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표팀의 저승사자, 피지컬 전문가 레이몬드 베르하이엔 단독 인터뷰①
| “체력은 의견이 아니라 팩트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21세기 들어 한국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2006년 독일 월드컵 첫 원정 승리,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의 성공을 이루는 데 빠지지 않고 기여한 인물이 있다. ‘공포의 삑삑이’로 대표된 ‘파워 프로그램’으로 한국 대표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한 레이몬드 베르하이엔(48) 피지컬 코치다.
레이몬드는 한국 대표팀과 꾸준히 일했지만, 그보다 네덜란드 축구계와 먼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10대의 나이에 부상을 입어 프로 선수 경력이 없었지만, 19세부터 지도자에 접어든 레이몬드는 축구 선수들의 체력 향상 방법론 연구에 몰두했다. 20대 초반 집필한 저서 ‘컨디션 포 트레이닝’이 1997년대 네덜란드축구협회의 교육 교재로 채택되며 1998년 네덜란드축구협회 지도자 강사로 선임됐다. 그때 레이몬드의 강의를 듣고 지도자가 된 인물이 마르코 판 바스턴, 프랑크 레이카르트, 뤼트 훌리트 등 당시 현역 생활의 황혼기에 있던 이들이다.
네덜란드 축구는 꾸준히 세계적으로 우수한 지도자들을 배출했고, 요한 크루이프와 루이스 판 할을 필두로 세계 축구 전반에 영향을 미친 전술 발전을 이끌었다. 거저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당시 네덜란드축구협회가 런칭한 네덜란드 풋볼 아카데미에 토탈 풋볼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뉘스 미헐스와 크루이프, 판할, 히딩크 등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며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레이몬드는 네덜란드 축구 협회 (KNVB)에서 피지컬 파트를 담당한 연구원으로 일하며 네덜란드 풋볼 아카데미의 강사로 일했다.
레이몬드가 국제 레벨의 축구 스태프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대동하면서다. 이후 유로2000 대회에 네덜란드를 지휘한 레이카르트 감독도 레이몬드를 스태프로 합류시켰다. 레이카르트가 물러난 뒤에는 판할 감독도 레이몬드를 네덜란드 대표팀 스태프로 잔류시켰다. 네덜란드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히딩크 감독을 따라 한국 대표팀 스태프로 합류하며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레이몬드는 한국 대표팀이 치른 세 번의 월드컵을 함께 했는데, 지난 10년 사이에는 웨일스 대표팀 피지컬 코치,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밖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멕시코 대표팀의 전술 컨설턴트, 페예노르트 유소년 코디네이터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선수들의 부상 방지 및 체력 관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레이몬드는 크레이그 벨라미와 아리언 로번의 개인 피지컬 트레이너로도 일했다.
네덜란드 내로 국한되었던 네덜란드 풋볼 아카데미를 월드 풋볼 아카데미(WFA)로 확장해 운영하기 시작한 레이몬드는 최저의 축구 훈련 프로그램 방법론으로 축구 주기화를 개발해 전 세계 각국,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아약스, 벤피카 등 유럽의 유력 명문 클럽을 돌며 세미나를 열고 협력 작업을 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축구 무대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이 협업하고, 강사로 참여하며 현대 축구의 최신 지식을 이론화하고 있다.
WFA는 최근 영역을 넓혀 남미, 미국, 뉴질랜드와 일본 등을 돌며 유럽 축구의 최신 지식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다. 레이몬드는 오는 12월 10일에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월드 풋볼 아카데미의 축구 주기화 코칭 세미나를 연다. 축구 싱크탱크 ‘후에고’가 아직 축구 전술 및 훈련 방법론 연구 네트워크가 척박한 한국 축구계에 WFA를 초빙했다.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마포구 독막로 소재 문화공간 엘후에고에서 K리그 1,2부 클럽 22개 팀 코치와 피지컬 코치가 WFA의 축구 주기화 교육을 배울 예정이다. 이 세미나를 듣기 위해 인근 아시아 지역 코치들도 한국을 방문한다.
