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루에서 뚜렷한 가능성을 내비친 채현우는 내년에도 더 많은 부분에서 팀에 기여하고 싶다는 각오다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캔버라(호주), 김태우 기자] 9월 3일 인천 NC전은 채현우(24·SK)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대주자로 2루에 나간 그는, 리그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NC)를 앞에 두고 보란 듯이 3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NC가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지만 채현우는 “먼저 들어갔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빙그레 웃는다. 결과는 원심대로 세이프. 채현우에게는 KBO 1군 첫 도루가 올라갔다. 이처럼 벤치의 작전을 잘 수행한 채현우의 머릿속에는 지난 몇 달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입단 전까지만 해도 도루와 잘 어울리지 않았던 이 선수는, 어느덧 양의지를 앞에 두고 3루 도루를 맡길 정도의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채현우는 올해 퓨처스리그(2군) 55경기에서 무려 38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시즌 막판 1군에 올라오지 않고 2군에 계속 있었다면 퓨처스리그 도루왕이 됐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런데 정작 채현우는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도루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채현우는 “사실 원래 자신이 없었다. 대학교 때는 도루를 별로 못했다. 죽으면 분위기가 넘어가니 시도를 못했다”고 의외의 답을 내놨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는 달랐다. SK는 채현우를 주루에서 활용하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 속에 지명했다. 퓨처스팀 벤치는 주자만 나가면 채현우를 대주자로 기용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발로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것. 그러려면 뛰어야 했다. 상대도 모든 의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어졌고, 채현우는 어김없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 과정에서 주루 경험치가 계속 올라갔다.

채현우는 “여기서는 죽어도 뛰어야 했다”고 떠올리면서 “뛰는 선수라고 인식이 되니 도루 시도가 점점 어려워지기는 했다. 죽은 것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시도를 해보고 성공도 하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채현우는 1군에 올라갔고, 포스트시즌 엔트리까지 포함됐다. 채현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올해 결말”이라고 1년을 돌아봤다.

이번 캠프에서도 맹렬한 주루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경기장은 물론,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숙소 주차장에서 스타트 연습을 한다. 채현우는 “스타트를 할 때 자세가 뜨는 경향이 있다.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2군에서는 슬라이딩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올해 베이스 중간으로 들어가다 죽은 적이 한 번 있다. 끝으로 들어갔으면 살 수 있었다. 슬라이딩 연습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중점 과제를 설명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채현우는 내년에도 대주자 요원으로 중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평생 대주자 요원으로 남을 생각은 전혀 없다.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이번 호주 캔버라 캠프에서는 수비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다. 채현우는 “궤도 판단, 포구 자세 등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송구 교정도 많이 연습하고 있다. 대학교 때는 중견수에서 많이 뛰었다. 좌익수나 우익수 경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욕심을 많이 부릴 생각은 없다. 채현우는 “감독님 말씀대로 하나씩 하는 게 편하다. 주루와 타격을 모두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하나를 집중적으로 해두고, 그것이 좋아지면 다른 쪽도 연습하려고 한다. 방망이가 가장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2020년 목표도 조금은 소박하다. 아직은 더 채워넣을 ‘첫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게 채현우의 솔직한 이야기다.

채현우는 “올해 도루와 득점은 했지만 아직 수비로 경기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수비에 들어가서 첫 아웃카운트를 잡아보고 싶다. 파인플레이가 아니더라도 공을 한 번이라도 잡아봤으면 좋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 목표를 이루면 아직 치지 못한 안타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간 2019년이다. 2020년에도 그것이 이어진다면, 그 정도의 소박한 바람 정도는 무난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스포티비뉴스=캔버라(호주),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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