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임생 수원 삼성 감독과 클럽 하우스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화성, 한준 기자] “도전이 무섭다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겠죠.”

2019시즌 내내 경기 전후 인터뷰에서 이임생(48) 수원 삼성 감독은 경직되어 있었다. 속내를 쉽게 꺼내 보이지 않으려 했다. 기자들에게는 지루한 인터뷰이였다. 하지만 이임생 감독은 기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보다, 흔들리는 팀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가 컸다. 민감한 질문에 이임생 감독은 긴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경기 한 시간 전 라커룸에서 이임생 감독을 만난 자리가 초상집처럼 느껴진 날도 적지 않았다. 현역 시절 자신만만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던 수비수 이임생이 여전히 생생한 기자에겐 생경한 장면이었다.

2019시즌 FA컵 우승을 품고,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원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임생 감독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듯 했다. 여유있게 웃으며 감독실로 안내했다. “1년 차 K리그 감독이다 보니까요. 일단은 조금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늘 긴장감 속에 살았던 거 같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여유가 있을 거 같습니다.” 사진 촬영이 진행될 때는 조금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감독실 의자에 앉아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이임생 감독은 이제야 2019시즌을 치르며 마음 속에 담았던 말과 생각을 능숙하게 꺼내 보일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FA컵 우승으로 여러 언론사가 이임생 감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스포티비뉴스도 그 중 하나였다. 20일 오후 맨 마지막 순서로 이임생 감독을 만났다. 대동소이한 질문에 지쳐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감독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를 중심으로 이어진 질문에 이임생 감독은 약속한 인터뷰 시간을 훨씬 넘기면서까지 진솔한 대답을 내놓았다. 울산 현대와 2019시즌 K리그1 개막전에 “뭐가 무서워서 자꾸 뒤로가!”라는 일갈로 ‘노빠꾸 축구’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임생 감독은 한 시즌을 다 보내고 나서야 ‘축구 이야기’를 했다. 그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하기 위해 문답으로 인터뷰를 풀었다.

-2019시즌을 정리하면, 초기 계획이 무너진 초반 3연패, 그리고 타가트의 득점력을 통해 이어진 여름 상승세가 일거에 꺾여버린 후반기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나요?

“일단은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제가 추구하는 철학을 전지훈련을 통해서 했고요. 또,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고요. 1, 2차전에서 그런 결과들이 안 나오다 보니까 제 스스로 승점을 얻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강등권으로 가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도 오고요. 그러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철학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우리 내면의 자원을 갖고 최대 효과를 낼까. 그렇게 전환점을 가져가게 됐고요.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우리가 잘 나가다가 주춤했는데, 타가트 선수가 예상한 만큼 많은 골을 넣어줬어요. 물론 개인은 영광이지만 제가 봤을 때는 다른 공격수도 함께 상승작용이 일어나서 터져줘야 하지 않나. 너무 타가트 한 쪽에만 득점이 이뤄지지 않았나. 그런 부분이 마지막 부분에서 골이 안 터지고 승리를 못 가져 오지 않았나. 우리 공격수들이 누구나 들어가도 득점이 터질 수 있는 팀이 되면 훨씬 경쟁력 있는 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전방 압박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운영 디테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90분동안은 전방 압박이 안되거든요. 선수들의 체력적인 한계가 있으니까. 저는 균형과 타이밍을 갖고 가고 싶었어요. 상대가 빌드업을 할 때, 중앙에서 직진하기 보다 측면에서 압박하길 원했습니다. 반대쪽은 버리기를 원했어요. 왜? 빠지더라도 협공으로 갈수 있으니까. 어느 시기에 선수들의 압박이 빠졌을 때는 내려와서 정비하고. 상대가 빌드업을 시작해서 좌우로 흔들 때, 어느 시점에는 같이 가서 측면에서 상대를 무너트리고 싶었어요. 압박 지점을 중앙이나 뒤가 아니라 앞쪽으로 가져간 이유는 상대의 전략, 전술을 의도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경기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가져가고, 상대의 플랜대로 쫓아가지 않고 싶어서였어요. 어쨌든 저는 하고 싶어요.” 

