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를 이어 KBO리그를 평정하고 있는 이정후(왼쪽)와 이종범 LG 코치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척돔, 김태우 기자] “안타를 만들어내는 능력만 따지면 아버지보다 스윙 메커니즘이 더 좋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현 LG 코치는 한국야구 역사에 남은 불멸의 이름이다. KBO리그 통산 1706경기에서 타율 0.297,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를 기록했다. 공·수·주 모두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것도 대부분의 시간을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자리에서 보냈다. 야구 관계자, 특히 원로들은 “이종범처럼 다재다능한 선수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시를 기억하는 상대 팀 팬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떠올린다.

그런데 그 이종범보다 “스윙 하나는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있다. 이 영광의 평가를 받은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그의 아들인 이정후(21·키움)다. 타격 지도자, 해설위원들은 “적어도 안타를 만들어내는 스윙 메커니즘은 아버지보다 낫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후는 올해 프로 3년 차, 그것도 고졸이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이종범과 동시대에 뛰었던 선수이자 4번 타자로 활약했던 김경기 SPOTV 해설위원은 “스윙 메커니즘 하나만 놓고 보면 이정후가 더 낫다”고 단언하면서 “맞는 면도 더 많고, 메커니즘과 안타를 만들 수 있는 포인트 또한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다”고 설명했다.

역시 통산 1681안타를 친 대타자 출신인 김재현 SPOTV 해설위원 겸 대표팀 타격 코치 또한 이런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김 위원은 “힘은 아버지가 더 나았지만, 적어도 안타 생산만 보면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다. 방망이가 맞는 포인트까지 최단 거리로 가장 빨리, 또 정확하게 나온다”면서 “아버지 스윙도 뛰어났지만 이정후는 아버지의 스윙보다 불필요한 동작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정후가 야구 입문 단계였던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타격에서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정후는 4일 대표팀 훈련이 끝난 뒤 “당시 지도자 선생님께서 5학년 때까지는 다운스윙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가 그걸 참 못했다”고 웃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 안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만 놓고 보면 아버지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 이정후 ⓒ곽혜미 기자
어쩌면 풀이 죽어 있는 아들이었다. ‘대선수’인 아버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도 있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당연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정후는 고개를 저었다. 이정후는 “아버지가 한 번도 내 타격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다. 너를 가르치는 지도자 선생님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이 코치는 학교 방문도 멀리했다.

전환의 계기가 있었다. 이정후는 “6학년 때 새로 오신 지도자 선생님이 모든 선수에게 다운스윙 대신 ‘홈런을 칠 수 있는 스윙을 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지금 내 스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 아마추어에서 좋은 지도자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항상 감사드린다”고 했다. 스윙만 놓고 보면 아버지의 지분이 아예 없었던 셈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이정후를 만들었을지 모른다. 김 위원은 “만약 지금 이정후의 타격 메커니즘에 아버지의 메커니즘이 섞여 들어갔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스윙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조급한 마음에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다 오히려 아들의 스윙을 망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버지, 아들은 아들의 길이 있었다. 그것을 아는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정후는 이제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격 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개인 최다인 193안타를 비롯, 3년간 535안타를 쳤다. 부상이 없다면 KBO리그 역사상 첫 3000안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단한 아들에, 그보다 더 위대한 아버지다.

스포티비뉴스=고척돔,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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