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정유미. 제공|매니지먼트숲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태생부터 올해의 문제작이었다. 동명의 원작소설이 워낙 후끈했던 탓이다. 82년 태어난 김지영이란 여자를 주인공 삼아 동시기 여성들이 흔히 겪을 법한 경험과 고충을 늘어놓은 이야기는 출간과 동시에 큰 반향을 불렀다. 일부에선 공격적으로 반응하기까지 했는데, 이 책을 인증한 여자 아이돌에게 테러나 다름없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어떤 이에겐 위로를, 어떤 이에게 공감을 준 이야기는 그래서 뜨겁게 영화화될 수밖에 없었다.

김지영 역을 맡은 배우는 1983년생인 정유미. 23일 개봉을 앞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비로소 김지영의 얼굴을 본 느낌이었다. 에피소드와 통계로 채워진 대한민국 어떤 여자의 이야기가 그녀를 통해 생기와 온기를 지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스크린에 펼쳐졌다. 영화엔 정유미의 온화하고 단단한 에너지가 드리워져 있다. 그녀는 '무심한 내가 위로를 전한답시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하는 마음이 앞섰다면서, 김지영이 아닌 정유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은 시대를 대변하는 여성이다. 제안받고 어떤 기분이었나.

"받았던 시나리오 중 내가 할수 있겠다 해야되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물리적인 부대낌이 없었다. 욕심이 나서 하고싶은데 해도 안될 때도 있고, 예전에는 투자가 안된 경우도 있다. 이 작품에서 저라는 배우에게 제안을 해주셨고,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이야기도 환경도, 지금이라면 내가 이런 걸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한때 주인공을 부담스러워했고, 피한 적도 있었다.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때는 제 포시션에 그게 맞았다면 지금 이때 할 수 있는 영화다. 또 언제 주연만 하겠나. 다른 작품에선 조연으로, 단역으로 흘러가고 싶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나.

"시나리오를 덮고서 '나는 어디있지, 난 뭐하고 있지, 내 주변은 어떻지, 일단 나부터 돌아봐야겠다, 나는 괜찮은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 삶이 김지영의 삶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이 영영화가 육아하는, 경력이 단절된 여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닫혀있고 상처받고 그런 저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도 방황하고는 있지만 이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돌아보는 중이다. 이 모든 스케줄이 끝나봐야 알 것 같다."

-원작소설의 반향이 컸다. 논란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고 소설을 읽었다. 왜 이렇게 논란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고, 다야한 시각이 있을 수 있으니까 어떤 부분에선 이럴 수도 있겠다 했다. 이해해보고 싶은 상태다. 드러내지 않는 분도, 다르게 이야기하는 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상의 의견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사회 때 '내가 이걸 연기해도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뜻인가.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심한 제가 배우랍시고, 이런 위로를 전한답시고 표현하는 게 맞나 그런 미안함이 있었다. 왜냐면 너무나 보편적 이야기이고 엄마 할머니 가족 생각이 난다. 그런데 저는 가족에게 무심한 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다. 가족에게 보여드리고 싶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하는."

-보고 나니 어땠나.

"울지는 않았다. 왜냐면 제가 했기 때문에. 그냥 뭔가 몽글몽글해졌다? 저는 몽글몽글했다. 다시 한번 볼 계획인데 어떤 감정이 들까 모르겠다.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보면 어떤 감정이 들지 궁금하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정유미. 제공|매니지먼트숲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세상,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이 이야기하는 세상의 이야기만으로도 인터뷰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미덕과 힘이 있다.

영화 속 김지영에게는 삶의 기운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른바 '독박육아'의 '경단녀' 김지영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육아와 집안일을 쳇바퀴돌듯 이어가며 지낸다. 파리한 얼굴과 손목의 보호대,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옷차림. 커피라도 한 모금 하며 유모차를 흔들고 쉬고 있으면 '나도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 마시고 싶다'는 가시돋친 남의 푸념이 들려온다. 그녀는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커피 마시는 팔자 좋은 여자일까. 찬찬히 짚어가는 김지영의 이야기가 가 닿는 곳은 우리의 '공감'이다. 정유미에게도 그랬다. 영화를 하고서야 손목 보호대를 하고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단다.

