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감독-선수 12인.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연세대백주년기념관, 유현태 기자] 시즌 개막, 슈퍼매치, 동해안더비, 월드컵 직후, K리그 대상 시상식까지. 여러 미디어데이를 다녀봤지만 주로 '취재'는 기자들과 감독-선수가 직접 만나는 '사전 인터뷰'에서 마무리된다. 이후엔 무대에 올라가고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조금은 딱딱한 덕담 혹은 도발을 주고받으면서 본 행사가 진행되곤 한다. 눈길을 끌 만한 '센 멘트'라도 하나 나와줘야 기사를 쓰기가 편하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2019년 10월 이제야 빠진 퍼즐을 찾은 것 같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6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19 파이널 라운드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33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1위부터 6위를 차지한 울산 현대, 전북 현대, FC서울, 대구FC, 포항스틸러스, 강원FC의 감독과 선수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이날 행사가 특별했던 이유는 팬들이 미디어데이에 참가하며 '팬 페스티벌' 형식을 띠었다는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미디어데이에 팬들을 초대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팬들의 효과? 말할 것도 없이 대단했다. 행사장 분위기가 시작 전부터 들썩였다. 삼삼오오 응원하는 팀에 따라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앉아서 응원을 쏟아냈다. "정승원 잘생겼다"처럼 다소 식상한(?) 응원도 있었지만, 최용수 감독에게 "귀엽다"라며 '팬심'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응원의 말도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선 감독과 선수들의 얼굴도 한결 부드러웠다. 이날 260여 명의 팬들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간 '미디어데이'는 취재진, 그리고 선수단의 만남이었다. 선수들도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기자들 앞에서라면 긴장할 터. 혹 실수라도 하면 기사가 크게 나진 않을지 걱정하진 않았을까. 기자들도 감독-선수들의 발언에도 크게 웃거나 박수를 치거나, 야유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미있어야 하는 미디어데이인데 참가하는 사람들은 맘 편히 즐기지 못했던 셈이다.

팬들 덕분에 감독-선수, 그리고 취재진까지 모두 즐거운 축제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이제서야 들었다. 전북 모라이스 감독이 트로피를 홀로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도, 울산 김도훈 감독이 "이제 전북의 우승을 바라지 않는 이들을 위해 우승하겠다"고 도발할 때도 팬들이 환호하니 현장 분위기가 들썩였다. 강원 김병수 감독이 "내년도 축구를 해야 하니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 흔한 말을 해도, 강원 팬들의 환호가 있다면 그리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 '당첨' 공룡좌, 김보경(오른쪽)이 전달하는 사인볼을 받고 있다.

행사는 조금 촉박하게 진행됐다. 팬들이 직접 선수들에게 던진 질문은 선수별로 하나씩 하기도 시간이 빠듯했다. 기자들의 질문 역시 감독들에게 하나, 선수들에게 하나씩 주어졌다. 강원 팬들이 한국영 선수에게 질문을 해달라며 소리를 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팬들이 참여하는 첫 행사라 시간 계산이 쉽지 않았으리라 헤아려본다.

그렇게 웃고 떠든 뒤엔 팬들이 선수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도 있었다. 6명의 선수가 직접 추첨해 6명의 팬에게 사인볼을 전달했다. 사인회 역시 진행됐다. 팬들은 종이는 물론이고 유니폼, 머플러 등 구단의 용품에 선수들의 특별한 흔적을 남겼다. 팬 사인회는 예정됐던 7시 20분보다 1시간 정도 길어져 8시가 훌쩍 넘긴 시간까지 이어졌다. 행사 시간이 조금 더 여유있었다면 어땠을까.

직접 참가했던 팬들 역시 만족도가 높았다. 강원의 '공룡좌'로 유명한 권현 씨는 김보경(울산)에게서 사인볼을 받는 행운을 얻으며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스타와 스타의 만남이었다. 권현 씨는 "태백에서 올라왔다. 내일 출근이라 얼른 돌아가야 한다"면서도 "이런 행사는 처음이다. 예상하지 못한 선물까지 받아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강원 한국영에게 사인볼을 받은 김사랑-한서빈 두 팬도 행사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두 팬은 전북 팬으로 평소에도 경기장을 자주 방문한다고 밝혔다. 김사랑 씨는 "K리그 인스타그램에서 신청했다. 무조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주에서 올라왔다. (선수들을)실제로 보니 더 잘생기고 멋지다. 평소에 텔레비전으로 보던 선수들을 실제로 보니 느낌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서빈 씨는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올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한국영 사인볼을 받은 김사랑-한서빈 씨

선수들도 팬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서울을 제외한 5명의 선수들은 행사를 마친 직후 연고 도시로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울산 김보경, 전북 문선민, 대구 정승원은 모두 기차 시간을 미루면서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한 뒤 행사를 마무리했다. 포항행 막차를 타야하는 완델손은 먼저 떠나야 했지만, 뒤에서 기다리던 포항 팬들만큼은 완델손의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완벽하지 않았던 일정 속에서 오히려 선수들이 팬들을 아끼는 마음을 확인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참가자 신청 방식은 다시 고민해볼 문제다. 연맹은 K리그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500여 명이 신청했지만 50명만 선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각 구단 SNS에서도 200명을 선정하고, 현장에서 250명의 팬들에게 선착순으로 입장권을 배부할 계획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행사가 진행됐지만 현장 접수 팬들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참석하지 않은 이들이 있어 계획했던 500명은 채우지 못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노릇. 일단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면 축구는 그저 공놀이일 뿐이다. 공 한 번 차지 않는 '미디어데이' 역시 함께 즐겨주는 팬들이 있으니 더욱 신나고 알차지 않았던가. 이제 5경기를 남기고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위해 싸울 파이널A, 그리고 여유도 없이 '생존'에 목숨을 걸고 있을 파이널B가 각각 20일과 19일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팬들을 위해 뛸 선수들, 선수들을 뛰게 만들 팬, 파이널 라운드를 기다리며 함께 가슴을 두근거리는 이유다. 

감독과 선수들을 취재하러 갔다가, 팬들의 가치와 힘을 새삼 느끼고 돌아간다.

스포티비뉴스=연세대백주년기념관,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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