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 경기장에서 상상도 못할 폭력 축구가 펼쳐졌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북한 사람들이 입국부터 내내 불친절했다. 계속 반말을 하기에 선수들도 나중에는 반말로 응수했다. 적으로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평양 원정을 경험한 국가 대표 선수들은 14일 입국해 15일 경기하고 16일에 떠난 2박3일 평양 원정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악감정'이 생겼다. 평양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지만 2020년 6월 4일에 있을 리턴 매치를 벌써 벼르고 있다.

17일 오전 0시 45분 베이징을 경유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입국한 대표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경기장 취재가 불가능해 여느 때보다 많은 취재진이 공항에 모였는데, 많은 선수들이 인터뷰를 사양하고 빠져나갔다.

몸이 피로했고, 마음이 예민해졌다. 북한에서 보낸 2박3일간 선수들은 많이 피폐해져있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시간이 좀 지나서 들을 수 있었다. 

◆ 북한 인사들, 한국 대표 선수들에 반말하고 엄격 통제

선수단 단장으로 평양에 동행한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북한 사람들에 대해 "삭막했다. 춥더라"라고 비유적 표현을 한 것 이상의 상황이 익명의 대표 선수들을 통해 확인됐다.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14일 오후 4시께 도착한 선수들은 두시간 가량 공항에 묶여 있었다. 선수들의 짐 수색이 오래 걸릴 것이 없었다. 애초 반입 가능한 짐이 제한적이라 갈아입을 옷과 운동복 정도라 여행용 캐리어도 없이 갔다. 짐 검사는 금방 끝났지만 공항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선수단이 평양에 도착할 당시에는 날이 밝았는데 어두워지고 나서야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보내줬다. 그래서 선수들은 숙소에 들러 몸을 풀고, 휴식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경기장으로 이동해 최종 훈련을 해야 했다.

선수들은 평양을 본 소감에 대해 깜깜해서 도착했을 때 보지 못했다고 했다. 최대한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선수들을 잡아놓고, 체력적으로도 피곤하게 만들었다. 

▲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기념 촬영 이후 선수단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대한축구협회

◆ 행동 하나하나에 시비, 화장실도 혼자 못가

평양에 도착한 선수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일정 내내 따라다니며 감시한 북한 측 인사들의 태도였다. 일정 내내 반말을 했다. 기분 나쁘게 듣던 선수들도 나중에는 똑같이 반말로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을 감시하는 인사들은 선수단 버스도 함께 타고 밀착 감시했다. 선수단 버스는 비좁았고, 몇몇 의자는 뒤로 제치는 기능이 고장났는데, 뒤에 앉아 있던 북한 인사는 의사가 확 제껴지자 시비를 걸고 의자를 제치지 못하게 하거나, 큰 키로 인해 자리가 좁아 팔걸이에 살짝 다리를 올린 선수의 행동도 제지하는 등 까다롭게 굴었다.

선수들에 대한 감시가 워낙 철저해 호텔 밖으로는 아예 나갈 수가 없었고, 훈련과 경기를 위해 김일성경기장에 왔을 때는 화장실도 단독으로는 못가게 했다. 5명을 모아서 화장실을 가게 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당연히 감시가 따라붙었다. 

선수들은 "훈련소에 온 것 같았다"고 했고,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또 다른 선수는 "사람 취급을 못 받은 것 같다"는 감정도 표현했다. 반말이라도 답해주는 게 오히려 양호할 정도로 무시를 당했다는 후문이다. 선수들을 하대하고, 철저히 감시, 통제하는 과정은 마치 전쟁 중의 포로를 대하는 것 같았다. 

◆ 호텔 직원들도 불친절, 경기장에 싸우러 나온 북한

선수들을 감시하는 인사들 외에 호텔 직원들까지 불친절했던 것은 선수들의 감정을 더 상하게 했다. 고려호텔 1층의 상점에서 뭘 물어본 것에도 쌀쌀한 대답이 돌아오자 돌아선 선수들이 있었다. 몇몇 선수들은 호텔 상점에서 과자와 간식류 등은 사먹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는 상상 이상으로 과격했다. 한 선수는 "축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싸우러 온 것 같았다"고 했다. 2대1 패스를 시도하며 빠져나가는 공 없는 선수를 그냥 차버리는 상황이 이어져 연계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그런 파울에도 경고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거칠게 플레이하자 한국 선수들도 응수했는데, 그럴 때마다 북한 벤치에서 욕설을 하고, 뛰어 나오는 등 위협을 가했다. 작은 몸싸움에도 한국 선수들을 압박하려는 듯 북한 벤치에서 으르렁했다. 그런 장면을 보며 한국 선수들은 "지지 않으려는 북한의 의지가 느껴졌다"고 했다. 경기가 아니라 전쟁과 같은 분위기였다.

막상 17일 오후 3시 40분께 축구회관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상영된 경기 전체 영상을 보면 북한이 강한 전방 압박을 효과적으로 펼쳐 한국 대표팀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압박이 성공한 배경에는 경고나 퇴장이 나올법한 플레이가 파울 판정에 그쳐 북한이 원하는 흐름대로 경기를 끌고 갈 수 있었던 면이 있다. 

경기 주심은 카타르 출신 압둘라흐만 알자심이었다. 본래 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매끄러운 판정으로 호평을 받던 인물이나, 북한 현지 분위기에 냉정하게 휘슬을 불지 못한 듯하다는 선수들의 반응이 있었다. 한국 선수들은 부상 위험에 움츠려들 수 밖에 없었다. 경기 내내 위험한 플레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한 두번의 플레이가 한국 선수들을 위축시켰다. 손흥민은 "다치지 않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 손흥민의 얼굴을 가격하는 북한 선수 ⓒ대한축구협회

◆ 해도 너무한 북한 "목 마른데 물도 안 판다더라"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다시 왔을 때 마지막 기억도 좋지 않았다. 공항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목이 말랐던 선수들이 물을 사먹으려는데 팔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선수들은 불쾌감을 느끼며 평양을 떠나왔다. 

북한이 한국 선수단을 철저하게 적으로 대하자 한국 선수들도 독기를 품었다. 내년 리턴 매치에서 똑같이 복수해주자는 마음을 먹었다. 평양에서 펼쳐진 사상 첫 월드컵 예선 남북 겨루기는 남북 선수들의 감정적 거리를 훨씬 더 멀게 만들었다. 축구가 전쟁이 됐다.

한국 대표선수들이 북한 원정에서 상식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관계자들도 거의 한국과 연락하기 어려운 깜깜이 원정에서 어떤 일이 더 벌어졌을지 알 수 없다. 여자월드컵 공동 개최, 올림픽 공동 개최 등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이 겪은 악몽 같은 기억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이 함께 최종예선에 진출해 같은 조가 되면 다시 평양 원정을 가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또 벌어져선 안된다. 협회는 이번 평양 원정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이미 지나간 일'로 치부해선 안된다. 철저히 체크하고 보다 긴밀하게 소통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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