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멸의 기록, 불멸의 전설들…. 한 시즌 30승을 달성한 장명부,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한 최동원, 4할타율을 작성한 백인천(왼쪽부터). ⓒKBO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장명부 한 시즌 30승은 현대 야구에서는 정말 깨기 힘든 기록이죠."

"최동원 한국시리즈 4승을 누가 깰 수 있을까요?"

"선동열 0점대 평균자책점은요? 백인천 4할 타율은요?"

"류현진 신인 트리플크라운, 이대호 타격 7관왕도 쉽지 않죠."

1982년 출범한 KBO리그가 올해 38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KBO리그 역사가 깊어지면서 기록도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그 기록 속에는 숱한 전설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우리의 추억도 알알이 박혀 있다.

야구인들과 야구팬들 사이에서 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전설로 회자되는 불멸의 기록들. 스포티비뉴스는 창간 5주년을 기념해 야구인 50명에게 특집 설문조사를 했다.

'KBO리그 역사상 가장 깨기 힘든 불멸은 기록은?'

야구인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설문조사 어떻게 했나?

설문에는 총 50명이 참여했다. 우선 10개 구단 단장, 감독(또는 코치), 선수 1명씩 총 30명이 나섰다. KIA 맷 윌리엄스 신임 감독은 KBO리그의 역사를 알 수 없어 서재응 코치가 대신 참여했고, 아직 새 감독을 선임하지 않은 롯데는 임경완 코치가 설문에 응했다. 선수는 두산 유희관, SK 박정권, 키움 박병호, LG 박용택, NC 양의지, kt 유한준, KIA 양현종, 삼성 우규민, 한화 김태균, 롯데 손아섭 등 KBO리그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각 팀 베테랑급 간판스타가 포함됐다. 여기에 올 시즌 KBO리그 중계를 하고 있는 SPOTV를 비롯해 방송 4사의 해설위원 10명과 KBO리그 역사를 꿰뚫고 있는 전 감독 10명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

10개의 예시 가운데 답변을 1개만 선택할 수 있다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변별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서 3개씩 선택하도록 했다. 50명이 3개씩 골랐기 때문에 총 150표가 나온 셈이다.

◆ 1위=장명부 시즌 30승(36표)

야구인들이 생각하는 'KBO리그 역사상 가장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 1위는 '장명부의 시즌 30승'이었다. 총 150표 중 가장 많은 36표를 받았다. 24%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재일교포 출신의 고(故) 장명부는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 입단 첫해에 무려 30승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모두들 "투수 보직이 분업화된 현대 야구에서는 30승은 불가능한 기록"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팀당 144경기 체제로 확대됐다고는 해도 선발투수가 한 시즌 30경기 남짓 선발등판하는 환경에서 30승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뜻이다.

박용택은 "요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30경기 나가서 다 승리투수가 돼야한다는 얘기인데 무리다"며 웃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없다. 구원투수가 승리를 날릴 수도 있다.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 '노 디시전 게임'도 발생한다. 올 시즌 두산 린드블럼도 30경기에 등판했는데, 20승3패를 기록해 7차례는 '노 디시전 게임'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968년 데니 매클레인(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이 31승을 올린 것이 마지막 30승으로 남아 있다.

장명부는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 소속으로 1978년과 1980년 15승을 올린 에이스급 투수였다. 그런 투수가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초창기에 KBO리그에 왔으니 30승이라는 대기록이 탄생할 수 있었다. 팀당 100경기를 하던 1983년, 장명부는 절반이 넘는 60경기에 등판했다. 요즘엔 한 시즌 200이닝을 던지는 투수도 찾기 쉽지 않은데 무려 427.1이닝을 소화했다. 선발 44경기, 36완투 등도 흉내 내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꼽힌다.

◆ 2위=최동원 한국시리즈 4승(24표)

한국시리즈의 계절이 오면 늘 회자되는 전설이 바로 고(故)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이다. 7전4선승제로 펼쳐지는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혼자 4승을 기록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총 150표 중 24표를 얻어 16%의 득표율로 '불멸의 기록' 2위에 올랐다.

최동원은 1984년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로서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에 등판해 4승1패를 기록했다.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에 이어 6차전에서는 5회부터 구원등판해 구원승, 7차전에서 완투승을 올렸다.

한국시리즈 4승은 KBO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단일 월드시리즈에서 4승을 올린 투수는 없다. 일본에서는 1958년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님'으로 유명한 이나오 가즈히사(니시데쓰 라이언스)와 1959년 스기우라 다다시(난카이 호크스)가 일본시리즈 4승을 기록한 바 있지만 역시 60년이 지난 기록이다.

1984년 당시 롯데 사령탑이었던 강병철 감독은 "프로 초창기였으니까 그런 기록이 가능하지 않았겠나. 요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당시 야구는 그랬다. 박철순도 그렇고, 장명부도 그렇고, 최동원도 그렇고, 에이스가 그런 식으로도 던지던 시절이다. 하늘로 먼저 간 동원이를 생각하면 늘 짠하고 미안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한국시리즈 4승은 깨기는 어렵고 타이기록까지 가능하지 않나"라며 웃더니 "4경기에 선발승을 올리기는 힘들고, 구원승으로 운 좋게 4승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론상 그렇지 요즘 야구에서 혼자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겠나"라고 의견을 밝혔다.

