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가 익숙하다는 진창수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10번을 도전하면 실패가 9번이고 성공은 1번 정도죠. 제 자신이 만족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걸요."

진창수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축구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다. 프로 선수로 데뷔한 것은 27살.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 한국에서 10년, 프로 선수가 된 지 7년을 보냈고 이제 30대 중반의 베테랑이 됐지만 진창수는 여전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2019년을 소속 팀 없이 시작했고, 독립 구단에서 몸을 만들며 복귀를 꿈꿨다. 안산 그리너스에 입성해 다시 프로 무대에 돌아갔던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결과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사회다.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보다는, 다른 사람보다 더 쉽고 빠르게 얻은 성과를 자랑스러워 하는 시대. 진창수는 땀의 가치, 과정의 중요성을 아는 선수다. 때로 필사적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추해보일' 수도 있으나, 그 과정 자체가 자신의 성장이라고 말한다. 8개월간 팀이 없던 노장은 주변의 시선과도 싸웠다. 

여전히 2020년에도 프로 선수로 뛰고 싶다는 진창수는 자신의 '도전사'를 담담히 풀어놨다. 그리고 삶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노력을 쑥쓰러워 하지 말라"며 응원했다.

진창수는 자신의 축구 인생을 "실패가 훨씬 많았다"고 순순히 인정한다. 실패는 부정적이라고 여겨지지만, 긍정적일 때도 많다. 장기적 차원에서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진창수는 실패의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K3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또 K리그2로 한 단계씩 도전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2019시즌 다시 한번 프로에 입성했던 원동력이다.

"실패가 있으니까 도전하죠. 모든 일이 쉽게 되지 않잖아요. 10번을 도전하면 실패가 9번이고 성공은 1번 정도죠. 선수 생활 하면서 경기나 준비 과정, 훈련에서도 실패가 많았어요. 선수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실패가 많을 거에요. 제 자신이 그런 도전을 즐기고 있어요. 올해는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잠도 자지 못했고. 밤만 되면 내일이 불안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시간은 많은 것을 느끼는 시간, 이겨내고 강해져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계속 도전, 도전, 도전뿐이죠.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자신이 만족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K리그2는 K리그1과 달리 환경도 조금은 열악하고, 같은 프로 무대라도 종착점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K리그1에 올라가고, 대표팀에도 가고, 해외 진출도 해야 하는 위치에요. 저도 항상 K리그1 승격을 원했고, 또는 K리그1 팀들의 스카우트를 받고, 한 단계 위 리그에 도전하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부천이나 안산이나 동생들이 지금은 많아졌어요. 항상 여기에 안주하지 말자고 말을 해요. 위를 보는 목표 의식을 갖고 뛰어야 한다고 말하죠. 그래서 간절한 마음이 나온 것 같아요. 열심히 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수로서 당연한 거잖아요. 죽기 살기로 해도 될까 말까인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당연히 안 되지 않나."

작은 실패를 한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열정'이다. 진창수는 축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개인적 동기가 전부는 아니다. 진창수는 주변에 대한 책임감을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로 주저 없이 꼽는다.

"제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랬어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축구 선수로 계속 도전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좋아한다’로만은 부족해요. 축구 선수가 되면서 가족, 재일교포들, 사랑하는 사람들, 또 제 자신을 위한 책임감. 또 잘해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 포기하면 인생에서 무엇이 남을까 하는 생각들. 냉정하게 말하면 살기 위해서, 또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축구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그게 또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 2019시즌 공식전 유일한 득점 뒤 진창수 ⓒ안산 그리너스

축구 선수의 수명은 유난히 짧다. 보통 20대부터 30대까지. 축구 선수의 하루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묵직할 수밖엔 없다. 그 무게를 안다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꿈에 다가설 수 있다. 그가 후배 축구 선수, 그리고 인생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노력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 팀에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10살씩 어리고, 띠동갑인 친구들도 있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노력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느낌? 필사적으로 하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멋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분명 뜨거운 꿈과 목표 의식이 있을텐데. 노력하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축구 선수로서 화려하게 보여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일 멋있는 선수는 경기장에서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축구 선수 이후의 삶도 길잖아요. 그 실패가 이후로도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성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실패가 인생에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축구에선 매번 승패가 나뉘고, 긴 리그에서도 한 경기씩 결과가 모여 우승 팀이 가려진다. 최후의 승자는 단 한 팀이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자'가 된다. 실패와 패배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기 위해선 매번 온힘을 쏟아 부딪혀야 한다. 최선을 다한 뒤에도 후회는 남는다.

"(후회는) 항상 많죠. 후회 없이 하려고 해도. 항상 승패가 갈리는 세계니까요. 이기면 좋지만 지면 후회도, 아쉬움도 남아요.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항상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제 실력이 부족해서 팀에 힘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실력이 더 있었으면 팀을 승격도 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내 실력이 더 좋았으면 싶네요. 지금도 그렇고요. 방법은 제 실력을 키우는 것뿐이에요.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요. 다시 하루하루 운동하고 1년을 버티는 게 사실 힘이 들죠. 그래도 더 좋은 날은 오고, 승리의 기쁨을 또 느끼고 싶어요. 성공의 정의를 ‘좋은 집에 살거나, 좋은 차를 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항상 실패하더라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또 성공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늘 깨지고 부딪히고 좌절하며 이어온 11년의 축구 선수 생활. 진창수는 지쳐서 쓰러지고 싶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했다.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를 믿고, 다음의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이겼다고 생각해도 또 다른 고난는 와요. 때론 좌절하고 상처를 받겠지만 주저앉지 않고 얼른 일어서길 바랍니다. 남들이 말하는 평가로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평가가 선수 한 명의 축구 인생 전체를 부정할 정도의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안산에 복귀했지만 곧 계약은 끝나가고 시련이 찾아와요. 30대 중반에 접어든 저 같은 선수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젊은 분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일어날 시간이 있잖아요. 좌절할 필요도 없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어요. 사람들은 보통 잘됐던 이야기는 하지만, 실패한 이야기는 잘하지 않아요. 실패하면, 경기에서 지면 또 어때요. 경기에서 질 때마다 고개를 숙일 순 없잖아요. 다음 경기가 있고, 내년 시즌이 있고. ‘이렇게 하면 잘될거야’라고 장담하진 못하죠. 그래서 도전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각자가 노력하는 방식이 또 있잖아요.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다면 과언일까. 진창수는 자신이 끊임없이 꿈꾸고 도전하는 이유를 교과서처럼 풀어놨다. 2020년이면 만으로 34살. 많은 선수들이 은퇴를 고민할 나이 진창수는 다시 한번 K리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오랫동안 선수를 하고 싶어요. 단기적으론 내년에도 K리그에서 뛰고 싶습니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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