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윤희에게'의 김희애. 제공|리틀빅픽쳐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김희애(52)의 멜로를 스크린에서 본다.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제작 영화사 달리기)는 '쎄시봉' 이후 4년 만에 만나는 그녀의 멜로영화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2007)로, '아내의 자격'(2012)으로, '밀회'(2014)로, 작품마다 사랑에 대한 강렬한 질문을 던졌던 김희애는 결이 다른 사랑 이야기로 관객과 만난다.

그녀는 '윤희에게'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아들고 첫사랑을 찾아 딸과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 '윤희' 역을 맡았다. 멜로영화이자 퀴어영화이자, 버디무비이며 성장영화인 '윤희에게'에서 윤희는 첫사랑을 찾아가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

"저희의 의도, 추구하는 생각을 이해해 주실까 했는데, 마음을 읽어주신 것 같아 위로가 됐어요. 퀴어 코드에, 일본 배경에… 혹시 초점이 달리 흐를까 했는데 '어떤 사랑이라도 괜찮다'는, 위로의 영화라고 하셔셔 제게 위로가 됐어요. 도리어 놀랐어요. '너는 너 할 일이나 잘해라' 하는 느낌이랄까요."

퀴어물이라는 장르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며, 김희애는 "이 영화는 되게 민감하고,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며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마음을 순수하게 통찰했다고 할까. 아무렇지 않게 써내려간 것이 신선하게 와닿아 좋았다"고 털어놨다.

▲ 영화 '윤희에게'의 김희애. 제공|리틀빅픽쳐스
따져보면 김희애는 늘 사랑의 희미한 경계에 대해 물었다. 결혼과 나이, 신분 그리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질문을 계속해온 셈이다. 김희애는 이에 대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만 했다. "최대한 캐릭터에 집중한다. 그래야 보는 관객도 집중하지 않고, 캐릭터에 녹아 집중하실 수 있다. 그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윤희에게'는 어떤 장면이나 대사보다도 '톤'이 끌렸단다.

"영화에선 강렬한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서 직접 말하는 게 많잖아요. 우리가 평소 이야기할 때는 돌직구를 던지지 않고 생각 많이 하고요. '비밀을 갖고 있다면, 계속 그렇게 해' 그런 톤이 저는 오히려 사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연기할 때는 회상이나 히스토리가 쭉쭉 나와줘야 감정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데 그런 것 없이 제가 계속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가 팍 터뜨려야 했어요. 그 마음을 속으로 유지해야 했어요. 너무 중요한 신이어서 그것이 제게 큰 부담이었죠."

배우 나카무라 유코와 마주하는 신은 리허설도 없이 만들어졌다. "본 게임에서 잘해야 하니 쏟아부을 수가 없었다"는 게 김희애의 설명. 김희애는 상대가 범상찮은 감정이라는 게 느껴졌고 "그냥 하다보니까 무척 슬펐다"고 털어놨다. "탄탄한, 구멍이 없는 시나리오가 바탕이어서 물흐르듯 흘러가며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평소 수줍음 많은 임대형 감독을 두고 "가리워진 천재의 모습을 보는 게 흐뭇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영화 '윤희에게'의 김희애. 제공|리틀빅픽쳐스
'벌새',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 등 여성 서사가 잇달아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찾아온 '윤희에게'는 더 각별하다. 김희애는 1992~1993년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이란성쌍둥이 '후남' 역을 맡아 그 시절 가부장적인 사회상과 남아선호사상을 꼬집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해 영화 '허스토리'를 선보였던 그녀는 인터뷰에서 여성 서사 자체가 희귀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머리 커트 치고 남성 캐릭터도 연기할 수 있다'고 얘기하곤 했다'고 했었다.

"'82년생 김지영'을 극장 가서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재미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현실이 느껴졌어요. 억지로 되겠어요…. ('아들과 딸'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생각하니 그렇네요. 당시엔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잖아요. 소외되고 밀려서 사는 걸 당연히 받아들였는데, 변화가 생기고. 세상이 점점 좋아지는구나, 살만한 세상으로 변하는구나, 긍정적으로 봐요. 더 발전할 거라 생각해요."

영화 '윤희'는 딸에게 더 좋은 세상을 주고싶다고 다짐한다. 김희애는 극중 딸 새봄 역을 연기한 김소혜와는 '현실 모녀'같은 재미를 주기도 했다. 김희에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웃겼다. 당돌한 게 웃기기도 하고 쿨하기도 했다"고 웃음지었다. 실제 김희애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 그는 "(딸 있는 게) 부럽기도 하다. 친구 이야기를 뜰으면 딴 세상이다"라며 "그 친구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도 살아' 이런다. 다 가질 순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영화 '윤희에게'의 김희애. 제공|리틀빅픽쳐스
이번이 첫 영화인 김소혜에 대해서는 "좋았다. 밀어붙이는 뚝심같은 것도 느껴졌다"며 "연기는 나이 많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고 공식도 없는 것 같고, 타고나는 건가 싶다"며 "후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그냥 동료"라고 말했다. 김희애는 자신의 신인 시절을 되돌아보면 "하다보니 일로 했을 뿐, 요즘 애들은 더 절실하고 뭔가 더 프로페셔널하다"고도 했다.

연기경력 35년, 연기대상만도 몇 번을 탄 베테랑 배우의 이야기는 의외였지만, 김희애의 이런 고백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라디오 인터뷰에선 '비로소 배우가 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저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일했을 뿐, 예전엔 내 옷이 아닌 것 같고, 어색하고 쑥스럽고 그랬어요. 사인해 달라고 하면 '내가 뭐라고' 싶어 주눅들고. 저는 수줍어서 '내 이름을 거기다 왜 쓰는데' 하고 민망해 하면 친구들이 '너 왜 그래, 기쁘게 해야지'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고 그랬어요. 그건 한참 됐죠. 지금도 쑥스럽긴 한데, 정신 차렸어요.(웃음)"

김희애의 작은 행복은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어스름한 시간, 와인 한 잔에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를 "한편 때리는" 것.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 위주로 작품을 본단다. "연기에 미친 사람이 섹시하다" "의사가 흰 가운을 입었을 때 가장 멋지듯 배우는 캐릭터에 일치했을 떄 가장 멋지다"는 김희애의 검색 리스트엔 샘 록웰과 크리스천 베일, 호아킨 피닉스의 이름이 있었다. 

최근 검색한 배우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 '윤희에게'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라 부산을 오가면서도 일정이 맞지 않아 당시 영화제를 찾았던 티모시 샬라메를 보지 못했단다. "한국에 얘를 두고 못 만났다니!" 탄식하는 그녀의 눈이 소녀처럼 빛났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그것이 10년이 되고, 제 인생이 되듯이, 연기도 모든 게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해외 활동도 했으면 좋겠고요,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요. 제 나이는 이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도 되는 나이인 것 같아요. 보통 많은 분들이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못 살잖아요.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뭣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날 때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고, 그에 따라 살려고 해요."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영화 '윤희에게'의 김희애. 제공|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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