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화성, 박대현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스물한 살 여름.

퍼뜩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실업 팀에 입단할 수 있을까. 은퇴 뒤에는 어떡하지.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을까.'

처음이었다. 그동안 큰 고민 없이 운동선수로 살았다. 

대학교 2학년까지 필드 하키 선수로 묵묵히 코트를 누볐다. 

기량 향상에 몰두했고 감독과 선배 지시에 토 달지 않았다. 특출나진 않았어도 필드 하키로 대학까지 진학했다. 소질이 없는 건 아닌 듯했다.

약간의 재능과 특유의 성실성. 두 가지를 무기로 필드 하키 선수로서 미래를 그렸다.

박현종(27) 씨는 전형적인 엘리트 운동선수였다. 모든 체육인이 그렇듯 목표는 실업 팀 입단.

안정적인 시청 구단에 들어가 선수생활을 잇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스물한 살 때 많은 게 바뀌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끈덕지게 따라다녔다. 

좀체 떨어지질 않았다. 자신 있게 답(答)이 안 나왔다.

결국 운동부 궤도 밖으로 발을 뻗었다. 하키 채를 내려놓고 제2 삶을 준비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히 진로를 틀었다.

현재 박 씨는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글로벌 전자 기업에서 반도체 배관사로 일한다. 필드 하키 유니폼을 벗은 지 3년 만에 인생2막 첫 장을 썼다.

선수 시절 박현종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다. 라커룸 리더 유형도 아니었고. 그저 묵묵히 성실하게 운동했던, 조용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원래 꿈은 시청 구단에 입단해서 선수생활을 잇는 거였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 퍼뜩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선수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이런 류 고민이었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스스로 판단했을 때) 필드 하키 선수로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후 다른 길을 계속 알아봤다. 4학년 때 한 실업 구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이미 (운동선수로서) 꿈을 접은 상태였다. 미련 두지 않고 유니폼을 벗었다."

실제 입단 제의까지 받았으면 어느 정도 기량을 갖춘 선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리 불안감을 느꼈을까.

▲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하키 남자부 결승에서 인도를 3-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대한체육회
고민 내용과 그때 속내가 궁금했다.

"앞서 필드 하키 팀에 들어간 선배들을 보니 (은퇴 뒤) 지도자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적더라. (생각보다) 이 길이 좁다는 걸 느꼈다. '선수로 입단해도 불안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에까지 미치니까 더 불안했던 것 같다. 필드 하키는 훈련량이나 강도 모두 많고 세다. 그 탓에 몸이 많이 상해 있었다. 잔부상이 많았던 점도 (일반 취업으로) 방향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

은퇴를 결심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다. 대개 운동선수는 운동밖에 모른다. 학창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훈련과 합숙, 경기 출장의 반복이다.

몸에 익은 사이클을 벗어나는 건 두려움과 싸우는 일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대다수는 가지 않은 길, 궤도 밖을 동경하면서도 그곳에 발 들이지 못한다.관성이 지배하는 몸과 두려움에 지배 당한 마음 때문이다.

"맞다. 나 역시 정말 막막했다. 운동밖에 하지 않았던 터라 다른 분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지 정말 불안했다. 그때 대한체육회 은퇴선수 진로지원센터란 곳을 알게 됐다. 센터에서 먼저 연락을 해주셨다. 덕분에 불안감을 많이 덜 수 있었다."

궁금했다. 어떤 점을 도움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상담사께서 취업에 관한 면담을 많이 해주셨다. 또 (대한체육회가 초빙한) 취업 전문가 특강을 꾸준히 들으면서 전체적인 감을 익혔다. 운동선수 출신이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업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때 알았다."

"꼭 스포츠 관련 기업이 아니라도 그렇다. 나처럼 아예 처음 접하는 분야(반도체 배관사)에서도 체육인 출신을 선호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반도체 배관사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직업은 아니다. 많은 직무를 추천 받았을텐데 그럼에도 왜 배관사를 택했는지 궁금했다.

"일단 (대한체육회 은퇴선수 진로지원센터에서) 성격 테스트를 치렀다. 이후 상담사와 면담했다. (테스트 결과를 분석한) 상담사께서 반도체 배관사를 양성하는 S전자 에스에프티에이(SfTA)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려주셨다. 그걸 듣고 나도 괜찮겠다 싶어서 지원하게 됐다. 전문 기관에서 교육을 받다 보니 (스포츠 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에도) 취업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도전은 불안과 동의어다. 도전이 없으면 결과도 없지만 그 과정은 늘 불안과 싸움이다.

박 씨도 마찬가지였다. 덤덤하게 새 진로를 결정했지만 그래도 걱정은 컸다.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었다.

"주변 분들께 속내를 많이 털어놨다. 대화를 나누면서 불안감을 해소했다. 조언을 듣다 보면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보이는 경험이 종종 있다. 또 책을 많이 읽었다. 책과 사람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책으로 혜민 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꼽았다.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멈춰서도 괜찮다. 잠시 스톱했을 때 더 반짝이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 내용이 참 와닿았다. 운동만 해서 상당히 조급했던 내게 많은 위안을 줬다."

부상 또는 실업 팀 입단 좌절 등으로 유니폼을 벗은 후배 운동선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산 조언'을 들려 줬다.

"조금 더 길을 넓게 보셨으면 좋겠다. 나 역시 처음 운동을 관뒀을 땐 스포츠 관련 일만 생각했다. 하지만 은퇴선수 진로지원센터에서 면담하고 강의를 듣다 보니 다양한 직업과 업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센터에서 많이 알아봐주신다. 그 사람에게 알맞은 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천해주신다. 조급해 하지 마시고 길을 넓게 보셔서 (인생2막을) 풍성하게 꾸며가셨으면 한다."

스포티비뉴스=화성, 박대현 기자 / 임창만 김동현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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