“단지 제 스스로 위안이 된다면, 첫 두 경기가 너무 우리가 붙기엔 상대가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초반에, 울산이나 전북이 아니고 다른 팀을 만났다면. 우리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고 결과가 왔다면 (올 시즌이) 조금은 다르게 가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생각이 있거든요. 남은 제주, 상주전이, 울산, 전북과는 다른 레벨의 팀이니까. 지금도 훈련을 하고 있는데, 기존 선수들이 제주전에 하고, 어린 선수들이 상주전에 해볼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축구가 맞다면, 선수들도 자신감 갖고 가지 않을까. 이런 기대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제주전과 상주전은 다시 포백을 시험해보는 것인가요?

“전방압박의 개념이 꼭 포백에서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포백이든 스리백이든 (전방 압박의) 원리는 비슷하기 때문에, 저는 그게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스리백으로 가든 포백으로 가든 기본적인 원칙만 선수들이 서로 이해하고 가면, 스타일이 나올 것 같다는 확신이 있거든요.”

-포백, 스리백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지난 서정원 감독 체제부터 수원은 수비 균형의 우려로 스리백을썼고, 이로 인해 중원의 허점이 드러났고, 전방 압박의 구조가 조밀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가 다시 스리백으로 돌아간 뒤 올 시즌에도 반복되어 왔고요. 선수들에게 익숙한 전술이라 안정은 됐지만, 감독이 바뀌고도 팀의 숙제가 동일한 상태가 이어지지 않았나요?

“팬분들이 조금 더 변화된 축구를 보고 싶다면, 저는 변화를 가져가야죠. 그렇게 노력해야 되고요.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꼭 스리백이라고 해서 변화가 없고, 꼭 포백을 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리백도 전방부터 압박해서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거든요. 그런 선입견도 바꾸고 싶어요. 일단 제주, 상주전도 저희가 팬들이 원하는 방향에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도록 시도해보겠습니다.” 

■ 2019시즌 첫 두 경기 만에 멈춘 '노빠꾸 축구'
■ 제주-상주 상대 마지막 두 경기에서 다시 실험
■ 2020시즌에는 다시 격전지를 앞에 둔다

▲ FA컵 우승 후 여유를 찾은 이임생 감독 ⓒ한희재 기자


-K리그의 초보 감독이라고 자처하지만, 싱가포르에서 5년 간 감독으로 일했고, 중국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원 삼성에서도 이미 10여녀 전 코치로 일하셨기에 지도자 경력이 짧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 동안 어떤 노하우를 쌓았고, 올 시즌에 어떤 점이 부족했다고 느끼셨나요?

“사실 싱가포르에서 보낸 5년은, 한국보다 수준이 낮은 레벨에 있는 프로팀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기본기도 안되어 있는 선수들과 1년 간 힘들었어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죠. 1년의 시행착오를 거기에서도 겪었고. 2년 차에 우승도 하고 준우승도 했죠. 그렇게 2년씩, 2년씩 우승을 하면서 계약을 늘려 6년간 계약을 했는데 5년 차에 이제는 여기를 떠나야겠다고 느꼈어요. 사실 그 당시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불러주는 데가 없었으니까요. 간 곳이 중국 2부리그에 있던 선전 팀입니다. 2군 감독으로 갔죠. 2군 감독으로 가서 중간에 1위를 달리고 있으니까 1군 감독의 요청도 받았고, 연변에 가서 수석코치 역할을 했고, 톈진에 가서 2군 감독을 했죠. 항상 2군 감독을 하면서 1위를 했고, 그 점을 평가 받아서 톈진에서 나중에 1군 감독으로 올라왔고요.”

