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LDS 5차전에서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한 다저스 투수 클레이튼 커쇼를 조롱하며 영화 조커를 패러디한 '초커'포스터가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초커(Choker)'는 큰 경기나 중요한 순간을 망치는 선수를 뜻한다. 사진은 커쇼를 방출하라는 내용의 방송을 한 폭스스포츠 라디오 웹사이트가 게시한 한 팬의 SNS 사진 캡처.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정리가 쉽게 되지 않는다. 생각할 수록 화만 난다. LA 다저스 팬들에게는 최악의 결과였다.

다저스는 1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5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3-7로 무너지며 2승3패로 가을야구에서 탈락했다. 팬들 못지 않게 다저스 선수들에게도 충격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경기 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찾아볼 수 없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이날 1회말 기선제압 2점홈런을 치는 등 NLDS 5경기에서 3홈런을 기록한 맥스 먼시도 경기 후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먼시는 클럽하우스에서 실망감을 묻는 질문에 "정리가 되면 알려주겠다"는 대답만 하더니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저스 1선발 에이스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워커 뷸러는 이날 '대관식'을 앞두고 찬물을 뒤집어 썼다. 게다가 뷸러는 1주일 전 돌아가신 이모에 대한 슬픔까지 겹쳐 인터뷰 도중 끝내 눈물을 보였다. 평소 오만하다는 오해를 받을 만큼 자신감 충만하던 뷸러의 눈물은 다저스 팬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 LA 다저스 NLDS 5차전 선발 투수 워커 뷸러가 경기가 끝난 후 클럽하우스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은 영상 캡처 ⓒ양지웅 통신원

그리고 클레이튼 커쇼. 언젠가 다저스 구장에 동상이 세워질 것이 확실하며, 사이영상을 3번이나 수상한 커쇼는 이날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기자회견실에는 오지 않았고 클럽하우스에서 기자들을 상대했다. 커쇼는 이날 그 누구보다 가장 큰 아픔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피하지 않고 홀로 세상에 놓여진 듯, 얼굴 바로 앞에 몰려있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가슴을 파헤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커쇼는 "지금 이 순간 나의 포스트시즌에 대한 모든 것들이 사실이 됐다"고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좋은 실력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뿐이다"라고 말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모두가 존경하고 팬들에게 사랑받아야 마땅한 다저스 레전드에게 '가을에 약한 남자'라는 꼬리표는 이제 떨어지지 않게 됐다. 커쇼의 유니폼을 땅에 버리고 짓밟으며 대놓고 욕하는 다저스 팬들도 있다. 이들은 커쇼를 큰 경기를 겁내고 떨면서 항상 지고 마는 '초커(choker)'라고 조롱한다. 커쇼의 얼굴을 요즘 흥행하는 영화 조커의 포스터에 삽입한 '초커 조커'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 NLDS 5차전 백투백 블론세이브를 하며 블론세이브를 한 클레이튼 커쇼가 경기가 끝난 후 LA다저스타디움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은 영상 캡처 ⓒ양지웅 통신원
다저스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바로 패한 과정이 너무나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5차전을 들여다보면 비극적 종말을 예견했던 올 시즌이 엿보인다.

1회말 다저스는 먼시의 2점홈런 후 코디 벨린저의 삼진아웃과 코리 시거의 병살타로 추가득점에 실패했다. 2회말 키케 에르난데스가 펜스를 살짝 넘어가는 솔로홈런으로 3-0을 앞서갈 때만 해도 팬들은 워싱턴 선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곧 강판당하며 경기를 쉽게 끝낼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다저스 타선은 계속 범타로 물러나며 점수차를 벌리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3회말 1사후 벨린저는 워싱턴 2루수 하위 켄드릭의 실책으로 1루를 밟은 후 도루에 성공해 2루까지 나갔지만 후속타자들이 땅볼과 삼진으로 물러났다. 6회말 벨린저는 안타를 친 후 또 도루에 성공하며 무사 2루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후속타자 3명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됐다. 번트 시도 및 스몰볼 작전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홈런을 노리는 듯한 큰 스윙만이 보였다.

