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환 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잘 쉰다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제주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 놓은 조성환 전 감독은 웃으면서 자신의 안부를 전하면서 씁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제주는 지난 주말 수원 삼성과 치른 하나원큐 K리그1 2019 37라운드에 2-4로 패하며 최하위로 2부리그 강등이 확정됐다. 37경기에서 제주는 5승 12무 20패를 기록하며 승점 27점을 버는 데 그쳤다.

조성환 전 감독은 37경기 중 3,4월에 열린 9경기를 지휘했다. 4무 5패로 시즌 첫 승을 신고하지 못한 채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조성환 감독은, 경기를 보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실시간으로 챙겨봤다고 말했다. 

"중간 중간 봤죠. 저도 2-1 상황까지도 보고 했었는데. 인천도, 경남도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제주도 2-1로 리드했으니까… 내심 이기길 바랐는데. 그 이후에 실점하고 지는 것을…"

말을 잘 잇지 못하던 조성환 감독은 제주 강등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이었다. "다이렉트 강등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제가 죄송스럽고 미안할 뿐입니다. 팬 여러분께, 구단에 다 죄송할 따름이죠."

◆ 제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물러났던 조성환, "축구인 모두에게 안타까울 일"

조성환 감독은 기업 구단 제주의 강등이 K리그와 한국 축구에 악재라고 우려했다. 곧바로 승격을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2부리그에 기업 구단이 많이 내려갔고,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다. 

"모든 축구인, K리그 팬 여러분 모두 안타까울 일입니다. 기업 구단인데. 한번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면, 부산을 예를 들어봐도 올라오기가 힘든데. 남아 계신 분들이 슬기롭게 잘 하셔서 내년에 K리그1로 올라오길 바랄 뿐입니다."

 2015시즌 제주 지휘봉을 잡은 조성환 감독은 첫 시즌 6위를 기록하며 상위 스플릿 진출에 성공했고, 2016시즌 3위, 2017시즌 준우승 등을 이루며 제주의 2000년대 최전성 시대를 열었다. 제주가 두 시즌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나선 것은 조성환 감독 시대가 유일하다.

2018시즌에는 상반기에 선두권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 내리막길을 걸으며 5위로 마쳤다. 조성환 감독은 풀시즌을 지휘한 기간 모두 파이널 라운드 상위 성적을 냈다. 2018시즌 후반기의 부진이 2019시즌 초반까지 이어졌고, 제주는 결국 최하위라는 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강등당했다. 

조성환 감독은 지난 5월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팀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제주의 희망이었다가, 절망이 된 상황은 견디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조성환 감독이 제주를 구하기 위해 내린 마지막 결단은 선수단을 자극하기 위한 '감독 사퇴'였다. 

"좋았던 시간들이야 잊혀지는 거고. 더 안좋은 부분이 부각되기에 그 시발점을 만들어 놓고 제가 나온 것 같아서 팬 여러분께 죄송하고 그렇죠. 왜냐면 저도 그런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은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어려운 결정을 했는데, 전환이 안 되고 그렇게 되어서 좀 그렇습니다."

제주는 조성환 감독이 물러난 직후 5월 4일 치른 경남FC와 홈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연패를 겪었고, 37라운드까지 3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5년 연속 상위 라운드에 진출했고, 2년 전 준우승을 차지했던 제주의 몰락은 급격했다. 

▲ 머리를 주황색으로 물들인 박경훈 전 감독과 조성환 전 감독(오른쪽)은 K리그 준우승을 이루며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조성환이 말하는 제주의 롤러코스터, 명문 팀이 되려면 꾸준함을 갖춰야 한다

2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을 병행해본 조성환 감독은, 준비되지 않은 팀의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제주의 실패를 복기했다. 2년 연속 K리그 준우승을 이뤘던 수원 삼성, 2018시즌 준우승 돌풍을 일으킨 경남FC의 올 시즌 추락 등의 사례가 제주가 겪은 추락의 배경과 교집합이 있다는 이야기다. 

"ACL 출전은 하나의 요인일 수 있습니다. ACL을 계속 나가지 못했던 경험의 측면이 있죠. 그게 다라고 생각은 안하지만요. 명문 팀이 되려면, ACL에 나가려면, 전력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전력에 기복이 없어야 해요. 나갔다, 못 나갔다 들쑥날쑥하지 않고, ACL 경험도 축적이 되어야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기에는 멤버가 좋았다 안 좋았다하기 보다, 안정을 갖춰야 좋은 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경남이 많은 선수를 영입했지만,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거든요. 조직력, 팀워크 면에서 장단점이 있거든요. 결코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강팀은 불꽃처럼 튀기보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불길이 되어야 한다. 부임 첫 3년 간 색깔과 결과를 만들었던 조성환 감독은, 첫 번째 큰 실패를 겪고 맞이한 지도자 경력의 첫 휴식기에 시행착오를 복기했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실력이니까"라며 조성환 감독은 잘 이끌던 제주가 무너진 과정에 자신의 실기가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되짚으며 지난 반 년의 시간을 보냈다.

