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정신경염을 이겨내고 새 출발점에 선 SK 정현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캔버라(호주), 김태우 기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초점을 흔들렸다.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정현(25·SK)은 “바로 앞에서 던진 공도 잡지 못해 얼굴에 맞을 위기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생명을 위협할 병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야구선수로서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병이었다. 정현은 올해 kt의 애리조나 캠프 당시 이상한 경험을 했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좌우로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석증 판정이 나왔다. 이석이 떨어져 나와 귓속의 평형기관을 자극하는 병이다. 조금 쉬면 괜찮을 것이라 애써 위로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정밀검사를 받으니 더 심각했다. 전정신경염이었다. 의사는 “신경이 80%나 손상됐다”고 했다.

정현은 “증상이 오기 전날 12이닝 연습경기를 했는데 다 뛰었다. 단지 피곤해서 그랬나보다 했다. 그런데 아침을 먹는데 헛구역질이 나고, 야구장에 나가서 누가 반창고를 던져줬는데 그것도 못 잡았다”면서 “미국에서는 진료가 잘 안 되니 한국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전정신경염 판정이 나왔다. 낫기까지 정해진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 일반 사람들은 완치까지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신경이 회복되고, 눈이나 다리에서 부족한 신경을 채워주기까지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푹 쉬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었다. 입원도 했다. 그 사이 정현의 몸은 망가지고 있었다. 정현은 “겨울에 웨이트트레이닝을 엄청 많이 했다. 몸 상태는 야구를 하면서 가장 좋았다.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다 좋았다. 하지만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답답했던 시기를 돌아봤다.

다행히 일반인들보다는 빨리 회복했다.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자체에 안도했지만, 그래도 3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현은 “몸이 처지더라. 다시 몸 상태를 올리려면 배의 노력이 필요한데, 시즌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때 SK와 kt의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정현은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인천을 향했다. 당연히 첫 활약은 좋지 않았다. 2군으로 갔다. 정현은 “2군에 내려가면서부터 내년을 생각했다”고 했다.

모든 문제는 훈련량 부족에서 시작됐다. 정현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전정신경염은 더 이상 정현을 괴롭히지 않았다. “재발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포털사이트에서 10시간 넘게 검색을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정현은 2군에서 강훈련에 돌입했다. 그 과정은 호주 캔버라 유망주캠프까지 이어진다. SK 코칭스태프는 야수 중에서 가장 훈련 태도가 좋고, 또 기량이 향상된 선수로 정현을 손꼽는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답답한 심정은 떨쳐냈다. 정현은 “훈련은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껏 했던 훈련 중에 이번 캠프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 배우는 것이 너무 많다. 얻은 것들을 노트에 쭉 정리했는데 수비·주루·타격을 다 합쳐서 최소 10가지는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특히 수비력 향상을 가장 큰 성과로 뽑는다. 정현은 “수비가 부족한데 리듬과 밸런스 위주로 훈련을 했다. 사실 송구는 자신이 있다. 수비 범위가 좁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구종과 상대 타자 스윙 궤도에 맞춰 먼저 스타트를 하는 쪽으로 만회하려고 한다. 시즌 때도 계속 해왔던 부분이다. 몸으로 느낀 것도 있기 때문에 더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SK 코칭스태프를 정현과 김창평을 김성현과 경쟁할 유격수로 보고 있다. 정현도 12월과 1월 개인훈련을 통해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지난해 kt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이지풍 코치가 SK에 합류한 것 또한 정현으로서는 호재다. 전정신경염 탓에 사실상 2019년을 날린 정현도 몸 관리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다시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완치 판정을 받기 전 의사는 정현에게 “야구를 그만둘 마음의 준비는 됐느냐”고 농담했다. 정현은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고 잘라 말했다. 과장을 조금 섞어 다시 찾은 야구인생이고, 또 팀에서의 기회다. 그사이 야구를 향한 절박한 심정도 커졌다. 정현은 “내가 하기 나름의 문제”라면서 “결과를 꼭 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물 흘러가듯 준비를 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의 의지가 다시 샘솟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캔버라(호주),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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