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대방동, 박대현 기자 / 김효은 영상 기자] "40대 이후로도 운동 선수로 살 순 없다. 통계를 보면 평균 23.7세에 유니폼을 벗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두 번째 삶을 계획해야 하는 이유다."

2019년 스포츠 멘토링 프로그램이 30일 서울 대방동 성남고에서 열렸다. 대한체육회가 '두 번째 삶'을 고민하는 전현직 운동선수를 위해 만든 프로그램.

다른 분야로 뛰어들어 성공한 운동 선배나 진로 고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무 전문가를 소개해 준다.

대한체육회 임성민 진로 교육 강사가 마이크를 쥐었다. 미래를 향한 준비와 도전을 주제로 90분 간 열띤 강의를 펼쳤다.

임 강사는 크게 세 챕터로 강의를 진행했다. 첫 장은 '왜(Why)'였다.

왜 진로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를 설득했다.

▲ 2019년 스포츠 멘토링 프로그램이 지난달 30일 서울 대방동 성남고에서 열렸다. 대한체육회가 '두 번째 삶'을 고민하는 전현직 운동선수를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 대방동, 김효은 기자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화면에 떴다. 카이로스는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기회를 관장하는 신이다.

카이로스는 앞쪽 머리카락이 길다. 반면 뒤쪽은 휑하다. 이유가 있다.

임 강사는 "기회라는 건 항상 오지 않는다. 카이로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기회가 왔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위해서다. 중요한 건 뒷머리다. 왜 허전한지 주목해야 한다.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을 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몸옆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기회라는 게 늘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체육계 운동선수 현황을 보여줬다. 현재 국내 운동부에 몸담은 학생 선수는 약 10만 명(57개 종목).

이들 가운데 프로 구단이나 실업 팀에 입단하는 이는 만 명 남짓이다. 약 10%에 불과하다.

프로 선수로만 기준을 좁히면 '1%'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축구 선수로 20대 중반까지 공을 찼던 임 강사는 "은퇴를 했는데 갈 데가 없었다. 직업이 없더라. 앞으로 60년 동안 뭐 해먹고 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며 되도록 일찍부터 '선수 이후 삶'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강조했다.

전 국가 대표 축구 선수 이영표(42)를 스크린에 띄워 설득력을 더했다. 이영표가 지상파 방송에 나와 인터뷰한 장면을 발췌했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건 힘들다. 힘든 게 당연하다. 축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 건 정말 힘들다. 나 역시 (운동부 시절) 수업에 들어가지 못해서 공부를 일반 학생처럼 하진 못하더라도 책을 읽어서 (지식 격차를) 메워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100권 독서를 목표로 삼았었다."

"(운동 밖에) 공부와 진로 고민까지 목표로 잡아 힘들다면 그건 바람직한 힘듦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만약 중고교 선수가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됐지. 공부는 따로 하지 않기에 별로 힘든 게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고민해봐야 한다. 40대 이후에도 현역 선수로 살 수는 없기 때문."

강의를 듣는 성남고 검도부, 야구부 학생 60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은퇴 후 삶에는 지도자만 있지 않다

목표를 잡았다면 두 번째는 방향이다.

한국에는 약 12000개 직업이 있다. 이 가운데 스포츠와 관련된 직업은 여든 개 가량.

스포츠 캐스터와 심판, 기록원, 체육교사 등 다양하다.

임 강사는 "절대 다수가 (은퇴 뒤에는) 지도자나 트레이너로 일할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여기서 조금은 탈피할 필요가 있다. 생각의 크기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매력적인 선택지가 많다. 고척돔이나 잠실학생체육관 등 시도(市道)가 운영하는 스포츠 시설 관리자로도 눈을 돌려봄직하다.

마케팅적으로 접근하면 에이전트나 중계권 라이선스 관리자, 레크레이션 강사 등 다양하게 가지치기를 할 수 있다.

임 강사는 에이전트를 예로 들었다. 운동과 운동부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 에이전트로 나선다면 강점이 많다고 했다.

"생각해보라. 아무래도 비선수 출신보다는 선수를 이해하는 폭이 넓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맥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고. 슬럼프나 커리어 정점을 찍을 때 조언할 수 있는 깊이가 남다를 확률이 높다."

