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정 팬과 기쁨을 나눈 FC서울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FC서울 사령탑 최용수 감독의 입담은 이미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됐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엔 해설자로 맹활약했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유쾌한 면모를 보여줬다. K리그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것은 최 감독 특유의 화술 덕분이다.

1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DGB대구은행파크에서 만난 최 감독의 표정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변했다. 한 경기에 걸린 것이 얼마나 많은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FC서울은 대구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19 39라운드 최종전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37라운드까지 서울이 승점 55점, 대구가 승점 54점을 따내고 있는 상황. 두 팀의 맞대결에서 대구가 서울을 꺾는다면 3위를 빼앗아올 수도 있었다. 

서울이 파이널라운드 돌입 뒤 1무 3패의 부진에 빠졌다. 중요한 고비마다 실수와 악재가 겹치면서 대구의 추격을 사실상 허용했다. 이 흐름을 모두 고려한다면 경기 전 최 감독이 "상대는 흐름이 좋고 우리는 승리가 없다.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긴장감까지 내비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경기 내용도 쉽지 않았다. DGB대구은행파크는 규모가 작은 데다가 피치와 거리가 가까워 홈 팬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전달되는 경기장이다. 최 감독은 "대구 홈 팬들이 열광적이지 않나. 그 기세를 무시할 수가 없다. 선수들이 잘 넘기고 준비했던 걸 하길 바란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여기에 세징야, 에드가, 김대원이란 확실한 공격 카드를 갖춘 대구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대구를 상대로 끝내 무실점 경기를 하며 무승부로 3위를 확정했다. 대구의 간절한 마음에 지지 않겠다는, 투쟁심이 있기에 가능한 경기였다. 세징야, 에드가, 김대원와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벌이면서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하게 견제하고, 협력 수비로 뛰어난 개인기를 제어하려고 했다. 대구가 윙백들의 공격 가담으로 서울 수비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할 땐, 이명주-알리바예프 두 미드필더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 이를 상쇄했다.

▲ ACL 티켓 확보에 성공한 서울 선수단이 기뻐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최 감독의 얼굴에선 드디어 웃음기가 보였다. 그는 "이번 주 저의 신경질을 선수들이 잘 받아줘서 미안하다"면서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내비쳤다.

시즌 초반 선두권에서 경쟁을 펼쳤다. 여름을 지나면서 페이스가 떨어졌다. 주세종-이명주의 복귀로 탄력을 받는 듯했지만, 이내 파이널라운드에서 고전하다가 겨우 3위를 확정했다. 말 그대로 천신만고 끝에 ACL 티켓을 손에 넣었다. 

최 감독은 "미생들을 데리고 힘겨운 레이스를 한 것 같다. 시즌 초반 좋은 출발을 했지만 중반에 저 스스로도 부족한 점을 많이 드러냈던 것 같다"며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쉽다. 시즌 초반 넘치는 자신감으로 오버페이스를 했다. 경기 수가 늘어날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백업 선수들이 눈에는 차지 않았다"면서 쉽지 않았던 시즌을 돌아봤다.

고난 속에 따낸 ACL 티켓은 서울에 특별한 의미를 준다. 바로 '명예회복'이다. 서울은 2010년대 가장 빛나는 성과를 냈던 팀 가운데 하나다. 2010시즌, 2012시즌, 2016시즌 K리그 챔피언을 차지했다. ACL에서도 2013년 준우승, 2014년과 2016년 4강 등 성과를 올린 팀이다. 하지만 2017년 출전을 마지막으로, 2017년 리그 5위, 2018년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부진 속에 ACL은 출전도 하지 못했다.

주세종 역시 "감독님이 항상 실수를 반복하면 프로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실수를 또 해봤고 올해는 반전을 이뤘기 때문에, 리그와 ACL에서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면 좋겠다"며 어려웠던 시기를 도약의 원동력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최 감독도 "명예 회복이 머리에 가장 크게 자리잡았다. 선수들도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은 도약의 시기로 삼고 싶다"며 강조했다.

예전처럼 선수들의 이름값만으로 상대를 긴장하게 하는 팀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전하는 팀, 더 많이 뛰고 강하게 맞서는 팀, 패기 넘치는 팀이 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올 시즌 들어오기 전에 선수 구성에 시야를 넓혔다. 기회를 주고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력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됐다. 내년이 상당히 기대가 된다. 본인의 준비 상태에 따라서 충분히 ACL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린 선수들에게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맺힌 한이 있어서 ACL에서 방점을 찍고 싶다"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덧붙였다.

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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