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삼성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뷰를 가진 노동건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화성, 한준 기자] "현우는 더 질투가 많이 나죠. 같이 있었는데 이제는 보지도 못할 만큼 올라가 있으니까. 독일전이 제게 불을 지폈습니다.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경기를 보고 바로 운동하러 나갔어요." 

2019시즌 K리그1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인정 받은 노동건(28, 수원 삼성)은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자시 자신을 믿지 못했던 슬럼프를 지나, 역경을 딛고 2019 KEB 하나은행 FA컵 우승, 그리고 2019시즌 공식전 16경기 무실점을 기록한 노동건은 2019 K리그 대상 골키퍼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국 나이로 서른을 바라보는 노동건은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연령별 대표 골키퍼로 주목받던 그때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19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노동건은 힘든 시기를 겪고, 버틴 것이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프로에서는 잠깐 반짝하는 것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얘기를 들었거든요. 버티다 보니 배우고, 배우다 보니 기회도 생긴 거 같아요.” 프로 6년 차에야 자리를 잡은 노동건은, 지금의 성취에 취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개선된 무실점, 그리고 실점률 기록이 자신의 공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바깥에서 수원 수비가 약하다는 얘기를 듣는데, 수비라인만 수비하는 게 아니라 앞에서부터 하는 것이니까. 실점의 잘못은 누구 한 명에게 있는 게 아니고, 제 실점률이 곧 수비진의 실점률인 거잖아요. 수비는 응집된 것 같아요. 지금 수원 수비진에는 제가 힘들었을 때도 함께 있던 선수들이 많아요. 그 선수들도 힘든 시기를 버틴 거죠. (구)자룡이도 (민)상기도, (조)성진이형도, (양)상민이 형도, 제가 입단할 때부터 같이 있던 선수들이에요. 힘든 시간을 같이 버틴 효과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노동건은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로 라이벌로 여기는 국가 대표 골키퍼 조현우가 속한 대구FC와 맞대결을 꼽았다. 당시 노동건은 조현우를 뛰어넘는 선방을 펼쳤다는 찬사 속에 0-0 무승부를 끌어냈다. 노동건 덕분에 지지 않은 경기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대구 공격이 매서웠다. 그 뒤로도 수원은 노동건의 선방 덕분에 패배를 면한 경기가 적지 않았다.

“(노동건 덕분에 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어봤냐는 질문에) 그런 얘기를 들어봤어요. 대구전이 그랬죠. 그땐 너무 컨디션이 너무 좋았는지 공이 그냥 보이더라고요. 공이 제가 가는 곳으로 온다는 느낌을 들 정도로. 아쉬운 건 울산, 전북 등 상위 팀에 못 이긴 게 아쉬운 거 같아요. 팬들도 물론 FA컵 우승으로 기쁘시겠지만, 상위권에 가서 순위 경쟁하길 바랐을 텐데, 내년에 ACL도 있으니까. 다 도전해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구단에서도 도와주고 선수들도 단합해야 할 거 같아요.”

▲ 수원 삼성 골키퍼 노동건 ⓒ한희재 기자


◆ “골키퍼는 서른부터” 버티고 버텨서 기회 잡은 노동건, 태극 마크를 꿈꾸다

청소년 대표 시절에는 노동건이 조현우에 앞선다는 평가가 있었다. 김승규와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했고, 정성룡과 수원에서 함께 했던 노동건은 늘 국내 최고 골키퍼와 함께 였다. 지금은 자신이 가장 뒤처졌다고 느낀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경쟁할 의지조차 사라졌었다. 이제는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어렸을 때 치기 어린 자신감에 나 보다 더 높은 형이 있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하락세를 겪을 땐 저런 형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 자기 비판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형들을 봐온 게 도움이 많이 돼요. (정)성룡이 형도 그렇고. (김)승규형은 대표팀에서 잠깐 함께 있었지만, 기술적인 면, 몸 관리에 배울 점 많았어요. 성룡이 형을 옆에서 보면, 팬들이나 언론의 비판을 많이 받았잖아요, 국가 대표라서 조금만 못해도 비판을 크게 받는데 그걸 콘트롤 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몸이 버텨준 게 대단한 거 같아요. 멘탈이 흔들리면 몸이 못 버티잖아요. 그걸 성룡이 형이 묵묵히 버텨냈다는 거.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올여름 휴식기에 일본에 가서 성룡이 형을 보고 왔거든요. 친형을 만난 것 같이 반갑고 정겨웠어요. 좋은 얘기도 해주시고, 장난도 쳐주시고. 형한테 고마웠어요.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수원 골키퍼들이 대대로 국가 대표였잖아요. 계보를 잇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대표팀은) 올해 계속 제 입으로도 언급했어요. 가고 싶죠. 지금 대표팀에 승규형, 현우 둘 다 같이 있어 봤고. 현우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같이 경쟁했던 친구고. 대표팀에 가서 더 배우고 싶어요. 대표팀에 갔기에 그 선수들이 더 컸고, 더 배웠으니까. 저도 욕심이 나요. 배움의 폭을 넓히고 싶고, 경쟁해 보고 싶고, 다시 한번 국가 대표 경기를 뛰면서 다른 나라 선수들의 레벨도 보고 싶고. 가서 경기를 못 뛰더라고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아서 정말 가보고 싶어요.”

