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활에 매진하는 김지현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영플레이어상은 눈여겨볼 신인들의 등용문이다. 2013년 고무열(전북 현대, 수상 시 포항 스틸러스)을 시작으로, 2014년 김승대(전북, 수상 시 포항), 2015년 이재성(홀슈타인 킬, 수상 시 전북), 2016년 안현범(제주 유나이티드), 2017년 김민재(베이징 궈안, 수상 시 전북), 2018년 한승규(전북, 수상 시 울산 현대)까지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영플레이어상의 주인공이었다.

2019시즌 영플레이어상의 주인공은 "난 무명의 선수"였다고 자평하는 강원FC의 김지현이다. 연령별 대표 경력도 없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지방 대학교에서 뛰었다. 김지현은 2019시즌 한 시즌 동안 27경기에 출전해 10골과 1도움을 올렸다. 프로 2년차에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됐고, 영플레이어상까지 품에 안았다. 무릎 연골을 다쳐 조금 일찍 시즌을 마쳤으나 그의 활약은 '신데렐라'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지현을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수줍지만 천천히 '묵묵히 쌓은 하루'가 있었기에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잘 지내고 있다. 러닝도 하고 있고 다음 시즌까진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동계 훈련도 할 수 있다"며 웃는 김지현은 '축구밖에 모르는' 24살 평범한 청년이었다.  

◆ 무명의 대학 선수가 프로에 오기까지

"참, 신기한 한해에요. 사실 지금도 신기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렵고 힘들었어요. 작년도 그랬지만 올해는 더 좋은 날이 많았네요. 제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 뭔가 이뤄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대학에서 고생할 땐 영플레이어상 같은 건) 상상도 잘 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 있을 때 제 또래 선수들, 프로에 가서 잘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조금만 기다려라'하는, 그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김지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던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다. 꿈마저 꾸지 못했던 이유는 그의 쉽지 않은 프로 입성 과정 때문이다. 고교 시절 김지현은 서울 혹은 수도권의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치면서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았다. 인제대학교에서 2년을 보낸 뒤엔 한라대학교로 편입하는 흔치 않은 길을 걸었다.

"말 그대로 무명이었죠. 진짜 맨 밑에서 힘들게 축구를 해왔어요. (고등학교 땐) 수도권 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웠죠.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치기도 했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결과적으론 원하는 대학교를 가지 못한 거니까요. 대학교 2학년 때까진 정말 힘들었어요. 보통은 수도권(학교)으로 가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야 프로에 진출하기가 더 좋으니까. 편입을 하면서도 더 좋은 학교, 수도권 학교를 가고 싶었어요. 그게 어려워서 한라대학교를 가게 됐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어요. 감독님도 좋으시고 친구들도 괜찮았고요. 내가 이루고 싶은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 만에 프로에도 오게 됐으니 진짜 잘한 선택이 됐죠."

다소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김지현은 치열하게 고민했고 또 성실하게 운동했다. 하루에 개인 훈련을 더해 3번씩 훈련을 했지만, 그는 운동보다 중요한 것은 간절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훈련량 자체는 열정이 표현되는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재능으로 보자면 타고난 건 하나 없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나을 게 없죠.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게 더 많은 노력파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렇진 않은데, 프로에 가기 전에는 소위 말하는 새벽 운동을 매일 했어요. 오전에 수업이 없으면 오전 운동하고, 오후에 팀 훈련하고, 저녁에도 간단하게 저녁 훈련을 했고요. 그게 일상이었어요. 기본 (하루에) 3번은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훈련이 그렇게 중요하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축구에 대해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프로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축구에 대한 연구나 생각이나. 정신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것들. 그렇게 하다 보니 후배들도 저를 자연스럽게 따라하기도 했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산 결과인 것 같아요."

돌아보니 짧은 소회지만 대학에서 보낸 3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 같지 않았을까. 김지현이 분명한 목표 의식과 축구에 대한 열정 덕분에 간절하게 노력할 수 있었다.