-주위에선 반응이 어땠나.

"시나리오 말고 소설을 읽었으니까 '잘 찍어' '고마워' 그런 사람이 많았다. 극중 유모차를 발로 미는 장면은 감독님이 진짜 그렇게 하셨다더라. 아들 둘을 키우고 계신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디테일이다.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는 장면도 그렇다. 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그걸 많이 하고 계신 게 보이더라.

그래서 이해하게 됐다기보다, 알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희 그렇게 애들 키웠구나. 고생하네 이런 마음. 요즘 기저귀 보면 '커서 효도할게요' 이런 문구가 있다. 추석때 그걸 보면서 '애기가 이걸 알까' 하기도 했다. 엄청 힘들다가도 '어휴'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

-아기와 함께 영화를 찍어보니 어떤가.

"말이 안통하니까 힘들고, 어머니들 보면 '너무 대단하세요' 그랬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아이가 주는 단순한 기쁨이 있더라. 이 친구에게 '이 장면은 이렇게 해줘' 할 수가 없다. '아빠왔다' 그러면 자기 아빠인 줄 알고 '아빠?' 이런게 반응하는 게 있었다. 원래 극중엔 이름이 지원이인데 '지원아' 하면 안 봐서 아기 이름을 바꿨다."

-경력이 단절된 김지영이 옛 동료를 만나는 등 일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다. 스스로 돌아볼 떄는 어떘나.

"저는 너무너무 운이 좋게도 좋은 시작을 했던 터라 진짜 감사해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너무너무 일을, 연기를 잘하고 싶다. 솔직히 선택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할때마다 삼청동에서 인터뷰를 하니까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사랑니'란 영화(정유미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를 삼청동에서 찍었다. 이렇게 번화하기 전에. 까먹고 있다가도 여기 오면 그 생각이 안 날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생각,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당시엔 첫사랑 같은 10대의 감정을 치열하게 그렸고, 지금은 동시대 30대의 삶을 그려낸다. 변화도 체감되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진짜.(웃음) 그때는 그게 맞았고 지금은 이게 맞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지나가나 싶다. 초심을 돌아보게 된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정유미. 제공|매니지먼트숲
영화 속 지영은 저도 모르게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남의 자아를 빌려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한다. 지영은 보고픈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외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죽은 선배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빙의'로 표현된 순간들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등장할 때마다 극중 인물은 물론 보는 사람마자 긴장시킨다. '빙의' 하면 떠오르는, 회까닥 다른 사람이 되어 홀린듯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아도 긴장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지영이 자신을 잃어버린 이유를 찾아가는 스릴러의 긴장감과 함께 지영과 지영이 빙이된 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어디 하나 틀린 데 없는 '맞는 말'들은 콕콕 가슴에 와 박힌다. 섬세하게 잡힌 톤과 장면도 그대로 먹먹하게 전해진다.

-담담하게 그려낸 빙의 장면이 인상적이다. 대개 '빙의'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된듯이'라고 떠올리지 않나.

"시나리오에 있는 상태 그대로 있는 게 제가 해야 했던 일이었다. 빙의 장면은 여러 톤을 고민했다. 감정을 전달하는 게 먼저라 생각했다. 현장의 배우들, 스태프, 감독님에게 다가가는 게 1번, 그게 된다면 쭉 여러 테이크를 가면서 찾아봤다.

감독님도 저도 고민했다. 저희는. 진짜로 감정이 전달되기만 하면 괜찮다고 했다. 제가 확 변하는 건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도 같았고. 저희는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지영이라는 인물을 빌려서 엄마 할머니 친구가 하는 이야기인데, 그건 지영이 마음 속에 늘 있었던 감정같다.

저는 그 장면이 되게 좋았다. 애기 지영이가가 '엄마는 왜 선생님 안했어'라고 묻고 엄마가 '지영이 엄마 하니까' 하는 장면. 시나리오 봤을 떄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지영이가 외할머니를 보는 장면 장면 등이 영화에는 짧게 보여지지만 지영이 안에는 자기도 모르게 켜켜이 쌓여 있었을 것 같다. 커서 힘든 상황이 닥치니까 그런 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이 되어서라기보다 그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했다."

