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스노보드 1인자였던 김호준이 새로운 꿈을 향해 가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 제작 한희재·이강유 영상기자, 김예리 디자이너] "은퇴하고 나서 '내가 뭘 하지?'가 아니라 '나는 이것을 해야겠다, 저것도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대표팀 은퇴 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에 도전을 즐기는 자세까지. 한국 스노보드 1인자, 김호준(29)은 묵묵히 인생 2막을 열고 있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선수 김호준. '최초'는 김호준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다.

2010년, 스노보드 선수로는 국내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월드투어 대회 우승,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은메달도 한국 스노보드 선수로는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호준은 한국 스노보드의 유망주이자 선구자, 동시에 에이스였다.

김호준은 4살 때 스키를 처음 탔다. 스노보드는 7살 때 접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스키와 스노보드를 가까이 뒀다. 그 배경엔 스키 숍을 운영했던 아버지가 있었다.

스키보다는 스노보드를 더 좋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더 편했기 때문이다.

"스노보드는 크게 알파인과 프리스타일로 나뉘어요.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장비죠. 알파인이 하드 부츠를 신는다면, 프리스타일은 소프트 부츠죠. 어린 나이에 하드 부츠를 타기엔 발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소프트 부츠가 잘 맞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와서 계속 타게 됐어요.“

재능은 일찍 꽃피웠다. 8살에 출전한 전국스키선수권대회 하프파이프 부문에서 은메달을 땄다.

국제대회에서 활약도 빛났다. 2006년 4월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하프파이프 결선진출에 성공하며 10위를 차지했다. 2년 뒤 이탈리아에서 치러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하프파이프에서는 5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고 순위였다.

그리고 그해 3월 스위스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첫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김호준이 가는 길은 한국 스노보드의 역사가 되었다.

▲ 김호준은 3개 올림픽을 연속해서 출전했다. 척박한 한국 스노보드 환경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썼다.
부담이 될 법 했지만 김호준은 스노보드를 즐겼다. 낙천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김호준 스스로 "완전 긍정주의자다. 주변에서 '넌 뭘 믿고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을 때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스노보드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낸 건 중학생 때부터였어요. 하지만 전 단 1번도 스노보드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신동이다, 영재다 해도 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 안 했죠.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이요? 저는 그런 걸 상당히 즐기는 타입이에요. 뭘 어떻게 하면 또 최초를 할까, 최다를 만들까, 최연소를 할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단 1번도 부담이 된 적은 없어요. 오히려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왔죠.“

올림픽 출전의 꿈도 현실이 됐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최종 성적 26위에 이름을 남겼다. 한국 스노보드계는 놀랐다.

"2008, 2009년만 해도 한국에서는 스노보드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선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어요. 심지어 올림픽이 열리는 2010년이 다가올 때도 그랬죠. 저조차도 올림픽을 갈 목적으로 스노보드를 탄 건 아니었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일주일 단위로 최선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올림픽에 나가게 됐죠. 벤쿠버 동계올림픽은 제 인생에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상승세는 계속됐다. 2012년 TTR 월드스노우보드투어 US 레볼루션대회 하프파이프 부문 정상에 올랐다.

2014년 소치(28위), 2018년 평창(24위)까지.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한국 스노보드 선수론 최초였다.

"(월드투어 대회 우승 후)미국 친구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다들 '쟤는 누구야?' 이런 표정들이었죠.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엄청 뿌듯했죠. 미국 현지 언론에서 인터뷰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어요.“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김호준은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남들보다 빠른, 20대 후반의 나이에 제2의 진로를 찾아야 했다. 걱정이 많을 법했지만 김호준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를 즐겼다.

은퇴 후 김호준은 5가지의 일을 했다. 오전엔 초등학교 교사로, 오후엔 유아체육을 교육했다. 대학교 시간 강사, 귀금속 온라인 쇼핑몰, 유튜버까지. 김호준은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파이브(5) 잡 뛰어'라고 말한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제2의 직업을 찾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제가 간절하고 열정적으로 찾다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운동을 했다고 해서 꼭 운동과 관련된 일을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은퇴하고 '내가 뭘 하지?'가 아니라 '나는 이것을 해야겠다, 저것도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 김호준은 은퇴 후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선수 생활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과거를 그리워하는 운동선수들이 많다. 은퇴 후 새로운 진로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낄 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호준은 달랐다. 스노보드를 탈 때나 운동선수 이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갈망했고 현재를 즐겼다. 오히려 지금이 선수 때는 느낄 수 없던 안정감이 생겨 좋다고 웃어 보였다.

"스노보드 탈 때는 매일매일이 공포였어요. 항상 압박감에 시달렸죠. 하프파이프에서 하는 동작들은 조금만 잘못하면 몸 어디가 부러지거든요. 정말 잘못되면 식물인간이 되고 정말 더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일반인이 그런 걱정을 하며 살진 않잖아요. 은퇴 후 내가 죽을 걱정 안 하고 다칠 걱정 안 해서 그게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요즘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이 좋아요. 그래서 지금의 삶이 좋습니다, 하하.“

김호준은 꿈이 많다. 지금 하는 일도 많지만 더 큰 목표를 위해 다 내려놓았다.

"다가올 겨울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이 일을 위해 요즘 5개의 직업을 다 내려놨죠.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어려움을 겪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운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중계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누구나 국가대표한테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거죠. 지금은 스키와 스노보드만 하지만, 나중에는 모든 스포츠를 아우르고 싶어요."

자신처럼 은퇴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잠깐의 고민도 없이 그들을 향해 "쫄지 마세요"라는 말이 불쑥 나왔다.

"위축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운동선수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엄청난 집념과 끈기, 고통을 다 감내하면서 운동하잖아요. 운동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사회에 나온다면 어떤 일을 하든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요.“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 제작 한희재·이강유 영상기자, 김예리 디자이너


기자명 맹봉주 기자, 한희재 기자, 김예리 기자, 이강유 기자 mbj@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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