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하게 코너킥을 준비하는 김호남
[스포티비뉴스=인천, 유현태 기자]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 하프타임엔 늘 밴드 부활의 노래 '새벽'이 울려퍼진다. 인천의 대표 응원가다. 노랫말엔 매년 강등 위기에서 늘 살아남았던 인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음원이 끝난 뒤에도 인천 서포터들은 목소리로만 '새벽'의 후렴을 한 번 더 부른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인천의 의지가 담겼을 것이다.

2019시즌에도 인천은 캄캄한 부진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올해도 강등 위기가 찾아왔다. 안데르센 감독이 시즌을 절반도 버티지 못한 채 팀을 떠났고, 지난 5월 유상철 감독이 부임했지만 반등은 쉽지 않았다. 지난 4월 11위로 떨어진 이후 거의 6개월을 강등권에서 보냈다. 11경기 무승, 7경기 무승에 빠지기도 했다. 9월 25일 상주 상무를 3-2로 이기고, 29일 강원FC와 2-2로 비기면서 비로소 10위에 올랐다. 매년 하반기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살아남았던 인천이 또 한번 기적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적을 꿈꾸던 시점 비보가 전달됐다.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였던 인천은 성남FC와 34라운드를 마감했지만, 경기 뒤 인천 선수단은 눈물을 흘렸다. 유 감독의 건강 이상이 처음으로 알려진 날이었다.

인천은 24일 '안방'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37라운드에서 상주 상무를 만났다. 올해 마지막 홈 경기에서 울려퍼진 '새벽'은 의미가 더 컸다. 하프타임이 아닌 경기 전 '새벽'이 경기장을 울렸다. 구단이 준비한 영상이 경기장 스크린에 재생됐다.

37라운드를 앞두고 췌장암 진단을 공식적으로 알린 유 감독을 위한 것이었다. 투병하면서도 인천의 잔류를 위해 시즌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던 한국 축구의 전설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 빗속에서도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린 유상철 감독

췌장암 투병. 그 두 단어만으로도 '새벽처럼' 캄캄하게 다가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싸우는 이는 한 명이다. 지켜보는 이들은 힘을 내라며 응원을 전달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축구도 11명이 싸우고, 이를 지켜보는 수 만의 관중은 목소리로 힘을 보태는 것이 전부가 아니던가.

인천 팬들은 경기 전부터 박수와 함께 유 감독의 이름을 넣어 응원 구호를 외쳤다. 상주 상무 서포터도 유 감독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연호했다.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응원뿐이었다.

피치에 선 선수들은 경기력으로 감독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할 뿐이었다. 인천의 선수들은 인천은 유난히 집중력이 높았고 끈질기게 더 뛰었다. 인천은 후반 30분 문창진, 후반 43분 케힌데의 연속 골을 묶어 상주를 2-0으로 잡았다. 인천은 승점 33점을 기록해 10위에 오른 채 마지막 라운드에 돌입한다. 이미 제주 유나이티드가 최하위를 확정했고, 인천은 경남FC와 최종전에서 승점 1점 이상을 따내면 잔류를 자력으로 확정한다.

아픈 손가락들의 득점이었다. 문창진은 이번 시즌 영입됐지만 기대했던 만큼 성적을 내지 못했다. 케힌데 역시 여름에 합류했지만 득점이 없어 유 감독의 고민을 더했다. 이 두 선수가 나란히 득점을 터뜨리면서 승리를 안겼다. 득점 뒤 유 감독의 품에 안긴 것은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그대로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문창진은 "경기 전에 감독님이 자기를 위해 뛰어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건 프로가 아니라고. 홈에서 승리가 없었다. 팬 분들을 위해서 꼭 승리해달라고 말씀해주셨다"면서도 "감독님이 따뜻하신 분이다. 제가 경기를 많이 못 나갔지만 뒤에서도 잘 챙겨주셨다. 가족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골을 넣고 달려갔던 것 같다"며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인천의 '원클럽맨' 김도혁은 승리로 유 감독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님 힘드신데 뛰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거 조금 힘든 것은 감독님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뛰고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감독님은 대단하신 분이다. 스스로 쌓아오신 명성대로 극복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결과로 보여드리겠다. 항상 응원하면서 함께 극복하고 싶다."

최선을 다한 상대가 있어 더 감동적인 승리였다. 김태완 감독은 주전을 여럿 빼고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 전 인터뷰부터 절대로 힘을 빼고 나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상주는 이미 잔류를 확정해 동기부여가 떨어진 상황이라, 오히려 출전 기회가 간절한 선수들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페어플레이, 경기에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허투루 한 경기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즌 초반부터 매일 이야기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과 상주 역시 '알량한 동정' 대신 '최선을 다한 경기'로 유 감독에게 경의를 표했다.

언제 해가 뜨지 모르는 새벽을 보내듯, 유 감독의 투병은 힘겨울 것이다. 하지만 경기 전후 인터뷰에서 유 감독은 의연한 표정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반복했다. 해가 뜰 아침을 기다리는 그의 곁에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팬들이, 또 제자들이 함께 있다. 유 감독은 "기사를 접할 때, 혼자서 보면 코 끝이 찡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여러 생각들이 난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내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희망을 잃지 않는다. 37라운드가 열린 K리그의 6개 경기장에선 모두 유 감독을 위해 30초간 기립 박수를 쳤다. 유 감독이 선수 생활을 했던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경기장엔 한글로 '할 수 있다, 유상철 형!'이란 플래카드가 붙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다. 유 감독도 "저 같은 상황에 처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제가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게, 이렇게 견뎌내면 완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인천의 2019시즌은 이제 경남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경남전엔 유 감독과 인천의 목표였던 '잔류'가 걸려 있다. 그 꿈을 이루고 난 뒤엔 선수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겨울을 보낸 뒤 내년 봄이 된 뒤엔 다시 만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했던 축구 영웅의 그날이 다시 경기장에 서는 날 역시 올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에도 '숭의아레나'엔 다시 한번 부활의 '새벽'이 울려퍼질 것이다.

"저 바람을 타며 새가 날아가듯, 저 바다를 넘어 기찻길을 따라 새가 날아오르는 하늘을 보라. 커다란 날개를 펴고 가까이 가려해.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내일이 더 길테니." - 부활 '새벽' 중

스포티비뉴스=인천,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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