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는 28일 김태형 두산 감독에게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배영수는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김 감독으로부터 "플레잉 코치 혹은 은퇴 후 코치를 하는 것이 어떻느냐"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 한국시리즈 이후 현역 연장과 은퇴의 두 갈래 길을 놓고 고민하던 배영수는 은퇴를 선택하며 20년간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정했다.
'현역 최다승 투수'는 언제나 배영수를 따라다니는 훈장이었다. 통산 138승을 거둔 배영수는 현역 선수 중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다. 역대 투수를 통틀어도 5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훈장처럼 빛나는 선수 생활만 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악의 순간까지 모두 경험하는 굴곡진 선수 생활을 했다. 야구에 대한 진심 어린 열정과 강인한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오랜 시간 마운드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2000년 삼성에서 데뷔한 배영수는 시속 150㎞가 넘는 광속구와 슬라이더, 그리고 스플리터를 앞세워 빠르게 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했다.
2년째인 2001년 13승(8패)을 거두며 이름을 알린 배영수는 2004년 17승(2패)로 시즌 MVP가 되면서 최고점을 찍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비공인)이라는 역사를 쓰기도 했다.
이후에도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삼성의 기둥 투수 몫을 단단히 해냈다. 당시 붙은 별명이 '푸른 피의 에이스'였다.그러나 부상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를 옥죄어 왔다. 그의 팔꿈치 인대는 점점 힘을 잃어 갔고 결국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하게 된다.
그를 투혼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만든 것은 2006년 시즌이었다. 그해 3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대표 팀 투수로 발탁된 그는 일본 스즈키 이치로의 엉덩이에 공을 던져 '배열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팔꿈치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그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8승9패4홀드, 평균자책점 2.92를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 2승1세이브1홀드를 기록하면서 팀의 우승에 팔꿈치를 바쳤다.
그가 수술대에 올랐을 때 집도의가 "수없이 많은 팔꿈치 수술을 해 봤지만 배영수처럼 인대가 엉망인 선수는 처음 봤다"고 말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수술 이후 마운드에 다시 선 배영수는 낯선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시속 150㎞가 넘던 광속구는 더 이상 던질 수 없었다. 10㎞ 이상 스피드가 줄어들며 예전의 위력을 찾지 못했다.
마음은 여전히 광속구를 던지는 투수였지만 몸은 예전의 배영수가 아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유형의 투수로 태어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말이 적응이지 완전히 새로운 투수가 돼야 하는 도전이었다. 마음이 던지고 있는 150㎞를 몸이 따라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과 같았다.
2009년에는 1승12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배영수는 "그때 정말 야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었다"고 할 만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배영수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강한 야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가진 선수였다.
새로운 구속에 적응하며 이전과는 다른 패턴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12년 다시 10승 투수(12승)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듬해인 2013년엔 14승으로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영원한 삼성맨일 줄 알았던 배영수에게도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두 번째 FA가 된 2015년 시즌을 앞두고 한화로 이적해 새로운 야구 인생에 도전하게 된다.이후 단 한번도 10승 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배영수의 도전은 계속됐다.
2018년 시즌이 끝난 뒤엔 한화에서 은퇴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새 팀을 찾아 나섰고 두산이 손을 내밀어 마지막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올 시즌 성적은 구원으로만 37경기에 등판해 1승2패, 평균자책점 4.57.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불펜의 리더로 후배들을 이끌며 두산 우승에 힘을 보탰다. 김태형 감독은 배영수의 이런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며 코치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영수의 현역 투수 마지막은 그의 야구 인생처럼 극적이었다. 그리고 더 할 나위 없이 화려했다.10월 26일 고척돔에서 열린 키움과 한국시리즈 4차전, 연장 10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 김태형 감독이 마무리 이용찬에게 올라간 것이 마운드 허용 방문 횟수(2회)를 초과해 어쩔 수 없이 투수를 교체해야 했다.
김 감독의 마지막 선택은 배영수였다.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박병호를 삼진, 샌즈를 투수 땅볼로 솎아 내며 팀 승리를 지켰다. 신이 내린 기회를 하늘의 선택을 받은 배영수가 살려 낸 것이다.
이 승리로 배영수는 개인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에서 25경기 출장이라는 새 기록을 세웠고 KBO 최고령(만 38세 5개월 22일, 이전 기록 임창용 38세 5개월 3일) 한국시리즈 세이브 기록도 갈아 치웠다.
배영수는 "하늘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다는 것이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해 보고 싶은 것을 다 해 봤다. 원 없이 야구하고 물러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은 없다. 앞으로 남은 제2의 인생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배영수 KBO 통산 기록 : 499경기 출장 138승 122패 3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4.46
◆배영수 KBO 수상 경력 : 다승왕 2회(2004 17승, 2013년 14승), 승률왕 1회(2004년 0.895=17승2패), 탈삼진왕 1회(2005년 147탈삼진), 정규시즌 MVP 1회(2004년), 골든글러브 1회(2004년) 수상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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