"제가 좋았던 부분, 잘 됐던 부분과 안 됐던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죠. 다음에 기회가 오면 그런 부분 반복하지 않으려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고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죠.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조성환 감독은 지난 9월 브라질을 다녀왔다. 두 달 간 브라질 상파울루 지역에서 1부리그 최고 수준의 경기부터 대기 자원이 뛰는 주 리그 경기, 23세 이하 선수들이 열정을 뽐내는 연령별 토너먼트를 지켜보며 다양한 팀 운영법, 선수 육성법을 배웠다. 프로 1부리그의 몸값 높은 선수들 외에 저평가됐지만 어리고 재능있는 브라질 유망주가 누구인지 직접 파악하기도 했다. 

"저도 공백이 처음이거든요. 학교때부터 계속 앞만 보고 달려와가지고. 조금 쉬었고. 브라질을 잠깐 갔다오기도 하고. 같이 있던 피지컬 코치가 브라질에 있으니 겸사겸사 다녀왔죠. 배울 점도 많았고, 열기도 뜨거웠어요. 겨울에는 휴식기 위에 유럽에도 나가볼 생각도 하고 있어요. 계속 견문을 넓혀야죠."

▲ 축구 경력에 맞이한 첫 공백기에 자신을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 조성환 전 제주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 물러나니 보이는 것,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통과 매니지먼트

1993년 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해 2003년 전북 현대에서 은퇴한 조성환은 성인이 되고서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2003년 전북의 플레잉코치였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1군 코치,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전북 유소년 팀 영생고 감독을 맡았다. 2015년 제주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뒤 지난 5월까지 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조성환 감독에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변의 이야기를, 다른 팀들의 사정을 듣고 살필 시간도 생겼다. 어쩌면 조금 늦었다.

"계속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물러나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직간접적으로. 다른 팀 이야기도 들리고. 감독은 전략, 전술도 뛰어나야 하지만 선수들을 한 시즌 끌고가는 데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선수들도 그렇고 구단 소통도 그렇고. 초반에는 저도 그런 걸 더 신경썼는데. 간과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매 경기 치열하게 준비하고, 고뇌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모든 일을 짊어졌던 조성환 감독은 한 번 멈춰서고 나서야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가 지도자로 가진 덕목과 강점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떠올렸다. 조성환 감독은 한 번의 실패로 자신의 전체를 부정하는 연민에 빠지지는 않았다. K리그에서 결과를 냈던 조성환 감독은, 여전히 자신감을 갖고 있다. 

"제가 잘하는 부분을 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시즌을 치르면 좋은 상황도 안 좋은 상황도 있는데,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 끌고 갈 수 있는 매니지먼트. 그런 역할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술, 전략은 저 혼자만 할 부분이 아니고 코칭 스태프, 선수들과 맞춰나가는 게 기본이고요. 첫 번째 중요한 것은 하나 된 힘이고, 그 힘이 발휘되려면 세세하게 구단과 소통, 선수들과 소통, 전체적인 소통을 통해 콘트롤하며 잘하는 걸 살려야 할 거 같아요. 제가 그런 부분에서 초심을 잃지 않았나 생각도 했고요.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까 처음 마음 같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거 같고, 그런 부분은 반성도 했죠."

문제가 생기는 모든 팀은 소통의 문제를 갖고 있다. 팀이 어려울 때, 붕괴는 안에서 일어난다. 구단과 감독, 감독과 선수, 구단과 선수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경기에서 지는 것 이상의 문제가 생긴다. 2019시즌 제주가 겪은 문제도 선수단이 가진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경기장 밖의 문제가 크다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조성환 감독은 축구장 밖의 매니지먼트를 더 신경써야 한다는 자성과 더불어, 경기장 안의 디테일을 강화하기 위한 공부로 공백기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다시 실수를 반복한다면, 이제는 실력으로 평가 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게끔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하던 부분을 답습한다면 새로 맡을 팀도, 제 커리어도 못 쌓는다고 생각해요.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준비하고."

스리백으로 결과를 냈던 조성환 감독은 전술적 진화에 대해 철학은 선수 구성에 맞출 뿐이라며 어떤 전술에도 갇힐 생각이 없다고 했다. "팀마다 선수 구성이 다르니까, 그에 맞춰서 어느 팀이든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전술을 해야 하니까 백포든 백스리든 여러가지 준비해야죠." 

2019시즌이 막을 내리는 가운데, 조성환 감독도 몇몇 팀의 하마평에 올랐다. "직접 제안을 받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조성환 감독은 당장 복귀에 집착하기 보다 자신을 채우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물론, 현장이 그립다는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현장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죠. 저도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제 의지대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를 위해 잘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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