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고척, 고유라 기자] "사람이 위기가 오면 또 기회가 오더라고요".

FA 계약을 일찌감치 마친 포수 이지영(33, 키움 히어로즈)은 후련한 표정이었다. 키움은 13일 이지영과 계약 기간 3년 총액 18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옵션 최대 6억 원)에 FA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2020년 FA 승인선수 19명 중 첫 번째 계약이었다.

계약 다음날인 1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이지영은 "키움 구단에서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했고 나도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조금씩 의견을 좁히다 보니 금방 됐다. 사실 FA를 하는 선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 않나. 그래도 지난해부터 FA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예전 위치였으면 이만큼 받았을까 싶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지영은 원소속팀인 키움과 함께 롯데에서도 제안을 받았지만 계약 기간, 옵션 세부 조건 모두 키움 쪽이 더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키움은 이지영을 필요한 자원이라 판단해 그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지영 역시 자신에게 기회를 준 팀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았다. 키움과 이지영은 트레이드를 통해 만난지 1년 만에 호흡이 맞아 떨어졌다.

이지영은 "삼성에서 1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내 프로 인생은 삼성에서 끝날 줄 알았다. 2018년에 (강)민호가 오고 이제는 아래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키움이 나를 원했고 삼성이 내 길을 열어줬다. 두 팀에 계속 감사하게 생각한다. 민호가 왔을 때는 내 야구가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위기가 한 번 오면 또 기회가 오더라"며 두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삼성의 이지영은 악착 같은 선수였다. 2008년 육성선수 신분으로 입단해 정식선수, 상무 입단, 1군 데뷔 등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하나씩 이뤄나갔다. 이지영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 정말 열심히 했다. 육성선수는 2군에서도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하니까 훈련 한 번이라도 더 해 눈길을 받으려 했다. 보여줄 건 그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은 선배들이 많아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 한국시리즈에서 이승호(왼쪽)를 다독이고 있는 이지영. ⓒ곽혜미 기자

그렇게 성장한 이지영은 키움에서 '선배'를 맡고 있다. 그는 "삼성의 이지영과 키움의 이지영이 야구를 하는 스타일은 똑같다. 그런데 그라운드 밖에서는 달라졌다. 키움에서는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싶다. 투수들이 먼저 다가와줬고 후배들과 빨리 친해졌다. 이제는 (후배 포수들과) 경쟁이라는 생각을 떠나 그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밝혔다.

생애 첫 FA까지 이룬 이지영의 다음 목표는 키움의 우승이다. 이지영은 "올해를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마지막에 아쉬운 마음이 너무 컸다. 정규 시즌 마지막 1~2경기에서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그래도 우리 팀은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이니까 내가 더 내년에 발전하고 후배 투수들을 잘 이끌어서 동료들과 함께 팬들께 더 좋은 경기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이지영은 FA 계약이 발표된 뒤 많은 키움 선후배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는 어떤 선수에게서 어떤 내용의 문자가 왔는지를 설명하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올 시즌 키움 최선참 타자. 새로 온 팀에서 맡기 쉽지 않은 임무였지만 스스로 성격도 바꿔가며 결국 잊지 못할 시즌을 보냈다. 이지영은 그렇게 키움의 베테랑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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