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FA컵 우승팀이 된 수원 삼성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한준 기자] FA컵은 수원 삼성에 구원의 동앗줄'처럼 보인다. 2019시즌 우승으로 통산 다섯 번째, 역대 최다 우승 팀이 된 수원은 매번 위기론을 겪을 때마다 FA컵을 들었다.

역사를 조금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수원의 첫 FA컵 우승은 2002년에 이뤄졌다. 1995년 창단해 1996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한 수원은, 당시 유독 FA컵에서만 힘을 못 쓴다는 지금과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1996시즌 정규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 1997년 AFC 컵위너스컵 준우승으로 신생팀 돌풍을 일으킨 수원은 1998시즌 K리그 우승, 1999시즌 K리그 우승, 슈퍼컵 우승, 두 차례 리그컵 우승 등 프로 전관왕을 달성하며 K리그 최강으로 우뚝 섰다.

수원은 2000년과 2001년 리그 순위가 떨어졌으나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과 컵위너스컵은 연속 제패하며 아시아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세웠다. 

◆ 수원의 FA컵 우승은 늘 위기에 찾아왔다

2001시즌까지는 FA컵 8강 문턱을 넘지 못하던 수원은 1999시즌 리그 우승 이후 2002시즌까지 3시즌 연속 리그 정상 탈환에 실패하던 수원은 2002시즌에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명예를 회복했다. 2003시즌을 끝으로 물러난 김호 초대 감독은 유일하게 들지 못했던 타이틀을 챙기고 떠날 수 있었다.

2004년 부임한 차범근 2대 감독도 FA컵을 품은 것은 말년에 와서다. 부임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했고, 2005시즌에는 슈퍼컵과 리그컵 우승 등으로 성과를 냈고, 2008시즌에도 리그와 리그컵 더블 우승을 달성했으나 2009시즌 리그 순위가 10위까지 추락하며 사퇴 여론이 일었다. FA컵 우승으로 반등할 수 있었다.

윤성효 3대 감독은 2010년 부임 첫 시즌에 FA컵을 들었는데, 시즌 중 차범근 감독이 물러나며 이어 받은 팀으로 이뤘다. 이떄도 수원의 리그 성적은 7위로 2005시즌 10위에 이은 최악의 성적 중 하나를 기록했다. 

서정원 4대 감독 체제에서는 2014시즌과 2015시즌 연이어 리그 준우승을 한뒤 2016시즌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등 리그 부진이 장기화된 가운데 FC서울과 슈퍼매치로 펼쳐진 FA컵 결승에서 극적 승리로 우승해 부활했다.

그리고 2019년 부임해 출발부터 시즌 내내 흔들렸던 이임생호가 FA컵 우승으로 비난을 일축하고 챔피언이 되어 시즌을 마쳤다. 상위 라운드 진입조차 불투명하다고 전망된 시즌에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 진출권을 얻었으니 성적표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 경기 시작 전 홍염을 터트려 응원한 수원 서포터즈 ⓒ한희재 기자


◆ FA컵 우승이 수원을 구하지는 못했다

32강에서 포항 스틸러스, 16강에서 광주FC 등 K리그1,2 소속 팀을 꺾고 이룬 우승이지만 8강, 4강, 결승 상대의 면면으로 인해 수원의 우승은 당연해야 했고, 그래서 부담과 압박감이 심했다. 

경주한수원(내셔널리그)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 화성FC(K3리그)에 1차전 패배를 겪고 2차전 뒤집기 승리로 결승에 오를 때까지도 수원 삼성은 환하게 웃지 못했다. 상대가 세미프로 레벨이었는데 내용면에서 고전하며 간신히 이겼기 때문이다.

결승전 상대도 마찬가지로 3부리그 격 내셔널리그에 소속된 대전 코레일이었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린 순간에는 모두 잔치를 즐겼다. 원정 1차전 0-0 무승부로 여전히 남았던 비판론을 2차전 안방 4-0 승리로 잠재웠다. 

