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전 패배로 우승을 놓친 울산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홍은동, 한준 기자] "울컥 울컥해요." (박주호)

검은 정장을 입고 나타난 울산 현대 선수들의 표정은 한해 K리그 잔칫집인 K리그 대상과 괴리가 있었다. 시상식 전 사전 인터뷰에는 유력한 MVP 후보 김보경에게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김보경은 "MVP를 욕심낸 이유는 우승컵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어제(1일) 경기로 MVP에 대한 미련은 없어졌다. 받는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화가 날 것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베스트11 후보에 올라 시상식에 참석한 김인성, 박주호, 강민수 등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시상식에 왔다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시상식 전 사전 인터뷰장에서 만난 김인성은 "의욕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이 안 왔어요. 아쉬워서. 지금도 의욕이 없어요. 되게 아쉬워요. 1년동안 준비한 게 그날 마지막 결과로 제대로 안 되니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인성)

김인성은 포항 스틸러스에 1-4로 패하며 선두에서 내려온 그 경기에 안 풀린 점을 여러 각도로 되짚었다. 요약하자면 "준비가 부족했고, 운도 많이 안 따랐다." 김인성은 결국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것을 끝내 우승에 실패한 결정적 요인이라 말했다.

"골을 먹고 흔들리다 보니 급해지고, 부담이 커진 것 같아요.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꼬인 것 같아요. 원래 하던 플레이가 마음대로 안 됐어요. 볼을 많이 받지도 못했고, 활로를 뚫어줘야 하는데 저도 많이 막혔고."

아직도 울컥한다는 박주호는 "잔인하다"며 1일의 비극을 돌아봤다. 평소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스마일맨'이지만 "드라마는 만들어 줬는데, 우리는 아프다"며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그 앞의 경기를 돌아보기보다, 그 경기를 잡았다면. 제일 가까운 그 경기를 이기면 끝나는 거였으니까."

손안에 들어온 우승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기분은 무력하고 참담하다. 박주호는 그날 경기에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며 경기력 부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경기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냉철하게 복기했다.

▲ 시상식 현장에서 만난 김인성 ⓒ한준 기자


"포항 선수들이 준비를 잘 하고 왔어요. 심플하게 롱볼하고. 우리가 미드필드 압박을 못하고 롱볼을 뒤에 놓고, 경쟁하고. 양쪽에서 카운터도 몇 경기째 잘했죠. 뒤에 6명이 잘 받치고, 위에 4명이 유기적으로 공격을 잘 풀었어요. 우리는 체력소모가 있었고…."

울산은 포항전에 주전 미드필더 믹스와 김태환이 경고 누적으로 빠지면서 시즌 내내 꾸준히 뛰지 못했던 박주호를 중원에, 정동호를 라이트백에 출전시켰다. 이동경, 이상헌이 연이어 다쳐 22세 이하 선수로 박정인이 나서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오랜만에 나온 선수들이, 큰 경기를 치르며 어려움을 겪은 면이 있었다. 결국 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감각도 그렇지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뛰면서 힘들다는 느낌이 있었고, 6개월 만에 뛴 선수도 있었어요. 비도 많이 오니 체력 소모가 더 많았죠. 한 선수, 한 선수의 문제가 아니라 팀으로 진 것이죠."

독일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클럽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울산으로 이적해온 박주호 본인도 올 시즌 자신의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박주호는 "올해는 작년 부상 후유증이 초반부터 이어진 게 사실"이라며 정상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며 아쉬웠다. 

"연속해서 경기를 출장하기보다 한 경기 뛰고 쉬는 상황이 많았고, 예전만큼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큰 부상 없이 온전한 몸으로 버텼으니, 내년에 동계 훈련을 잘 준비해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어요." (박주호)

2013년 12월 1일의 포항전 패배를 경험한 선수 중 한 명인 강민수는 이번 포항전은 뛰지 않았다. 6년 전 만큼 아픈 패배를 그라운드에서 겪은 선수는 골키퍼 김승규. 강민수는 결정적 실책으로 실점한 김승규에 대해 "승규가 간절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게 나왔다고 생각하고. 전혀 문제 될 게 없고. 축구를 하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다독였다. 그러면서 징크스나 트라우마는 이번 패배와 연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 부담감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때 남은 선수가 저와 승규 둘 뿐이었고. 선수들은 특별히 그런 것에 대해 부담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어제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이죠. 공교롭게도 상황이 그렇게 됐을 뿐이에요. 많이 아쉽지만."

강민수는 자신이 뛰지 못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다음 시즌 다시 울산이 우승하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는 당부로 말을 이었다.

▲ 울산 수비수 강민수 ⓒ한준 기자


"다들 얘기하는 것처럼 투자한 만큼 성적이 나는 것 같아요. 작년에도 투자했고 올해도 투자해서, 우승했으면 좋았겠지만. 전북 독주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가면서, K리그가 많은 관심을 끌었어요. 우승해서 선순환 투자가 이뤄졌으면 좋았겠지만, 비록 실패했지만, 투자가 이뤄진다면 내년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민수)

충격적인 패배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울산 선수단은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지 않는다. 김인성은 주장 이근호가 1일 패배 이후 했던 말을 전했다.

"우리 울산, 올해 잘했다. 열심히 하고 잘했는데, 아쉬울 뿐이다. 털어내자." (이근호)

김인성은 올 시즌 전체를 돌아보며 "이길 뻔했는데 비긴 경기도 있었고, 우승을 원하는 팀에 있으려면 이것보다 더 포인트를 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발전에 대한 의지를 말했다. "개인적으로 저도 많이 성장했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발전하기 위해 스스로 더 연구해야죠"라며 의지를 보였다.

MVP를 수상한 김보경은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고 최종전 회견에서 말한 김도훈 울산 감독의 말을 받아, 울산은 이 2등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그럴 수 있지만, 울산이 2등한 것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울산 선수들, 스태프, 팬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우승컵을 얻지 못한 것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올해 얻은 것으로 내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김보경)

울산은 쓰린 패배에서 도망치지 않고 시상식에 참석해 취재진과 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울산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12월 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하나원큐 2019 K리그 대상 현장에서 출사표를 던지고 갔다.

스포티비뉴스=홍은동,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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