 영화를 만들었다. 아시아의 영화인이다라는 생각이 제 의식 근저에 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것이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내셔널리즘이라는 것과는 무관한 지점에 있는, 서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고 영화를 통해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는 경지, 심경을 느꼈을 때 정말 행복하다. 그런 시간들을 거쳐오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낀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 ⓒ부산국제영화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정치 스릴러 장르를 개척한 그리스 출신의 프랑스 영화감독이다. 영화 '제트'(1969)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등 2관왕,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한 현역이며, 여전이 날선 시선으로 세계와 정치를 들여다본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고국 그리스의 경제위기 상황을 담은 '어른의 부재'를 선보였다. 고생한 자원봉사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10년 전 부산에서의 마지막 4시간을 비워뒀다는, 날선 거장의 인간적 풍모는 지켜보는 이들을 더윽 흐뭇하게 했다.

"보통 사람들이 저를 정치적 감독이라 한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를 요약해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지는 않더라도 모든 요소에 정치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4~5년에 한 번 투표하는 게 정치가 아니라 나와 상대의 관계 자체가 정치다. 젊은 청년이나 진짜 힘있는 사람 모두 권력이 있다. 이 권력을 행사함으로서 행복해지는지, 불행해지는지가 다르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불행히도 정치인이 아니라 돈이 있는 이들, 은행을 통해서 정치가 진행되는 것 같다."

▲ ⓒ부산국제영화제
박찬욱 감독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7일을 뜨겁게 만든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인공이었다. 자신의 최고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미완의 '엑스' 프로젝트를 공유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오픈토크에 나선 데 이어, 필름메이커스 토크에도 나섰다.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를 통해서 그의 영화세계를 조금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금자씨'의 트렌치코트에, '박쥐'의 키스신에 담긴 감독의 연출 의도와 뜻은 듣는 내내 귀를 쫑긋하게 했다. 이 가운데 '유머'에 대한 흥미로운 대목을 옮겨본다.

"(금자씨가 피해 유족을 불러 백선생에게 복수하도록 하는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유머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절대 발생할 것 같지 않은 유머가 나온다. 오광록씨가 연기하는 한 아버지가, 다른 사람은 다 흉기를 들고 있는데 옆 사람이 칼을 빌려드리까 할때 '저는 뭐' 하면서 가장 무서운 흉기를 꺼내서 철컥철컥 조립할 때, 가장 유순해보이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때 발생하는 유머가 있다…. 

유머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하나 들어가 웃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슬픔, 어떤 분노, 부조리함들과 결합됐을 때 이 유머가 그 부조리함을 더 강조하고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제일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싱각하는 게, 유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유머를 활용해서 슬픈 영화를 더 슬프게 만들 수 있는가. 이건 그걸 잘 보여주는 예였다. 더불어서 제가 가장 원하는 관객 반응은 이 장면에서 도끼를 조립하는 남자를 보고 일단 웃고 그러고 나서 그 행동을 더 보다보면 방금 웃은 것이 미안해지는, '내가 경솔하게 웃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런 불쌍한 남자를 보고 웃었네 하는 죄의식이 조금 생긴다면 그것이 제가 바라는 최상의 관객 반응이다."

스포티비뉴스=부산,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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