이임생 수원 감독도, 주장 염기훈도 이날 경기 후에는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난 4번의 FA컵 우승이 차기 시즌 수원의 질적 반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김호 감독, 차범근 감독, 서정원 감독은 FA컵 우승을 이룬 차기 시즌 반등에 실패하며 씁쓸하게 물러나야 했다.

다섯 번의 FA컵 우승 중 세 번을 함께 한 주장 염기훈은 산증인이다. 염기훈은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FA컵 우승을 만끽하면서도 이런 상황에 몰려서 FA컵 우승을 이루는 패턴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2016년에 우승할때도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고 했고, 올해도 그랬다. 정말 선수들이, 저도 그렇고, (위기가) 닥쳤을 때 집중력이 나오는 것 같다. '닥치기 전에 나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FA컵을 준비할때 선수들의 자세가 달랐다. 그런 부분이 내년에는, 피부로 닥치기 전에 보인다면 분명히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FA컵 득점왕을 이룬 염기훈, 한 골은 VAR로 취소됐으나 4-0 마침표를 찍는 골을 넣었다. ⓒ한희재 기자


수원 선수단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벼랑 끝의 위기에 몰렸을 때 힘을 발휘해 반등해왔다. 국가 대표급 선수가 즐비한 시절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원에서는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와 유능한 외국인 선수,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한 기대할 만한 유망주가 모여있다. 문제는 이들이 시너지를 내고, 최고의 집중력을 보이며 가진 재능을 120% 경기력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임생 감독은 부임 후 열린 경쟁을 통해 선수단에 자극을 주고자 했으나 성적 부진과 부상자 발생 등 변수가 따르고 시즌 중 선수 이적 등 경기장 밖 변수가 생기며 원하는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팀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는 일도 있었다.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했으나, K리그 입성 첫 시즌이기에 따른 시행착오였다.

2016시즌부터 이어져온 부진의 흐름이 선수단 내부의 활기를 떨어트린 측면도 있다. 팀 내 최고의 선수는 계속 팀을 떠났고, 염기훈은 이제 40대를 바라보는 노장이 됐다. 염기훈은 선수단의 자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스쿼드 자체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FA컵 우승을 이루고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한 시점에서도 2020시즌을 위해 선수 보강이 필요하다고 구단에 요청했다.

이임생 수원 감독도 우승 회견에서 "염기훈 선수가 우릭 ACL에 가게 되면 구단에서 선수 보강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 기사를 봤다. 저희가 ACL에 가게 되면 선수 보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단에서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 이임생 감독은 2골을 넣은 고승범이 주전으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차기 시즌 구상이 시작됐다. ⓒ한희재 기자

◆ FA컵 우승이 의미를 가지려면 2020시즌이 중요하다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되고, 프로축구팀이 독립법인화되면서 수원 삼성의 예산 규모는 매 년 줄어들고 있다. 재정 규모에 비춰 무리하게 선수단을 보강할 수는 없다. 가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선수 영입 과정의 프로세스를 더욱 치밀하게 만들어 최선의 스쿼드를 구축해야 한다. 보유한 선수의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해야 한다. 

선수들뿐 아니라 구단 전체가, FA컵 우승으로 간신히 추락 직전에 멈춰 반등의 실마리를 찾은 수원의 이름을 지키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축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FA컵 우승과 ACL 진출에도 2020시즌 수원의 운영 예산이 증액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수원은 이미 2020시즌 선수단 구성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공격과 수비 포지션에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물색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적당한 수준의 어설픈 선수, 리스크가 예상되는 선수는 대부분의 경우 적당한 활약에, 예상된 리스크를 겪으며 자리잡지 못하고 교체된다. 큰 기대 속에 성장한 유소년 출신 선수들도 그렇다. 어설픈 몇몇 기회를 줬다가 기대에 못미친다고 내치기 보다 세밀한 계획을 갖고 성장하고 자리잡게 이끌어야 한다. 수원은 더 이상 그러한 시행착오로 예산과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치열하고 고민하고 검증해 최고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 

2019시즌 수원의 FA컵 우승은, 그들이 최고여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최고가 되기 위해 내려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2020시즌에도 다시 추락하는 팀을 본다면, 이제는 FA컵 우승도 수원에겐 감동과 희망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스포티비뉴스=수원,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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