“일단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빌드업, 포세션(점유) 축구를 했어요. 예전에 모든 지도자들이 과르디올라에 대한 환상에 잡혔을 때, 저도 (환상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때 우승도 그렇게 했고, AFC 대회도 나갔죠. 그렇게 우승을 하고 나니까, 꼭 이런 축구가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다이내믹(역동적인) 축구에 관심이 많아지더라고요. 상대가 빌드업을 하기 전에 미리, 거기부터 차단하면 조금 더 많은 찬스가 오겠다는 퍼센테이지도 봤고요. 그런 축구를 해보고 싶었는데, 사실 중국에선 못했어요. (선수들의) 피지컬 자체가 그런 다이내믹한 움직임에 거부반응이 있더라고요. 수원에 와서 그런 축구를 해보고 싶어서 전지 훈련을 통해 시도를 했는데, 제가 불행히도 성공을 못했고요. 선수들이 서포트를 해준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과르디올라식 점유 축구를 하다가 역동적 축구 철학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나 영감을 준 팀이 있었나요?

“사실은 결국 유럽 축구를 보면서, 클롭의 축구를 보면서, 도르트문트 경기를 많이 보면서죠. 아, 이건 또 다른 축구구나. 과르디올라의 축구는 뭐랄까, 예술을 연상시키는 축구를 했잖아요. 클롭의 축구는 또 달랐어요. 이 축구를 보면서 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더라고요. 이렇게 굉장히, 엄청난 스태미나를 해나갈 수 있을까? 이 사람은은 하네.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의구심도 갖고. 기회가 된다면 이런 다이내믹한 축구를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K리그도 인터넷으로 해외에서 봤는데, 경기 시작할 때 5분에서 10분, 지고 있을 때, 끝나기 전 5분, 10분, 이 정도만 다이내믹한 장면이 나왔어요. 템포와 균형을 조절하면서 이 역동적인 플레이를 90분간 끌고 갈 수 있다면, 굉장히 신선하겠다. 내가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솔직히 생겼는데요. 선수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오늘 훈련에도 전술적으로 가서 수비들한테 힘든 거 있으면 얘기를 좀 해달라고 했고, 제주전에서 해볼 생각입니다. 우리가 90분동안 전방 압박을 균형을 맞추면서 해본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해보고 싶습니다.”

-초반에 어린 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웠다가 철회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올해 들어와서 데뷔를 시킨 선수가 9명이더라고요. 그건 정말 아마 12개 구단에서 이만큼 기회를 준 팀이 없다고 생각이 들고, 상주전에 또 다른 2명이 들어가면 10명이 넘게 됩니다. 저로서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저 나름대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3자는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오현규 선수, 한석희 선수, 송진규 선수, 이런 선수들이 또 밑에 뛴 선수들이 10경기 전후, 그 밑으로 뛰고 있는데요. 저희 어린 선수들과 미팅을 자주했습니다. 좋은 얘기만 하지 않았어요. 형들은 경험과 경기 운영 능력이 너희보다 낫다. K리그1의 팀에 들어가서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되려면, 너희가 이기기 위해서는, 피지컬 파트에서 너희들이 우수해야 한다. 피지컬에는 여러 부분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활동량이다. 현대 축구에서 공수 전환 템포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공수 활동량으로 형들을 이기지 못하면 어렵다고 본다. 그런 부분을 강조했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이 부족했죠. 그 또래끼리 경기를 할 때는 기술적으로 가진 선수라고 할 수 있지만, K리그1에 들어와서 사실 기술이 마음대로 통하지 않거든요. 결국은 상당수가 제가 생각하는 만큼 못 올라 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었어요. K리그에 데뷔는 시켜줬지만 제가 생각하고 요청한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부분은 아직도 선수들이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그 선수들이 제 앞에선 알겠다고는 했지만, 돌아 서서는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그 부분에서 선수들을 이해시키고 노력하게 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매탄고가 유소년 무대에서 몇 년간 성적이 좋았고, 좋은 선수도 나왔는데 1군에 와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즌에도 이 과제를 풀어야 합니다.

“매탄고 출신 선수들이 그 나이 대 우수한 선수이기에 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줬나요? 전 지금 선수들이 예전의 자기들의 화려했던 고교 시절, 아마 시절은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환상에서 계속 가면 갈수록,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억제요소가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내려놓고 K리그1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되려면 형들보다 더 노력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너무 활동량, 피지컬만 의식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지만, 1년 간 지켜본 느낌은 이 부분이 너무 부족해요. 이게 향상 안 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봐요.”

