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Thank You 페스티벌'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염경엽 SK 감독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16년 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한 구단 감독은 넥센(현 키움)을 꼴찌 후보로 뽑았다. 모두가 5강 진출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넥센은 콕 지목해 뺐다. 당시 넥센 사령탑이었던 염경엽 SK 감독은 곧바로 “우리는 5강 안정권”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시선은 냉정했다.

당시 넥센은 모두가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팀이었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강정호가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고, 2016년 시즌을 앞두고는 리그 최고의 타자인 박병호도 태평양을 건넜다. 에이스 앤디 밴헤켄, 마무리 손승락, 팀의 핵심타자였던 유한준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행사해 타 팀 유니폼을 입었다. 불펜의 핵심이었던 조상우 한현희는 수술로 출전이 불가능했다. 역대급 전력 이탈이었다. '꼴찌 후보'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회고하는 염 감독이다. 우선 친분이 두터운 감독이 미디어데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발언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자신이 있었다. “전력 이탈이 심하기는 했지만, 똘똘 뭉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봤다”고 떠올린 염 감독은 “우리가 왜 5강에 못 가느냐”고 자존심이 상한 선수들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넥센은 77승66패1무(.538)를 기록하며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치는 괴력을 과시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임에는 분명했다. 염 감독은 “선수들과 프런트가 합심한 결과”라고 공을 돌렸지만, 대안을 마련하고 시뮬레이션한 염 감독의 철저한 준비가 주요 동력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주축 선수들의 공백을 대비해 틈틈이 준비를 해둔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당시를 경험한 한 코치는 “감독님께서 많은 고민을 하셨지만 자신감이 있으셨다. 코칭스태프 내에서 수없이 많은 회의를 하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만신창이가 된 마운드는 신재영과 김세현이 등장해 자기 몫을 해냈다. 이름값이 화려한 투수진은 아니었으나 각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힘을 냈다. 타선은 박병호 유한준의 공백에도 여전히 리그 평균 이상의 공격력을 과시했다. 팀 전력에 압도적인 맛은 없었지만, 기간을 수없이 쪼갠 염 감독의 노련한 시즌 운영 속에 차곡차곡 승수를 쌓았다. 

염 감독의 이름 앞에 2016년이 따라붙는 것은 2020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내년 SK도 전력 이탈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어서다. 에이스인 김광현은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앞두고 있다. 외국인 에이스 앙헬 산체스는 더 큰 무대를 꿈꾸며 SK의 재계약 제안을 고사했다. 강점이었던 마운드의 원투펀치가 사라졌다. 반대로 전력 보강 요소는 뚜렷하지 않다. FA 내야수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력이 희미해지는 양상이다.

염 감독도 현실적으로 FA를 잡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약해질 생각은 없다. 이제 2019년 공식 행사를 마무리한 염 감독은 2020년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SK가 약해졌다”, “3강에서 내려올 것이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놓고 경쟁해야 할 수도 있다”고 평가하지만, 2016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 염 감독은 내심 자신이 있어 보였다.

염 감독은 2019년의 실패가 자신의 탓이라고 말한다. 염 감독은 “선수들 누구도 핑계를 대지 않았고, 누구도 험담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면서 “가장 가까이서 선수들을 지켜본 나다. 선수 탓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모두 내 책임”이라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2020년을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호주 캔버라 캠프에서 수면 시간이 가장 적었던 이는 바로 염 감독이었다.

팬들에게도 약속했다. 염 감독은 8일 인천남동체육관에서 열린 ‘2019 Thank You 페스티벌’에 참가해 팬들 앞에 섰다. 4000여명의 팬들 앞에서 마무리 인사를 한 염 감독은 “시즌 말미에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다. 목표했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해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드러냈다. 염 감독은 “이런 아픔을 마음에 담고 지금부터 준비를 꼼꼼하게 하겠다. 최선을 다하고, 팬 여러분들에게 즐거운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객석에서는 잔잔한 박수가 나왔다. 한국시리즈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약속을 지켜 3강을 유지한다면 여론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능력을 과시하고 팀의 체질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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