“우선 가족의 영향력이 컸고요. 그리고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고, 더 성공하고 싶었어요. 프로에 오고 싶었고, 꿈을 꾸던 프로에 왔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축구 선수로서 A대표도 되고 싶기도 하고요. 그 과정들이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고, 즐겁고 재미있어요. 축구가 좋아요. 현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축구는 (그 과정보다) 더 좋아요. 앞으로 더 이뤄야 할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2019시즌 영플레이어 김지현 ⓒ연합뉴스

◆ 강원에서 프로 선수로 자라다

김지현은 2018년 강원에 입단하면서 프로 진출의 꿈을 이뤘다. R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지만, 오히려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한 뒤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어려움은 힘과 속도의 차이다. K리그의 전체적인 경기 템포가 빠른 데다가, 성장이 완벽하지 않았던 대학 축구와 달리 억센 ‘성인’의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지현도 당연히 자신의 무기를 고민했다.

“지금도 적응하고 있어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개인적으론 프로 무대를 높게 평가했거든요. 형들한테 속도나, 체력이나 많이 밀렸어요. 이길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해야 하나. 경기를 초반에 못 뛰었는데 그 기간에 준비를 잘했어요. 힘이 가장 부족했던 것 같아요. 덩치 큰 형들과 상대해야 했으니까. 힘으로 부딪혀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 힘을 이길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기술을 보여서 기회를 잡아야겠다. 저는 기술이 좋아야 힘이 센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각자 무기가 있으니까.”

김병수 감독을 만난 것 역시 행운이다. 김지현은 김 감독이 영남대를 지도할 시절 직접 상대로 맞서봤다. 그는 당시 기억을 "부끄럽다"고 표현했다. 영남대의 세밀한 플레이를 보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지현은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었다"던 소원을 강원에서 풀게 됐다. 김 감독의 세밀한 지도 아래 '기본'을 다시 닦으며 실력을 키웠다.

"감독님은 큰 틀 안에서 임무를 주고 그걸 하라고 지시하세요. 드리블을 좋아하더라도 공간으로 빠져야 한다고 하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업 비밀이긴 한데 제 장점은 그래도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수비 뒤를 잘 파고 드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움직임이고 장점이기도 하고, 감독님이 원하시는 움직임이기도 하고요. 운동장에서 자기가 잘하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요." 

김지현이 10골 1도움이란 빼어난 성적이 "팀이 도와준 덕분인 것 같다. 득점 장면을 보면 그렇다"며 공을 동료들에게 돌린다. 자신의 장점인 수비 뒤 공간 침투, 문전 쇄도 등을 자주 하려면 팀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공격적인 패스를 자주 시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득점한 뒤 '소소하게' 기뻐하는 김지현 ⓒ한국프로축구연맹

◆ 축구 인생의 목표: A대표, 더 좋은 선수, 후배들의 귀감

꿈꾸던 프로 선수가 됐다. 다음 목표는 A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이다. 높은 꿈을 꾸지만 동시에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있다. 이제 다음 목표를 이루려면 부단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

"지금 가진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대표팀에 있는 황의조, 김신욱 같은 선수와 비교한다면 부족하죠. 아직 프로 2년차이고, 볼 관리에서 많이 약하다고 감독님이 많이 말씀해주세요. 그걸 보완하고 싶어요. 페널티박스 안에서 조금 더 공격적으로 볼을 잡아놓고 슈팅 때리는 것, 움직여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만드는 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극대화해야 할 것 같아요."

김지현이 K리그 최강으로 꼽는 전북 현대전은 그래서 시험장'과 같다. 자신을 확인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K리그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 직접 붙어보며 무엇이 부족한지 발견한다.