■ 싱가포르 시절 과르디올라식 점유 축구로 성과낸 이임생
■  클롭 축구에 매료, K리그에 90분 동안 역동적인 축구를 보여주고 싶다
■  수원 삼성 유스 중시 정책, 구현하려면 어린 선수들의 절실한 노력이 필요

▲ 이임생 감독의 눈에 든 18세 공격수 오현규 ⓒ한국프로축구연맹


-구단이 원하는 건 유스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는 것인데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지금 어린 선수 20명이 있는데 경험이 없어서 못 들어간다? 계속 넣어요. 그런데 승점은 못 따요. 이랬을 때 어떻게 수습하냐는 거죠. 본인들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노력하는 선수를 넣죠. 1경기, 2경기, 어떤 선수는 10경기 넘게 뛰지 않았습니까? 첫 한 두 경기는 자기 기량을 발휘 못할 거라는 걸 알아요. K리그에 데뷔하는 건 엄청난 부담이거든요. 하지만 3, 4경기에 나간다면 변화가 이뤄져야 해요. 그 변화 폭이 작거나, 없다면 정체된 것입니다. K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라고 말하기 어렵죠. 매 경기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다. 리저브로 데려가서 교체로 넣었을 때 탁탁 나와야 합니다. 고승범 선수도 얼마나 많은 시간 인내하고 노력했겠습니까?” 

“이런 의견들도 많습니다. ‘감독님 난 프로 데뷔하는 데 3, 4년 걸렸습니다. 후배들도 뛰게 해주면서 왜 제겐 기회를 주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희 팀 내부에 부정적으로 느끼는 선수들도 있고, 어린 선수들의 자만심도 가끔 있다고 느껴져요. 난 잘하는 데 넣어주지 않는다. 지금은 선수들이 와요. 내게 왜 기회를 안 주느냐. 전 설명합니다. 네가 있는 포지션의 선배 선수들을 보라. 네가 뭐가 나을 수 있어? 설명하면 ‘들어보니 그렇네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점을 요구하는 거다. 얘기를 하죠.”

“오현규는 18세 나이에, 한국에 이런 유형의 스트라이커가 나오기가 어려워요. 쉴딩 플레이, 몸싸움, 슈팅, 제공권 낙하지점에 상대 수비수를 괴롭히는 능력. 포지션 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능력이 있네, 키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송)진규는 볼 관리 능력, 패싱 능력이 좋네. 하지만 (고)승범이에게 말한 것처럼, 여기서 좀 더 나와서, 공간으로 튀어 나와서 결정해주고, 볼이 빠지면 다시 수비전환으로 돌아와주고. 이런 점을 주문했어요. 좋은 기술과 형들이 가진 활동량만큼 노력해서 끌어와 준다면, 훨씬 더 좋아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드는 거죠. 포지션별로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대원이, 태환이의 경우엔 윙백으로 해야 할 역할. 기술적으로 좋은 크로스, 컷백, 대각선 들어가서 찬스 만드는 방법들. 더 나와야 하는 거죠. 그 자리에서 경기를 뛰는 자체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뭔가 형들보다 뛰어넘어갈 수 있는 것을 경기장에서 보여주면 경쟁력 있는 선수로 간다. 지금 가진 걸로 그 정도만 뛰라는 건 할 수 있지만 그걸로는 K리그1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이 선수들이 잘되길 바라기 때문이죠.”

-베테랑 선수, 외국인 선수에 중고참, 신인 선수까지 각기 다른 요구와 불만 속에 팀을 운영하는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감독을 하면서 이건 변함이 없는 거 같아요. 선수들에게 달콤한 얘기만 해줄 수는 없다. 달콤한 얘기가 도움이 되고, 선수의 발전이 된다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발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현실적인 조언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대영 선수 고승범 선수의 경우 경기 못나가면서 인내 하면서도 함께 얘기하면서 본인들의 것을 보여줬을 때 기쁘고 보람도 느끼죠.”