▲ 롯데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올리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KBO
◆ 3위=백인천 4할 타율(21표)

백인천은 1982년 0.412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 이후 누구도 4할의 벽을 넘어서는 데 실패했다. 백인천 4할 타율은 150표 중 21표(14%)를 얻어 3위에 선정됐다.

김재박 전 LG 트윈스 감독은 "백인천 감독님은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오랫동안(19년) 활약하면서 타격왕(1975년 퍼시픽리그)까지 했던 대단한 타자였다. 원년 80경기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4할 타율도 가능하지 않았겠나"라면서 "요즘 같은 게임수(144)에서는 4할은 어렵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백인천은 1982년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팀의 80경기 중 72경기에 출장했고, 250타수 103안타로 타율 0.412를 기록했다. KBO 역사상 그 다음으로 높은 단일 시즌 타율은 1994년 이종범(해태 타이거즈)의 0.393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4할 타율은 1941년 테드 윌리엄스(보스턴 레드삭스)가 마지막 주인공으로 남아 있을 만큼 현대 야구에서 4할은 범접하기 힘든 신의 영역으로 꼽힌다. 유승안 전 경찰청 감독은 "타자에게 3할도 예술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4할을 칠 수 있는 타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선동열은 최근 자전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을 펴냈다. 선동열은 3차례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곽혜미 기자
◆ 3위=선동열 0점대 평균자책점(21표)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열은 규정이닝을 채운 해에 0점대 평균자책점을 무려 3차례나 작성했다. 1986년 0.99, 1987년 0.89, 1993년 0.78을 기록했다. 0점대 평균자책점은 선동열 외에 누구도 해내지 못했다. 활과 칼로 전쟁하던 시대에 홀로 총을 들고 나타난 것처럼, 선동열은 그 시절 압도적 존재였다.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의 기가 죽었다.

선동열의 0점대 평균자책점은 백인천의 시즌 4할 타율과 함께 21표(14%)를 받아 공동 3위에 랭크됐다.

대부분 "앞으로 불가능한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2.32로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한 류현진(LA 다저스)도 KBO리그 시절 0점대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뛰던 2010년에 가장 좋은 1.82를 기록했다.

일부에서는 "혹시 훗날에 류현진보다 더 괴물 같은 투수가 나와서 '미친' 시즌에 규정이닝을 채우고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며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지만, "어쩌다 한 번은 몰라도 선동열처럼 3차례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할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 5위=박철순 시즌 22연승(17표)

OB 베어스 박철순은 팀당 80경기를 하던 원년에 24승4패7세이브를 올리면서 최고 스타로 각광 받았다. 무엇보다 그가 기록한 22연승은 경외심까지 들게 만든다. 17표(11.3%)를 받아 5위에 자리 잡았다.

과거 현대 정민태가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기 전인 2000년부터 KBO리그에 복귀한 뒤 2003년 8월까지 21연승을 기록하며 박철순 22연승에 일보직전까지 간 적은 있다. 22연승 자체는 앞으로 누군가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일 시즌 22연승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 야구에서 한 시즌 22승도 어려운 마당에 22연승을 기록하는 것은 천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실제로 단일 시즌 22연승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 기록은 칼 허벨이 뉴욕 자이언츠 시절이던 1936~37년 2년에 걸쳐 기록한 24연승이지만, 단일 시즌만 놓고 보면 1888년 팀 키프와 1912년 루브 마콰드(이상 뉴욕 자이언츠)의 19연승이 최고 기록이다. 일본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은 마쓰다(1951년 요미우리)와 이나오(1957년 니씨데스)의 20연승이다.

▲ OB 베어스 박철순은 1982년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 시즌 22연승을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
◆ 기타 기록들

6위는 류현진이 한화 입단 첫해에 달성한 트리플 크라운(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과 신인왕, MVP 동시석권이 꼽혔다. 총 10표(6.7%)를 받았다. 이어 롯데 이대호가 2010년 작성한 타격 7관왕이 9표(6%)로 7위에 올랐다. 해태 이종범의 1994시즌 84도루는 5표(3.3%)를 얻어 8위, NC에서 활약했던 에릭 테임즈가 2015년 기록한 40홈런-40도루가 4표(2.7%)를 받아 9위, 삼성 이승엽이 2003년 작성한 시즌 56홈런이 3표(2%)를 획득해 10위로 뒤를 이었다.

이 기록들도 다가서기 어려운 기록이다. 그러나 몇몇 기록은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깨질 여지는 있다. 이승엽의 56홈런이 10위에 랭크된 것도 그렇다. 누구도 50홈런을 꿈꾸지 못하던 시대에 KBO리그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는 위대한 기록을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144경기 체제로 경기수가 늘어나 깨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힘 좋은 외국인 타자가 나타나거나, 다시 타고투저 흐름이 만들어지면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스포티비뉴스는 25일 창간 5주년 특집 <1편> 'KBO리그 역사상 가장 깨기 힘든 불멸의 기록'에 이어 프리미어12 대회에 앞서 창간 5주년 특집 <2편> '역대 국제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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