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반 29분 만에 에릭센(왼쪽) 투입을 결정한 무리뉴(오른쪽)의 결정이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AFP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주제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 홋스퍼 홈 데뷔전을 악몽처럼 시작했다. 전반 19분 만에 두 골을 내줬다. 전반 29분 만에 첫 번째 선수 교체를 단행했고, 4-2 역전승을 이뤘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로 치른 지난 주말 첫 경기에서 3-0으로 앞서던 경기를 3-2 신승으로 마친 것과 정반대의 경기가 됐다.  

토트넘은 한국 시간으로 27일 새벽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올림피아코스와 2019-20 UEFA 챔피언스리그 B조 5차전에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른 시간 두 골을 내준 흐름이 끝까지 이어졌다면 토트넘은 조별리그 탈락의 위기에 몰릴 수 있었다.

전반 29분 만에 선수 교체를 시도한 것은 무리뉴 감독의 선발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리뉴 감독은 플랜A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경기 중 과감한 교체와 용병술로 흐름을 반전하는 것이 그의 능력 중 하나다.

무리뉴 감독은 웨스트햄전에 선보인 비대칭 스리백 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차이점은 웨스트햄전에 레프트백 자리에서 사실상 왼쪽 센터백으로 기능한 벤 데이비스가 부상으로 빠져 대니 로즈가 투입된 것이다. 신체조건과 수비력은 물론 후방에서 전진 패스를 연결하는 능력면에서 로즈는 데이비스에 열세다. 로즈는 비대칭 스리백의 왼쪽 센터백보다 직접 측면을 타고 오버래핑하는 정통 풀백이나 윙백에 가깝다.

▲ 올림피아코스는 측면으로 벌린 포덴세와 전방 압박하는 카마라로 왼쪽 센터백 로즈를 불편학 만들었다. ⓒ김종래 디자이너


◆ 무리뉴 비대칭 스리백 약점 파고든 올림피아코스 '카마라의 압박'

올림피아코스는 웨스트햄전의 무리뉴 전술을 파악하고 나온듯 했다. 스리백이 신속하게 측면으로 전개해 빠르게 공격 지역으로 공을 보내 속공한 토트넘의 루트를 제어했다. 4-3-3 포메이션으로 나선 올림피아코스는 세 명의 미드필더 중 우측에 자리한 무함마드 매디 카마라로 하여금 빌드업 미드필더 해리 윙크스를 괴롭히고, 로즈의 패스 동선까지 막아서게 했다.

올림피아코스는 요르고스 마수라스, 유세프 엘아라비, 다니엘 포덴세를 스리톱으로 세웠는데, 카마라가 엘아라비의 영역까지 압박하고, 포덴세가 오른쪽 측면으로 넓게 벌려서면 엘아라비와 포덴세 사이의 하프 스페이스 영역까지 점유하며 공수 양면에 걸쳐 부지런히 뛰었다.

왼쪽 센터백으로 뛴 로즈는 돌파력이 좋은 포덴세의 측면 공격을 견제하느라 과감하게 올라서지 못했고, 카마라의 압박으로 인해 패스 코스가 제한됐다. 다이어와 윙크스가 제대로 공을 받지 못하자 토트넘 스리백은 서로 공을 돌리거나 좌우로 벌린 손흥민과 오리에에게 패스했는데, 곧바로 올림피아코스 압박에 막혀 차단됐다. 전방으로 전개한 패스도 부정확해 유효한 공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올림피아코스는 로즈의 패스 전개를 괴롭힘과 동시에 우측에서 높이 전진한 오리에의 뒤 공간을 곧바로 타격하는 역습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여기에 윙크스와 다이어가 중원 보호막 역할이 미진하게 중원 지역에서 과감하게 슈팅을 때리며 토트넘 골문을 위협했다. 올림피아코스의 적극적인 압박에 당황한 토트넘은 로즈의 패스 미스와 다이어, 윙크스의 수비 미스로 전반 6분 만에 엘아라비의 중거리 슈팅을 허용하며 선제골을 내줬다.

A매치 데이 이후 웨스트햄전을 치른 선수들이 그대로 경기에 나선 탓인지 토트넘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활력이 부족해보였다. 수비 집중력이 흔들렸고, 패스 미스도 많았다. 선제 실점 이후 급해진 토트넘은 전반 19분 코너킥 수비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고 수비수 후벵 세메두에게 두 번째 골까지 내줬다.

▲ 에릭센을 투입해 중원 패스 루트를 늘린 뒤 올림피아코스 중원 압박을 무용지물로 만든 무리뉴의 전술 수정 ⓒ김종래 디자이너


◆ 오리에 뒷자리에 에릭센 투입, 전반전에 전술 수정한 무리뉴

무리뉴 감독은 빠르게 전술적 허점을 수정했다. 중원에서 빌드업은 물론 수비 보호 역할까지 미진한 다이어를 빼고 창조적인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전반 29분에 조기 투입했다. 에릭센 투입은 포메이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윙크스가 중원 좌측으로 이동하고, 에렉센이 중원 우측에 배치됐다. 에릭센은 공격 2선이 아니라 오리에가 전진한 뒤 공간에서 후방 빌드업의 중심이 됐다.

윙크스와 에릭센은 근거리에 자리해 빌드업하지 않았다. 두 선수 모두 측면으로 빠지고, 로즈와 오리에가 위로 전진했다. 이를 통해 올림피아코스의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펼친 조밀한 중원 압박을 피해 공격했다. 에릭센은 전방 압박 범위를 벗어나 공을 받은 뒤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공격진에 투입했다.