-고승범 선수의 FA컵 결승 2차전 활약은 정말 놀랐습니다. 초반에 기회를 줬다가 부진했고, 오랫동안 기회가 없어서 팀을 떠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고승범 선수는 측면과 중앙을 다 볼 수 있는데 제가 오고선 미드필드에서 많이 경기를 했죠. 구대영 선수는 윙백, 풀백을 보는 데 대구전에 중앙에 롤도 줬습니다. 오현규 선수는 스트라이커를 보죠. 선수들에게 그 포지션에서 해야 할 플레이가 나오면 자기 가치가 올라간다고 얘기를 많이 해요. 고승범 선수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승범아, 볼이 오면 네가 선택하는 옵션이 너무 좁은 것 같다. 너무 좁게만 주려고 하는데, 그리고 미들에서 항상 뒤에만 있는 게 아니고 경기 흐름에 따라 순간적으로 공간을 차고 가면서 결정도 해줄 수 있고 어시스트도 해줄 수 있고. 네가 분명 갖고 있는 건 공수를 뛰는 장점은 있지만 여기에서 미리 전체적인 우리 선수들의 위치와 상대 선수 위치를 보고 공이 왔을 때 네가 뿌려줄 수 있는 딜리버리하는 부분을 더 크게 봤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전방 쪽으로. 공이 윙포워드나 전방으로 가더라고 뒤에 있는 게 아니라 상대 미드필드와 수비 갭 사이로 튀어가면서 어시스트나 결정해줄 수 있는, 그러면 너의 가치가 더 높아질 거 같다.’” 

“대영이 같은 경우는 ‘풀백으로 수비력은 좋은 거 같다. 근데 윙백 역할에서 네가 공격적으로 더 해주면 가치 있는 선수가 될 거다. 왜 굳이 직진으로 뛰어야 하지? 대각으로 뛰어가면 페널티 박스 안에서 더 많은 찬스를 잡을 거 같은데 왜 직진으로 올라가서 그냥 크로스를 올리지? 컷백도 해도 되고 미리 수비 뒤에 감아주면 더 많은 찬스를 만들 수 있다.’ 포지션 마다 더 많이 선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부분을 얘기해왔거든요. 연습장에서 선수들이 그걸 잡고 느끼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이미 해왔던 플레이만 하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팀에는 여러 개인 특성이 다르고 장단점이 다르죠. 전 사실 6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능하면 경험이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그리고 6강 진입에 실패한 뒤에, 승범이와 대영이에게 이제 너희가 보여줘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6강에 실패한 후에도 기존 선수들을 뛰게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선수들이 자기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 후보 설움 극복한 미드필더 고승범, 윙백 구대영
■ 이임생의 주문: 포지션별 역할을 확장하고 성장하라
■ 선발 출전 선수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 이임생 감독의 페르소나로 거듭난 고승범은 2020시즌 주축 미드필더 자리를 낙점 받았다. ⓒ한희재 기자


-선수 교체가 이르다는 지적, 그로 인해 선발 전략의 실패를 자인한 경기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나운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신 것을 들었어요. 제 선수 교체가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전반에 빼고, 후반 시작하면서 빼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선발 멤버는 가능한 길게 끌고 가는 감독들이 많이 계시죠. 저는 그렇게 크게 티가 안 나는 경기력이면 기다리는 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90분 경기를 뛰려면 뒤에서 기다리는 선수 이상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만약 전반전의 퍼포먼스가 뒤에 있는 선수만큼이 안 된다면, 전 뒤에 있는 선수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전반에 있는 선수가 워낙 능력 차이가 크다면 못 바꾸고 계속 가야겠죠. 제 판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보는 분들이 평가하겠지만 제 논리는 갖고 있어요. (Q.경쟁을 유도하는 것인가요?) 그렇죠.”

“고승범 선수의 경우도 전에 기회를 줬습니다. 이런 퍼포먼스가 안 나와서 리저브로 갔던 거죠. 시간이 오래 걸렸죠. 어린 선수들에게 단 15분, 20분, 30분은 짧죠. 짧지만 그게 자신들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존의 선수들이 이 선수를 투입하느라 못 뛰게 된다면 어떻게 이해를 시킬 수 있나요? 기존의 형들, 선수들보다 감독으로서 아, 선수가 어리지만 형들보다 낫겟다는 뭔가를 줘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기존 선수에게도 ‘얘가 너보다 이런 게 나으니 네가 기다려줘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어요. 결국 경기력으로 감독이 선수를 설명할 근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죠. 그냥 경험만 쌓게 해달라? 이것만 갖고는 기존의 선수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거죠.”

