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하가 8일 고척돔에서 열린 프리미어 12 쿠바전서 역투하고 있다. ⓒ고척=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척, 정철우 기자]한국 야구에 희망의 빛이 떴다. 오랜 시간 목말랐던 우완 선발 요원이 드디어 나왔다. KBO 리그는 물론 국제 대회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 이영하(22.두산)가 주인공이다.

한국 야구는 귀한 좌완 요원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으로 이어지는 트로이카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 뒤를 이을 세대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셋의 존재감은 여전히 강력하다.

반대로 우완 선발 요원은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다. 국제 대회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우완 투수의 부재는 한국 야구의 오랜 고민이었다.

가능성을 보였던 우완 광속구 투수는 부상 또는 적응 실패 등으로 성인 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우완 에이스의 부재는 오래된 한국 야구의 숙제였다.

이제는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우완 영건 이영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영하는 올 시즌 17승(4패)을 거두며 두산의 우완 에이스로 떠올랐다. 평균자책점도 3.64로 안정적이었고 이닝당 출루 허용도 1.28로 좋았다.

시속 150㎞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라는 데에서 더욱 존재감이 드러났다. 공이 빠르면 빨리 다치거나 제구를 잡지 못하던 유약했던 이전의 유망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올 시즌을 치르면서도 던지면 던질수록 성장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9승을 거둔 뒤 잠시 아홉수에 빠지는 듯했지만 10승으로 넘어가며 정신적으로도 한층 향상된 내용을 보여 줬다.

그 흐름은 국제 대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김경문 대표 팀 감독은 "선발이 초반에 흔들리면 언제든 이영하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말로 믿음을 대신하기도 했다.

8일 고척돔에서 열린 2019년 프리미어 12 쿠바전은 이영하의 가치를 확실하게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

한국은 2-0으로 앞선 5회초 선발투수 박종훈이 선두 타자 에리스벨 아레바레나에게 좌전 안타를 맞자 좌완 차우찬으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차우찬은 2타자를 연달아 범타로 돌려세웠고, 2사 1루에 3번째 투수로 이영하가 등판했다.

이영하가 마주한 첫 타자는 일본시리즈 4경기에서 홈런 3개를 때려 MVP로 뽑힌 유리스벨 그라시알(소프트뱅크)이었다. 이영하는 8구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 끝에 3루 땅볼로 그라시알을 잡아냈다. 

이영하는 6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한 이닝을 더 책임졌다. 선두 타자 알프레도 데스파이그네를 헛스윙 삼진으로 막았다. 다음 타자 요르다니스 사몬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지만 1사 1루에서 프레데릭 세페다를 삼진으로 솎아 내며 분위기를 잡았다. 이어 알렉산데르 아얄라를 유격수 땅볼로 솎아 내며 이닝을 매조졌다. 

▲ 이영하. ⓒ고척=한희재 기자
이영하의 최대 장점은 일명 터널 구간이 길다는 점이다. 터널 구간이란 패스트볼과 변화구가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오는 구간을 뜻한다. 이 구간이 길수록 변화구에 속을 확률이 당연히 높아진다.

이영하는 패스트볼과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의 궤적이 거의 일치한다.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 슬라이더는 타자 앞에서 떨어진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이영하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슬라이더가 패스트볼과 거의 구분이 안 가기 때문에 타자들이 방망이가 나오기 쉽다. 하지만 스윙을 시작하면 공이 밑으로 떨어져 제대로 칠 수가 없다. 한국 야구가 기다리던 우완 에이스가 드디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공이 빠른 몇몇 우완 투수들이 있지만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이영하는 완성이 된 투수로 평가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영하는 익스텐션(투구 때 발판에서 공을 끌고 나와 던지는 손끝까지 거리)이 긴 유형은 아니다. 익스텐션이 길어야 터널 구간을 길게 만들 수 있다는 상식을 깨는 투구를 한다.

대신 릴리스 포인트가 높다. 큰 키를 이용해 높은 타점에서 공을 뿌리며 터널 구간을 길게 만드는 유형이다. 키움 안우진과 비슷한 케이스인데 안우진이 아직 발전 중인 투수라면 이영하는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영하는 한국 야구가 애타게 찾던 우완 정통파 에이스가 될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 이번 프리미어 12가 그에게 우완 에이스의 왕관을 씌워 주는 대관식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이영하와 함께 한국 야구도 한번 더 날아오르게 될 것이다.

스포티비뉴스=고척,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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