다저스 불펜에게 3점차 리드는 결코 여유있지 않다는 것은 팬들도 시즌 내내 목격했다. 그럼에도 다저스 타선은 추가 득점을 할 생각이 없는지 큰 스윙만 고집했다. 믿었던 다저스 타자들의 포스트시즌 성적은 초라하다. 코리 시거 20타수 3안타, 코디 벨린저 19타수 4안타, 윌 스미스 13타수 1안타, 개빈 럭스 9타수 2안타. 그리고 지난 오프시즌에서 유일하게 다저스가 돈을 쓰며 영입한 타자 AJ 폴락은 13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무려 11개를 기록하며 가장 안타까운 성적을 냈다.

뷸러가 6회초 1실점하며 다저스는 3-1로 추격을 당해 불안해졌다. 7회말 예견했던 대로 클레이튼 커쇼를 뷸러 다음의 2번째 투수로 올렸다. 평소 선발투수 로테이션 발표나 선발 라인업도 상대팀보다 늦게 알려주는 다저스는 어쩐 일인지 5차전 투수 기용법까지 상대팀이 보란 듯이 일찌감치 공표했고, 결국 예상대로 커쇼를 내보냈다.

다저스는 올 시즌 후반, 선발투수였던 마에다 겐타를 불펜으로 내려 보내며 포스트시즌을 대비한다고 했다. 마에다는 시즌 막판 불펜에서 제몫을 다했다. 가을야구에서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다저스는 4차전에서 패가 꼬였다. 3회말부터 흔들리던 선발 리치 힐 대신 마에다를 마운드에 올렸다. 마에다가 1.1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1-1 동점을 이어가고 있을 때 5회 공격에서 마에다 타석이 돌아왔고, 다저스는 AJ 폴락(삼진아웃)을 대타로 내보냈다. 그리고 마에다가 마운드에서 내려가자마자 5회말 훌리오 우리아스와 페드로 바에스가 4점을 내주고 결국 1-6으로 패했다. 마에다가 더 많은 이닝을 던지면 실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믿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5차전에 활용하기 위해 아낀 것인지는 로버츠 감독만이 알 것이다.

5차전 7회초에는 선발투수 뷸러가 첫 타자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키며 2사 1,2루를 만들자 커리어하이 117개의 공을 던진 뷸러를 내리고 예고했던 대로 커쇼를 마운드에 올렸다. 다저스는 커쇼의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4.43)를 알면서도 무시했다. 게다가 커쇼는 올 시즌 커리어하이인 28개의 피홈런(29경기)을 기록했고, 특히 첫 이닝에만 10개의 홈런을 허용하는 등 첫 이닝 평균자책점이 5.79나 된다. 최첨단 야구와 각종 세이버메트릭스 숫자에 연연하는 다저스가 커쇼의 통계자료는 왜 무시했을까? 커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팬들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비극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쇼는 7회말 2사 1,2루에서 공 3개로 헛스윙 삼진아웃을 잡아내고 임무를 완수했다. 처음부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커쇼가 무사히 이닝을 끝내자 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커쇼에게 박수를 보냈다.

마침 마에다는 불펜에서 워밍업을 끝냈다. 사실 이날 불펜에서 커쇼가 투입되기 전부터 마에다가 먼저 몸을 풀고 있었다. 아무튼 다저스는 이제 6아웃만 더 잡으면 경기에서 승리하며 NLCS에 4년 연속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기자실에서는 경기후 샴페인 세례를 대비하면서 기자들이 우비를 챙기고, 플라스틱백으로 카메라를 커버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극의 주인공은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찬스를 번번이 놓치거나 때로는 알면서도 직면한다.

로버츠 감독이 왜 준비가 끝난 마에다를 올리지 않고 8회말 커쇼를 또 올렸는지, 팬들은 이해를 할 수 없다. 로버츠 감독의 경기후 인터뷰에서 밝힌 그 어떤 설명도 팬들을 설득시킬수 없다. 결과적으로 커쇼를 불구덩이에 밀어넣은 결정이었다.