-어린 선수들에게 피지컬 강화를 강조했는데, 추구하는 전방 압박을 위해서인가요? 시즌 초 어린선수들을 내세운 것은 기존의 주전 선수들, 베테랑 선수들로 구현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전지훈련에서 기존 선수들도 했어요. 어린 선수들도 해왔고, 선수들을 믿고 두 경기를 그렇게 했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두 가지 부분에 대해서 지금도 신중히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내가 하고자 했던 부분을 계속해서 갈 것인지. 아니면 지금 우리 전력에서 내가 갖고 있는 철학과 다르게, 다른 것들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도 딜(Deal)을 한 거거든요. 지금 승점을 따기 위해선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전술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내년의 방향에 대해 저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우리 팀의 자원의 색깔과 맞는 건지, 내가 갖고 있는 색깔을 버리고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게 맞는 건지. 이 두 부분이 머리를 맴돌고 있어요.” 

“내년에는 제가 원한 포백으로 갈 거냐는 질문을 한다면, 전 포백과 스리백을 우리가 함께 가져갈 수 있으면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같이 맞받을 수 있는 상대면 포백으로 갈 수 있고, 상대가 우리보다 강하면, 스리백, 사실은 스리백이 아니라 파이브백이죠. 양쪽 윙백이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5명이 형성되고 카운터 어택을 사용할 것인지. 이 두 가지를 다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 감독이 포백을 원해서 가져가지만 결과가 안 나오면 올 시즌 같은 일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여러 교훈을 통해서 내년에 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해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많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새로 부임했고, 새로운 철학을 적용하기 위해선 첫 시즌 성적의 목표는 높을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뜻밖의 FA컵 우승을 했어요.

“FA컵 우승이 아니었으면 저 상주전을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웃음)”

-수원 팬들의 열렬한 응원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감독으로서는 압박감이 말도 못하죠. 하지만 저는 선수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어요. 팬들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 차는 의미가 없지 않느냐.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감독으로서는 압박감을 말도 못할 정도로 강한데, 선수들을 봤을 땐 팬 여러분이 감사하죠. 저런 팬들 앞에서 자기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건 자부심도 가져야 하고, 그만한 책임감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경기 전 인터뷰마다 많이 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결승 2차전은 조금 편해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우승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말도 하셨는데요.

“제 스스로도 다른 날보다 덜 긴장했고, 덜 경직됐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가졌어요. 사람이 최고로 절박할 때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한 번 경기를 해봤고, 저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코레일과 1차전을 하면서 ‘아, 우리 홈에서 우리 선수들이 자만심만 안 가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난 못 이기면 집에 가야 한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 했다면 기쁜 마음으로 가자. 오늘 지든 말든, 잘려서 집에 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다 버리자. 난 오늘 이길 수 있다. 혹시 지더라도 최선 다했으면 OK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갔거든요.”

■ 우승의 기쁨은 하루만 누렸다
■ 2020시즌 동계 훈련, 피지컬 강화에 총력
■ 수원 삼성 만의 색깔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

▲ 부임 첫 시즌에 FA컵을 든 이임생 수원 삼성 감독 ⓒ한희재 기자


-결국 우승컵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근데 진짜 이겼는데, 솔직히 아무 생각 안 나더라고요. 그냥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시행착오 겪으면서, 하… 이게 쫙 테이프가 한번 머리 속을 지나가더라고요. 집사람이 현명한 것 같아요. 항상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여보, 만약 우승하더라도 하루만 기뻐해. 지더라도 하루만 슬퍼해. 인생 새옹지마라고. 어느 순간에는 그 말이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우승도 그날 하루만 기뻐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이제 걱정이죠.”