스포티비뉴스는 방한 전 레이몬드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현대 축구의 전술적 쟁점과 훈련 방법론을 물었다. 혹독한 체력 훈련으로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사실은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최소화하고, 최상의 몸 상태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체계적 훈련을 구성했던 레이몬드는 불필요한 많은 훈련과 선수의 정신력을 탓하는 ‘낡은 방식’을 벗어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레이몬드와 나눈 인터뷰를 2편에 걸쳐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파워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인사다. 당시 파워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지금도 유효한 방식인가?
“그렇다. 아직도 작동한다. 왜냐하면 축구는 여전히 같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축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도 적용해서 쓸 수 있다. 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을 교육하면서 파워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물론, 한국 선수들이다. 당신이 해결하길 원하는 어떤 문제에 대한 훈련 효과는, 선수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국 선수들이 굉장히 열심히 훈련했다는 점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이었고, 두 번째로 중요했던 것이 프로그램이다.”
-당시 파워프로그램은 장기 합숙이 요구되는 방법이었나? 단기 토너먼트에만 적용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짧은 대회를 준비한다면 그에 맞춰 짧은 기간에 맞춰 진행한다. 한 대회를 위해 훈련 효과로 결과를 내고 싶다면, 훈련량을 빠르게 늘리게 된다. 클럽에서 일한다면 서서히,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한 시즌 전체에 걸쳐 훈련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 숏텀, 롱텀 파워프로그램에 따라 적용법이 다르다. 서서히 할지, 빠르게 할지에 따라 훈련량을 조절할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함께 했던 유상철은 당시 어떤 선수였나? 최근 그의 소식을 들었나?
"유상철은 폴란드를 상대로 한 골로 2002년 월드컵, 우리의 특별했던 여정을 이끈 선수다. 그는 당시에도 대표팀 어린 선수들의 롤 모델이었다. 유상철의 골로 모두가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골이 너무나 감사한 이유다. 2002년에 그가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해줬다. 이제는 우리가 그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가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믿음을 갖게 도와야 한다. 파워 프로그램을 실시했을 때, 그는 가장 강한 선수였다. 그가 다시금 강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당신에 대해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체력 코치로만 알려져 있는데, 축구계에서 일하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지향점을 갖고 일해왔나?
“난 피트니스에 책임이 있었다. 자동적으로 사람들은 나를 피트니스 코치로만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해온 작업들은, 피트니스와 축구를 분리해서 진행한 것이 아니다. 피트니스가 축구의 일부였던 것이다. 우리는 파워 프로그램은 4대4 스몰 게임, 7대7 미들 게임, 11대11 빅 게임을 통해 진행했다. 우리는 훈련 시간을 높이거나 휴식 시간을 줄이는 형태로 피트니스를 축구 트레이닝 안에서 진행했다. 나는 피트니스 책임자였지만, 축구적으로도 책임이 있기에 축구 코치로 보는 것이 맞다. 기본적으로 어시스턴트 풋볼 코치다. 피트니스에 전문성이 가진 축구 코치인 것이다. 피트니스 코치를 축구 코치와 분리해서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한국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핌 베어벡 감독이 최근 작고했다.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핌 베어벡이 떠난 것이 너무나 슬프다. 그는 나의 전술적 스승이었다. 한국에서의 훈련 캠프에서 그는 내게 몇 시간이고 최고 레벨의 축구에 대해 가르쳐 줬다. 내겐 아름다운 추억이다. 여전히 그 점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 그는 축구계의 진정한 신사였다."
■ "피트니스와 축구는 분리될 수 없다. 체력 코치와 축구 코치를 분리해선 안 된다."
■ "현대 축구가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것은 전술적 발전의 결과다."
■ "정신력은 체력의 영역이다. 정신력과 집중력은 지도자가 훈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 축구에 적용된 스포츠 과학이 선수들에게 더 많은 활동량과 체력,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현대 축구는 더 체력적인 경기가 된 것인가?