후반 2분 수비 배후로 감아때린 패스를 시작으로 후반 3분 프리킥 크로스를 통해 다빈손 산체스의 헤더 슈팅을 끌어냈고, 후반 10분에는 좌측 전방으로 침투한 손흥민을 향해 수비 뒤 공간으로 장거리 패스를 보냈다. 후반 20분에는 손흥민이 문전 왼쪽을 파고 들어 크로스까지 연결한 상황을 긴 전환 패스로 끌어내는 등 토트넘 공격 속도를 높였다.

에릭센 교체 투입은 웨스트햄전과 마찬가지로 세 명의 수비수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배후를 지키며 공을 배급하고, 전진한 오리에를 포함한 다섯 명의 선수가 공격을 전담하는 이원화 구도의 효력을 부활시켰다. 물론, 전반 추가 시간 올림피아코스의 수비 실수로 델레 알리가 만회골을 넣고, 후반 5분 볼 보이의 도움을 받은 신속한 스로인 공격을 통해 동점골을 얻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 에릭센의 후진 배치로 오리에가 전진한 비대칭 스리백의 공격적 강점이 회복됐다. ⓒ연합뉴스/EPA


◆ 디테일은 달랐지만 공수 이원화 무리뉴 방향은 '유효'

결과적으로 토트넘은 오리에의 크로스에 이은 알리의 만회골, 루카스 모우라의 크로스에 이은 케인의 동점골, 알리의 크로스와 손흥민의 헤더 패스에 이은 오리에의 발리 슈팅으로 경기를 뒤집있다. 공격진에 포진한 5명이 3골 과정에 모두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후반 32분 에릭센의 프리킥 크로스를 케인이 헤더로 마무리해 4-2 승리의 쐐기골이 나왔다.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할 수 있으면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을 뿌릴 수 있는 에릭센의 존재는 무리뉴 감독의 속공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후 회견에서 "다이어를 교체한 것은 그에게도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내게도 마음 아픈 일이었다"며 "그 시점에 에릭센이 가진 창조성이 필요했다"며 전술적 이유로 빠르게 변화를 줘야 했다고 설명했다.

에릭센은 윙크스와 다이어가 동시에 배치됐을 때 스리백 앞 영역을 지키고 있던 것과 달리 상황에 따라 알리의 옆, 케인의 뒤인 2선 영역까지 올라가 압박과 공격 연계에 가담하며 중원에서 폭넓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무리뉴 감독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다이어의 플레이가 나빠서 뺀 것이 아니다. 다른 솔루션이 필요했을 뿐이다. 개인이 아닌 팀의 문제다. 델레 알리와 함께 할 세컨드맨, 윙백과 센터백 사이의 커넥션을 만들어줄 선수가 필요했다"고 했다. 에릭센은 이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했다.

에릭센 투입 이후 오리에의 전진으로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해 단조로웠던 빌드업 루트가 다변화됐고, 로즈는 윙크스가 근거리로 이동하면서 안정감을 회복했다. 윙크스가 카마라에게 묶이고, 로즈가 좋은 패스를 공급하지 못하면서 고립됐던 손흥민과 알리는 그제야 근거리에서 좋은 패스를 받고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웨스트햄전과 마찬가지로 왼쪽 지역에 모여 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황이 후반전에 나왔다.

후반 28분 3-2 역전골 과정은 알리가 왼쪽 측면으로 빠지고, 손흥민이 안으로 들어오는 교차 움직임에 중앙에서 케인이 미끼 역할을 했고, 뒤에서 에릭센이 달려들며 올림피아코스 수비를 분산시키는 움직임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바깥에서 오리에가 자유롭게 슈팅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다. 역전골이 들어갈 때 이 5명의 공격수(후반 16분 모우라가 무사 시소코와 교체되어 빠져나가면서 에릭센이 전진했다)가 모두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었다.

토트넘의 에릭센 투입이 효과를 보기도 했지만, 올림피아코스는 후반전에 카마라의 체력이 떨어지며 압박 밀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뒤집기를 허용한 올림피아코스는 중앙 미드필더 부찰라키스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마티외 발뷔에나를 투입했고, 경기 막판 공격진 교체로 화력을 보강했다. 무리뉴 감독은 후반 38분 알리를 빼고 탕기 은돔벨레를 투입해 중원 수비를 보강했다.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교체로 승리를 굳혔다. 

▲ 볼보이까지 활용한 무리뉴 감독은 홈 데뷔전에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 에릭센 장점 끌어낸 무리뉴, 토트넘을 둘러싼 기대감

2020년 여름 토트넘과 계약이 끝나는 에릭센은 중용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기부여도 떨어졌고, 그의 이탈을 대비해 영입한 선수들에게 기회가 갔다. 무리뉴 감독도 웨스트햄전 선발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올림피아코스전을 통해 에릭센의 장점을 활용했고, 지난 시즌까지의 파괴력을 재현하지 못하던 에릭센이 편하게 경기할 수 있는 전술적 환경을 제공했다. 무리뉴 감독은 4-2 승리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에릭센을 껴안으며 독려했다. 

무리뉴 감독은 재계약 의사가 없던 몇몇 토트넘 핵심 선수들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무리뉴 감독의 지난 역사는 물론 부임 후 시도 중인 실리적인 전술을 통해 트로피를 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선수단 사이에 피어오르고 있다. 선발 전술의 실패에도 과감한 선수 교체와 전술 수정을 통해 반전한 올림피아코스전은 무리뉴 감독의 진면목을 보여준 경기다. 

경기 외적으로 볼보이를 활용한 것은 물론, 전반전에 집중력을 잃고 조급해하던 선수단이 후반전에 달라지 자세를 보이게 이끈 하프타임 토크(무리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하프타임 토크 내용에 대해 현재 제작 중인 아마존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때 확인하라고 말했다)는 단 두 경기 만에 무리뉴 감독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