"(전북전에서) 제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아요. 제가 부족하다는 것도 느끼게 돼요. 개인적으로 대표 선수가 되는 게 목표인데, 그 (대표) 선수들하고 직접 붙어보는 거잖아요. 김진수, 이용, 홍정호 같은 선수들까지. 울산 현대도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그 선수들을 상대로 잘해야 제가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축구 선수로 그리는 이상형이 있을까. 김지현은 "아직은 한창 뛸 때"라며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웃었다. 하지만 더 오랫동안 프로 선수로 활약하며 더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현의 곁엔 그의 '이상형'들이 많다. 정조국, 오범석, 한국영, 신광훈처럼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선배들이 살아 있는 교과서다. 축구 선수로 더 발전하기 위해, 그리고 더 오랫동안 뛰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경기를 뛰다 보니까 몸도 지치고 잔부상, 큰 부상까지 왔어요. 형들은 몸 관리를 정말 잘해요. 운동을 많이 하는데, 특히 보강 운동을 많이 해요. 처음엔 잘 몰랐죠. 그냥 자기 몸이 더 좋아지려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안 다치기 위해서, 더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장에 나가려고 하는 거란 걸 깨달았어요. 특히 (한)국영이 형을 보면서, 아 진짜. 이렇게 열심히 뛸 수 있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이 형은 인생이 그냥 축구구나. 모든 삶이 축구로 돌아가는구나라는 게 보여요. 당연히 (모범이 되는 형들을 보면) 앞으로도 많이 도움이 될거에요."

김지현은 인터뷰를 하면서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도 새삼 표현했다. 김지현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에서 K리그 최고의 유망주가 됐다. 그 자체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도전의 사례가 아닐까. 김지현은 하루하루 쌓여 꿈에 다가선 자신의 삶이 훗날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죠. 대학에도 간절한 선수들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조언을 하자면) 자기 계발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팀에 있건, 어떤 선수이건 자기를 발전시키는 걸 멈추는 사람은 앞으로 갈 수가 없어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기본적인 이야기고요. 자기를 계속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어요. 부족한 점을 계속 생각하고, 이상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또 내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자기 스스로 방법론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 지난 7월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경기에서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지현(왼쪽)

◆ 김지현에게 팬 그리고 강원이란?

24살인 김지현의 머릿속엔 온통 축구뿐인 것 같았다. 평소 시간이 날 땐 강원 경기는 물론이고 유럽 축구도 챙겨본다. 눈여겨보는 선수는 자신이 보고 배울 점이 많은 루이스 수아레스(FC바르셀로나)다. 수비 라인을 깨뜨리고 침투하는 걸 보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한다. 하지만 프로 선수로 살아가기 위해 또 하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바로 '팬'이다. 그래서 김지현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한다.

"팬들이 계셔서 뛸 수 있어요. 팬들이 없으면 즐거움이 반도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죠. 사실 골을 넣어도 제가 밖으로 표현을 하진 못하는데 속으로 엄청 기뻐하고 있어요. (강원 팬들이) 되게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이) 외진 곳에 있어도 보러 와주시는 팬들이 있다는 게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더 즐거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항상 골로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다쳤지만 내년엔 성장했다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저희 팬들은 열정이 뜨겁잖아요. 강원 지역에서 축구 문화가 더 발전되면 좋겠고, 저희가 잘해서 팬들도 더 와주시면 강원이 더 명문 구단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까지 '관중' 앞에서 경기를 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환호하는 팬들을 위해 뛰는 것은 행복이다. 무명의 선수를 프로 선수로, 그리고 영플레이어로 만들어준 강원은 김지현에게 "어딜 가더라도 생각 날 첫 팀"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그는 경기장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친절하다. 경기를 뛰지 않는 날엔 지나는 팬들의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에 기꺼이 응한다.

"아아, 귀찮아하면 안 되죠. 경기장 안에선 사실 많이 알아봐주세요. 근데 경기장 밖에선 많이 못 알아보셔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경기장 밖에서 알아보셔도 전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을 누가 겪어 보겠어요. 저는 감사하게 (사인이든, 사진 촬영이든) 해드릴 것 같아요. 수백 명이 몰려와도 얼마든지 해드릴 생각이에요."

프로 선수가 되면 포기해야 할 것이 적잖다. 24살, 대학생으로서 평범한 삶을 즐길 수도 있는 나이. 김지현은 기꺼이 프로 축구 선수로 살기를 원한다.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미래에 더 큰 기대감을 느끼는 이유다.

“(축구 선수는) 감사하면서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평범한 대학생과 비교해) 포기하는 게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걸 누릴 수도 있고요. 당연히 놀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좋아서 축구를 하는 거니까요. 항상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첫 느낌, 초심을 생각하려고 해요. 왜 축구를 하는지 고민하고 다짐하고 생각해요.”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