▲ 지난 10일(한국시간)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NLDS 5차전 8회초 백투백 홈런으로 동점을 내주고 마운드에 주저앉은 클레이튼 커쇼(오른쪽)의 모습이 2001년 11월2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5차전 9회말 동점홈런을 허용한 애리조나 소속의 김병현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팬들은 이제 로버츠 감독을 '해고(Fire)하라'고 들고 일어났다. 커쇼가 백투백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쭈구려 앉아있는 모습을 한국팬들은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투수 김병현이 2-0으로 앞서 있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동점홈런을 허용한 뒤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날 애리조나는 연장전에 패했지만 6차전과 7차전에서 승리하며 월드리시즈 우승을 차지해 해피엔딩으로 드라마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2019년 커쇼와 다저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그대로 시즌이 끝났다.

팬들이 더욱 분노하는 이유는 로버츠 감독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팬들은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다르빗슈 유를 7차전 선발로 내세운 것도, 2018년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잘 던지던 리치 힐을 교체했던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다 결과론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로버츠 감독의 포스트시즌 실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저스는 3-3 동점이던 9회초 조 켈리를 올렸다. 켈리가 과거 다저스를 상대로 한 것은 둘째 치고 올 시즌 초반 불펜에 불을 지르던 모습도 그렇다 치더라도 다저스는 시즌 후반, 공개하지도 않은 미스테리한 다리 쪽 부상이라며 켈리를 경기에 투입하지도 않았다. 켈리는 시즌 후반 실전 경기에서 포스트시즌에 대비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지도 못했다.

로버츠 감독은 다저스팬들에게 전혀 믿음을 주지 못한 켈리를 결국 투입했다. 켈리는 지난 오픈시즌에서 다저스가 유일하게 돈을 쓰고 영입한 투수다.

켈리도 커쇼 못지 않은 불안한 선택이지만 9회초를 2삼진과 뜬공으로 삼자범퇴 처리하며 임무를 다했다. 그런데도 로버츠 감독은 10회초 켈리를 또 올렸다. 이에 대한 로버츠 감독의 설명 역시 팬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켈리가 볼넷과 2루타를 맞고 좌타자 후안 소토가 나왔을 때 "좌타자 전문(스페셜리스트) 투수"라며 시즌 도중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다저스가 투수로는 유일하게 영입했던 애덤 콜라렉은 왜 투입하지 않았는지 오직 로버츠 감독만이 알것이다. 

이밖에도 불펜에는 켄리 잰슨 외 다른 투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켈리를 마운드에 내버려두고 소토를 고의4구로 내보낸 뒤 무사 만루에서 하위 켄드릭(2015~16 다저스 소속)을 상대하게 했다. "켄드릭과 켈리와 매치업이 좋다고 판단했다"는 로버츠 감독의 경기 후 설명은 팬들에게 들리지도 않는다. 켈리를 왜 만루홈런을 맞은 후에야 켄리 잰슨으로 교체했을까. 시즌 내내 잰슨을 다저스 클로저라고 거듭 말하던 로버츠 감독은 결국 잰슨을 패전투수로 기용했다. 잰슨을 믿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맞춰 시즌 내내 불안했던 잰슨을 대체할 마무리투수 영입에 나서야했다. 뭔가 모순이다. 구단의 무책임한 처사이기도 하다.

다저스 구단은 올시즌 106경기에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우승에 꼭 필요한 '팀 케미스트리'도 훌륭했고 수많은 역전승을 거두며 '올해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31년 만에 우승을 기대했던 팬들을 이제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팬들에게 포스트시즌 첫 라운드 탈락은 배신감 이상의 허탈감을 준다. 

팬들은 올 시즌 다저스 구단의 유망주 발굴과 화수분 야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두꺼운 '팜시스템'을 칭찬했다. 하지만 다저스 프론트 오피스가 지난 오프시즌에 영입한 폴락과 켈리는 완전 실패작이며 시즌 도중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영입한 선수들은 포스트시즌과 전혀 무관했다.

팬들은 올 시즌이 끝나면 재계약이 확실해 보였던 앤드류 프리드먼 다저스 사장과 2018년 계약이 연장됐던 로버츠 감독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 시즌 내내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5차전에서 돌출되며 '역시 다저스'라는 조롱을 당하는 느낌이다.

다저스는 화려한 우승반지를 자랑하는 '슈퍼스타'만을 인정하는 헐리웃의 동네, LA에서 커쇼에게만 투자를 한 뒤 지출을 꺼려하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저스 구단은 시즌 내내 수많은 위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충격적인 비극을 맞이했다. 팬들은 올해도 또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분노를 하면서도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다.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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