"단순히 '잘 좀 쳐야하지 않겠어'보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봤는데 A방법을 써보니까 효과가 더 낫더라'고 말하는 게 훨씬 강력하다. 설득력이 있다. 류현진(32, LA 다저스)을 관리하는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도 야구 선수 출신이다. 영화 '머니볼'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빌리 빈 단장도 선수 출신이다. (진로를 설정할 때) 방향을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임 강사는 스포츠 기자, 평론가도 입에 올렸다. 기자가 몸 담은 스포티비뉴스(SPOTVNEWS)에도 선수 출신 아나운서와 기자가 꽤 있다.

"SK 와이번스 손혁 투수코치를 보라. 지금은 코치로 활동하시지만 해설위원, 칼럼니스트 등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셨다. 운동을 글로 배운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시선을 담을 수 있다."

진로 방향을 설정할 때 축으로 삼으면 좋을 5가지를 제시했다. ①재능 ②흥미 ③성장 ④윤리 ⑤감수하기를 꼽았다.

"'난 아무것에도 관심 없어요' 이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분명 관심이 동하는 분야가 있다. 그걸 실마리로 삼아서 쭉 좇아가면 된다. 재능이 있고 성장한다는 느낌이 오면 자연스레 흥미가 붙는다. 그때부턴 일사천리다."

윤리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임 강사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재능과 흥미가 있는 분야라도 (사회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 나한테 떳떳한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최근 고등학교 야구 선수에게 스테로이드를 팔아 적발된 사례가 있지 않나. 당사자는 제자가 조금 더 야구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몰라도 사회 윤리적으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윤리라는 단어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감수하기를 설명할 땐 이영표 인터뷰를 다시 한 번 영상으로 띄웠다. 성남고 2학년으로 팀 내 유격수를 맡고 있는 김준상(17) 군도 이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충돌할 때 하고픈 일을 먼저 하면 (나중에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온다. 선택은 여러분 몫이다. 축구 선수로서, 학생으로서 해야할 일을 먼저 한다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 17살 고교생 투수의 '남다른 계획표'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잡았다면 마지막은 실천이다. 삶은 행동이다. 행동한 결과다.

임 강사는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으로 유명한 오타니 쇼헤이(25, LA 에인절스)를 입밖에 냈다. 오타니가 고교 시절 목표 달성법으로 활용했다는 '만다라트 기법(MANDALA-ART)'을 소개했다.

일본 디자이너 이마이즈미 히로아키가 1987년 불화 ‘만다라'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이 기법은 가로 3X세로 3으로 이뤄진 사각형 9개가 기본 꼴이다.

가장 중심 사각형 중심칸에 제일 중요한 목표를 적는다. 이후 마인드맵처럼 확장해 나간다.

최중요 목표 주변 여덟 칸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1차적으로 적는다. 나머지 예순네 칸에는 그 방법을 숙련시키기 위한 구체적 소(小)계획을 채운다.

예컨대 오타니는 고교 1학년 때 '일본프로야구(NPB) 전 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최중요 목표로 적었다. 그리고 몸 만들기, 제구, 멘탈 등을 여덟 칸에 나눠 적었다.

가장 눈에 띈 건 운(運)이었다. 운은 사람이 관장하는 영역이 아니다.

허나 열일곱 살 오타니는 달랐다. 운의 영역마저도 노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대상으로 봤다.

인사하기와 쓰레기 줍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야구부실 청소, 긍정적 사고, 책읽기, 물건을 소중히 쓰기 등을 적었다. 야구장 안팎 생활까지 절제하고 통제하면서 운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주했다. 

강당에 모인 학생과 기자 모두 혀를 내둘렀다.

결국 오타니는 목표를 이뤘다. 계획표를 적은 지 2~3년 만에 일본 구단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임 강사는 "작은 파도가 모여 큰 파도를 이루듯 구체적인 실천 계획 64개를 작성하면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30일) 당장 집에 가서 만다라트를 기획해보는 건 어떨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시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스포티비뉴스=대방동, 박대현 기자 / 김효은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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