-공유와 영화를 보고 나서 인상깊었던 지점이 같았나? 

"시나리오 본 대로 나와서 좋다. 다행이다 했다. 이 부분 좋았다 울컥했다 이야기했는데 각각 포인트가 달랐다.

-어머니로 등장한 김미경과 호흡이 인상적이다.

"일할 때는 상대만 본다. 상대 배우 눈만 본다. 선배님이 저희 엄마로 나와주셔서 감사했다. 너무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미경 선배님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너무 좋았다. 엄마가 돼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한 것 같다.

둘이 마주하는 장면은 오로지 공간 안에서 감정만으로, 호흡만으로 쭉 갔던 것 같다. 그 기억만 난다.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하자 이건 아니었다. 이게 어떤 신이고 어떤 마음이고 한 마음인 걸 알기 때문에 거의 말을 안했다. 공간 안에서 각자 해야하는 걸 호흡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정유미. 제공|매니지먼트숲
시작부터 뜨거운 '82년생 김지영'은 어디에 가 닿을까. 그녀가 공유와 처음 만난 영화 '도가니'는 추악한 사회의 일면을 고발하며 관련 법을 바꿨고, 세상을 바꾼 영화로 널리 회자됐다. 

'82년생 김지영' 또한 이 세상을 이야기한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한 여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세상이 이만치 불공평하다는 고발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한 공감이다. 그 공감은 그런 딸을 키워낸 어머니나 그런 아내와 사는 남편, 그런 누나를 둔 동생은 물론 같은 세상을 사는 모두에게 닿을 수 있다. 영화를 둘러싼 말들이 무성하지만, 정유미는 영화가 영화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같은 마음이다. 이 사려깊고 또 날카로운 영화는 영화로 즐길만한 충분한 재미와 완성를, 그리고 따뜻함을 지녔으니까.  

-세상을 바꾼 영화로 일컬어지는 '도가니'에서 공유와 함께했다. 그리고 '부산행'에 이어 '82년생 김지영'으로 다시 만났다. 의미심장한 재회다. 

"오빠는 원래 유명했고, 제가 조금 더 받아들일 수 있는 배우가 디고 이런 작품으로 연대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오빠에게도 고맙다. 저는 이 역할에 오빠가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분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여러 작품이 있었을 텐데 의미있다고 생각한 포인트가 잘 맞아서 출연해준 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재미있게 찍은 배우랑 다시 만나면 더 좋다. 편하고 재미있다. 영화에도 보여질 거라고 생각하고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걸 하기 위해서 만났으니까."

-이 작품 출연하며 용기를 냈느냐는 질문에 '용기낼 일은 따로 있다'고 했다. 용기내야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너무너무 많다. 사실 작품을 선택하는 일은 그냥 늘 해왔던 일이고. 용기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하지만 이걸 선택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나.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문자도 많이 받았다. 이게 그정도의 일이었나 싶으면서도 많은 분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시구나 인지가 됐다. 뒤늦게 부담이 끼치거나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만들고 가고자 했던 마음이 하나였기 때문에 그것이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걸로 너무 스트레스 안받으셨으면 좋겠다. 응원해주시고 용기냈다 표현해주시는 분이 고맙다. 저를 생각해주신 거니까. 감사하지만 스트레스 안 받으셨으면 좋겠다."

-이 영화. 많은 말들이 오간다. 토론을 하기 위한 정제된 말이 아니라 격앙된 말이 오가고 댓글이 달린다.

"정말 많은 댓글이 있더라. 다 읽지를 못하겠더라. 현실감이 없다. 다양한 자기 이야기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해해보고도 싶다. 하지만 당장 제가 해야하는 일은 잘 만든 이 영화를 공유하고 이 진심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은 사람이 또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트레스 덜 받으셨으면 좋겠다. 논리적 비판이랑 비난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논란과 질문, 편견에 가두기엔 아까운 영화다.

"영화를 영화로 보시고 그 느낌이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아깝지 않나. 이 영화가 아깝다기보다 그 시간들이. 그런 걸로 소비되는 게 아닌데. 소모되는 일들이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빨리빨리 지나간다. 충분히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망가지거나 없어진다라는 건 슬픈 일인 것 같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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