대표팀 경기를 꼬박 챙겨본다는 노동건은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로 출범한 이후는 빌드업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인적인 훈련과 연구도 하고 있다. 

“대학교 때는 발밑이 자신 있었고, 필드 선수들하고 같이 훈련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직 먼 거 같아요. 벤투 감독님이 원하는 레벨은, 승규 형도 높지만, 그 이상을 바라실 거 같아요. 제가 승규 형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가야 뽑힐 수 있잖아요. 골키퍼가 다른 필드 선수처럼 화려하게 어시스트를 하지는 못하지만, 단순한 건데도 하기 어려운 게 골키퍼가 밑에서 빌드업하는 거예요.  유럽 축구 경기를 가끔 챙겨보는 데 맨시티 골키퍼를 보면 정말 대단해요. 중앙 수비수처럼 빌드업을 하고. 노이어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를 하고. 운동이 끝나고 나서나, 오후 운동을 하면 오전에 와서 공과 많이 놀려고 해요. 리프팅 하든 족구를 하든, 친해져야 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발로 차는 거 욕심을 내는 데 쉽지 않네요. 가끔 필드 선수들이랑 패스 게임을 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필드 선수들의 마음도 알고, 압박이 왔을 때 필드와 같은 상황에서 골키퍼들이 당황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돼요.”  

한국 나이로 2020년에 서른이 되는 노동건은 조급하지 않다. “골키퍼는 서른부터”라는 말을 새기며, 마흔까지 뛰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10년간 전성시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김승규와 조현우는 그런 노동건에게 지향점이다. 

“(김)승규 형도 빛났던 시기 보면 어려서부터 프로에 있었으니까. 남들이 보면 일찍인데 연차가 쌓인 다음이었잖아요. (김)영광이 형에게 배우고, 독기 있게 버텼으니 지금 국가 대표 넘버원 타이틀을 받을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멋있어요. 질투가 나는 멋있는 형인 것 같아요. 현우는 더 질투가 많이 나죠. 같이 있었는데 이제는 보지도 못할 만큼 올라가 있으니까. 독일전이 제게 불을 지폈습니다.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경기를 보고 바로 운동하러 나갔어요. 지금도 그런 거 같아요. 현우를 따라가려면 난 아직 멀었다.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FA컵 결승전에 무실점을 기록한 노동건 ⓒ대한축구협회


◆ 2020시즌에는 ACL 토너먼트 서고 싶다…식단 관리도 철저한 노동건

노동건은 2020년 더 큰 무대를 경험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은 것은, 노동건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다.

“일단 ACL 티켓을 땄잖아요. 제가 생각보다 ACL 경기를 많이 뛰었어요. 프로 2년 차에 리그 준우승으로 ACL에 나갔는데, 성룡이 형이 경기 전날 훈련하다가 부상을 당했어요. 조별리그는 제가 다 뛰었고, 페널티킥도 막았죠. 토너먼트에 가서 성룡이 형이 복귀해서 밖에서 봤고, 아쉬웠어요. 화용이 형이 있을 때도 조별리그는 제가 다 뛰었어요. 토너먼트는 한번도 못 뛰었어요. 작년에도 4강까지 갔는데. ACL 토너먼트에 한번 뛰어보고 싶다. 올해 FA컵처럼 결승에 가보고 싶다. ACL에 욕심을 내보고 싶어요. 리그는 당연히 올해보다 좋아야죠. ACL 티켓을 연이어 따고 싶다는 목표고 갖고 있어요. 그건 목표지만, 제일 걱정인 것은 올해는 좋았잖아요. 작년에 좋았는데, 노동건이 올해는 별로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노동건이 뒤에 있어서 다행이다. 스포트라이트보단 잔잔하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요.”

어려운 시기를 겪어본 노동건은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병지 삼촌이 높은 기록을 골키퍼 수명을 높여주셔서 감사하다"며 먹는 것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체중 관리도 하고 있다고 했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노동건 부활의 배경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체계적으로 먹고, 탄수화물도 어느 때 먹어야 하고 어떨 때 참아야 하는지, 단백질은 언제 더 먹어야 하는지. 옆에서 하는 식단 관리를 하는 선수들, 선배님들을 눈여겨 보고 배우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있어요. 올해처럼 경기가 많으면 운동량이 적어지는 데, 똑같이 먹으면 몸이 불어요. 경기 하루 이틀을 앞두고는 챙겨먹지만 하루 세 끼를 와장창 먹지 않고, 채소 위주로 먹고, 영양 섭취하고 단백질은 염분없이 먹으려고도 하고요. 그게 프리시즌에도 이어져야 해요. 동계 훈련에 가면 운동량이 많으니 많이 먹어야 버틸 수 있는데, 가서도 하루하루 체중 조절을 하면서 몸 컨디션을 봐야 할 것 같아요." 

노동건은 FA컵 우승에도 여전히 수원 선수단에 대한 의심이 끝나기 어려운 지금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노동건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수원 팬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당부했다.

“솔직히 올 시즌은 FA컵 우승을 빼고는 만족스럽지 못하죠. 아쉬움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년에도 확 변한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지금보다 나은 한걸음, 위를 보고 나가는 한 걸음이 될 거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끝까지 떠나지 않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언젠가는 리그 우승, 그리고 아시아 우승을 해내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한 번 더 버텨주셨으면 좋겠다고, 이번에는 저희가 말씀드리고 싶어요.” 

스포티비뉴스=화성,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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