-끊임없는 걱정과 도전의 연속인데, K리그 1년 만에 스트레스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어차피 수원에 오면서, 저한테도 K리그 초보 감독으로서 도전이었고요. 1년에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운이 좋게 FA컵을 우승했어요. 물론 선수들의 노력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제 올해도 지나가잖아요. 이미 과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살면서 축구뿐 아니라 삶 자체가 과거의 교훈을 통해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잖아요. 내년의 역경을 이겨나가야죠. 도전하면서 경기를 이기고, 지고, 결과에 대해 평가 받고. 이게 감독이라는 직업이 아닌가. 그 도전을 무서워하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겠죠.”

-2020시즌에는 ACL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강조하신 피지컬 파트의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어떻게 준비할 계획인가요?

“어떻게 보면 어린 선수를 경쟁력 있는 선수로 만들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 지 1년 동안 알게 된 거 같아요. 미리 알았으면 동계 훈련에 포커스를 두고 끌어 올렸을 텐데, 이게 나의 패착이었구나. 이번 동계 훈련에는 할 예정입니다. 선수들의 반응이 굉장히 나올 거 같아요. 긍정적 반응보다 부정적 반응이 나올 거 같아요. 그런 훈련을 전에 안 해봤기 때문에. 50대50에서 공을 이겨낼 수 있는 집중력, 적극성, 또 공수 전환을 빠르게 가질 수 있는 활동량. 이런 두 가지만 이 선수들이 키울 수 있으면 지금보다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될 수 있어요. 지구력 훈련을 할 때, 굉장히 힘들어요. 저도 선수 시절 시절에 해봤고, 저희 땐 많이 했죠. 힘들 때, 고비를 넘길 때 멘탈 파트도 강해집니다. 의지가 생기죠. 힘들 때 놔버리면 굉장히 힘들거든요. 이런 부분만 선수들이 인내하고 가면 선수들이,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포기해버리면 기존 템포로, 자기 스타일 밖에 갈 수가 없어요. 그것만 갖고 경기를 뛰게 해달라고 한다면, 투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 이임생 수원 삼성 감독 ⓒ한희재 기자


-다음 시즌의 목표는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앞서 오신 기자 분들도 ‘내년 목표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셨는데, 제주전과 상주전 두 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뭘 어떻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우리 수원 삼성의 색깔을 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요. 우리 만의 스타일. 그것을 올해 해보려다가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는데... 감독마다 나름대로 철학이 있지 않습니까? 난 이런 축구를 하려고 하는데 우리 선수들이 그걸 못 따라 주거나, 아니면 결과가 안 나왔을 때 감독으로서는 ’계속 내 것을 밀고 가야 하나? 강등권으로 가면 어떻게 하지?’ 이런 두려움이 밀려오거든요. 지금 갖고 있는 자원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이미 적응된 것, 가보자 해서 결국 이렇게 온 거거든요. 가능하면 저희가 맞붙어도 할 수 있는 팀들한테 우리 색깔을 가져가고요. 객관적으로 우리보다 강한 상대라면 효율적으로 카운터 어택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전방에서 압박 축구와 그게 안 되면 뒤에서 물러서 카운터어택을 하는 축구를 상대에 맞게 가야 하지 않나, 이런 계획이 있습니다. 이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는 거죠. 그런데 내년 목표를 말하려면 우선 용병도 와야 하고, 국내 선수도 임대나 트레이드를 어떻게 할지 구단과 협의해야 하고, 계속 헤야 할 일이 많아요. 선수 수급도 안 된 상태에서 ‘내년에도 FA컵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류의 말을 하는 건 섣부른 상황인 것 같아요. 그래도 수원 삼성의 색깔을 이제는 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수원 팬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요?

“K리그 1년 차 초보 감독이 수원에 와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수원 팬 여러분에게 좋은 경기력과 좋은 결과를 늘 가져다 드리고 싶은 마음인데, 제가 부족해서 1년동안 팬 여러분들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저희가 올 시즌 다행히도 FA컵 우승컵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켜서 기쁘게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이게 하루 만의 기쁨으로 저는 끝났습니다. 이 순간부터 또다시 내년에 대한 수원 팬 여러분의 기대치에 가기 위해 선수들과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제게 주어진 시간과 선수들과 팬 여러분들의 눈높이에 맞춰 갈 수 있게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노력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스포티비뉴스=화성,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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