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유서준은 캔버라 캠프를 의욕적으로 임하며 코칭스태프의 호평을 받았다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야구 선수가 한동안 야구 생각을 별로 안 했다. 특이한 경우지만, 때로는 그런 시기도 필요하다. 유서준(24·SK)에게는 비워낼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유서준은 2017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일과 시간 이후에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계획은 짜기 나름이었다.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시간을 쪼개는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유서준은 되레 야구와 조금 떨어졌다. 새로운 일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야구를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고 싶었다. 유서준은 “야구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기였다”고 떠올렸다. 

2014년 SK의 2차 2라운드(전체 18순위) 지명을 받은 유서준은 팀의 차기 유격수로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 지명 순위에서 아마추어 당시 실적을 엿볼 수 있었다. 퓨처스팀(2군) 성적도 비교적 뛰어났다. 특히 타격이 그랬다. 퓨처스리그 성적이기는 하지만 2015년 OPS(출루율+장타율)는 0.901, 입대 전인 2017년은 1.284에 이르렀다. 그러나 좀처럼 1군 정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1군 25경기, 19타수에서 친 안타는 딱 1개였다. 

큰 기대감으로 시작한 프로 생활은 뚜렷한 성과 없이 어느덧 4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공익근무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야구인생을 되돌아본 이유다. 유서준은 “야구장에서 조금 떨어져 야구를 되돌아봤다. 놓쳤던 부분이 보이더라. 만날 야구를 하던 사람이 다른 일을 하면서 야구에 대해 많이 깨달았다”면서 “오히려 상무나 경찰야구단을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10년 넘게 야구를 하면서 공익근무 기간이 가장 소중했다”고 강조했다.

잠시 쉬며 생각을 비워냈다. 이제는 그 비워진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때 다시 움직였다. 대략 6개월 정도가 지나간 뒤였다. 유서준은 “일부러 주소지를 강화도로 옮겼다. 조금이라도 강화도 야구장(SK퓨처스파크) 환경과 가까이 있고 싶었다. 훈련이 아닌 이야기만 하고 오더라도 꾸준히 나갔다”면서 “6개월 정도 지나 고나서 웨이트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서준은 탓을 하지 않았다. 잡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아주 명확했다. 자신이 부족해서 1군에 못간 것이었다. 유서준은 “냉정하게 말하면 솔직히 기량에 안 돼 1군에 가지 못한 것이다”고 잘라 말하면서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경험이라 좋게 생각하고 있다. 1군 기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올라가도 봤고, 내려가도 봤다. 후회만 하면 너무 아래만 쳐다보는 법”이라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철저한 계획 속에 움직인 유서준은 공익근무가 끝날 때쯤에는 후회 대신 의욕으로 무장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준비가 잘 된 덕에 바로 퓨처스리그 경기에도 나갈 수 있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실전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 11경기에서 타율 0.294, 2도루를 기록했다. “2군에 뛴 뒤, 몸을 잘 만들어 마무리캠프에 가자”는 계획은, 지금까지는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서준은 SK 호주 캔버라 유망주캠프에서 ‘가장 성장한 선수’ 중 하나로 뽑혔다.

유서준은 “호주 캠프에서는 일단 내 것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슬럼프가 와도 확실한 내 것이 있으면 회복 시간이 덜 걸린다. 아직은 나만의 색깔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밑바닥서부터 하나씩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캔버라 캠프를 돌아보면서 “기술에 초점을 맞춰 훈련을 했다. 아직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좋아졌다는 생각에 만족하고 있다. 이제는 잘 진행된 것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입대 전에는 1군 진입만 보고 달렸다. 어투에는 항상 자신감과 패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차분해졌다. 유서준은 “옛날 같았으면 1군 주전이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하나하나 내 것을 만들자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나만의 목표가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지도, 들뜨지도 않을 것 같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유서준은 비워낸 것 이상으로 채운 선수가 돼 돌아왔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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