“알다시피 현대 축구는 더 많은 전술적 지식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팀은 좀 더 팀으로, 함께 경기하고 있다. 그 결과 팀은 더 콤팩트하게 뛴다. 그것이 의미하는 점은, 공간과 시간이 20년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더 높은 속도로 액션을 하고, 시간당 풋볼 액션도 늘었다. 그래서 오늘날은 20년 전보다 체력적 요구가 높아졌다. 그러나 축구에서 체력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은, 체력적인 면 그 자체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술적 발전의 논리적 결과다. 현대 축구가 체력을 요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전술적 발전에 따른 결과물이다.”
-체력을 높이기 위해선 훈련량을 늘리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훈련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상충하는 주장이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당신이 토론을 원한다면, 팩트를 봐야지 의견을 봐선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토론에서 팩트가 아니라 의견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영원히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팩트를 봐야 한다. 축구 선수를 발전시키고 싶다면, 그들의 액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선수들은 더 좁은 공간, 더 제한된 시간 안에 풋볼 액션을 해야 한다. 그 점을 발전시키고 싶어서, 훈련을 더 한다면, 다음 훈련 세션에는 이전 훈련보다 선수들이 더 피곤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이전 훈련 세션보다 더 피곤하다면, 두 번째 훈련을 시작할 때는 이미 100%보다 낮은 액션 스피드가 나오게 된다.”
“두 번째 세션을 시작할 때 이미 100%의 액션 스피드를 낼 수 없다면, 100% 이상의 액션 스피드를 발전시킬 수 없다. 99%, 98%로 훈련할 뿐이다. 너무 많은 훈련을 하면, 훈련 사이 회복 시간이 줄어들고, 선수들의 회복 시간이 줄어들면서 다음 훈련에 여전히 피곤하고, 액션 스피드가 떨어지고, 훈련 효과는 떨어지고 부상 위험은 커진다. 난 팩트만 전하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축구를 분석하고, 팩트에 집중해야 한다. 20년 전의 당신의 경험을 토대로 논쟁해선 안 된다.”
-많은 지도자들이 경기의 성패를 선수들의 정신력과 집중력에 둔다. 이러한 요소는 체력에서 오지 않나? 체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정신력과 집중력, 인지력을 높이는 데 어떤 영향이 있나? 그리고 어떻게 체력 발전은 정신력 발전으로 연결할 수 있나? 멘털리티는 개인의 몫인가 코칭 스태프가 만들 수 있나?
“이런 논의를 위해선 분명한 레퍼런스를 갖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멘털을 말하는데, 뇌 안의 프로세스를 말하는 것인가, 뇌 밖의 프로세스를 말하는 것인가? 결국, 몸 안, 뇌 안의 프로세스다. 이것은 브레인 피지컬이다. 뇌도 피지컬이다. 뇌 안의 프로세스도 피지컬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멘털 프로세스가 아니다. 사람들은 멘털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너무 거대한 영역이다. 그래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이 프로세스를 말할 때 브레인 프로세스, 뇌 안의 과정을 봐야 한다. 뇌도 피지컬이고, 그래서 이 역시 피지컬 훈련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만약 선수들이 지쳤다면, 예를 들어 4대4 훈련을 할 때, 질문할 점은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가다. 다음 액션을 생각하는지, 피로를 생각하는지. 강한 뇌를 가진 선수를 원한다면, 언제나 전환을 생각하고, 프레싱을 생각하는 선수기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점을 훈련할 수 있나? 훈련장 안에서? 아니면 밖에서? 어디서 훈련할 것인가? 결국 훈련장 안에서다. 프레싱은 프레싱을 하고 있을 때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싱을 위한 강한 뇌를 만들고 싶다면 경기장 안에서 축구 훈련 중에 전환할 때, 압박할 때 시켜야 한다. 축구 코치가 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축구 코치만 할 수 있다. 심리학자는 압박을 가르칠 수 없다. 그들은 트릭을 가르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적용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축구 코치가 해결해야 한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2)편에 이어집니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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