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정은이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미혼모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박소현 기자] 어느새 피어난 동백꽃처럼 이정은도 올해 만개했다. 

지난달 종영한 KBS2 '동백꽃 필 무렵'에서 이정은은 동백(공효진)의 엄마 정숙으로 활약했다. 정숙은 어린 시절 굶주리는 딸을 보육원에 맡기고 떠났다가,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어 딸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의미심장하게 딸을 지켜보는 정숙의 모습에 연쇄살인마 '까불이'로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까불이에게서 딸을 지켜냈다.

JTBC '눈이 부시게'와 OCN의 '타인은 지옥이다'를 거쳐, 영화 '기생충'으로 2019년을 분주하게 보낸 이정은에게 '동백꽃 필 무렵'은 '화룡점정'이었다.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이 미혼모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점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처음 제안해준 차영훈 감독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미혼모 단체에서는 지난달 여의도 KBS를 찾아 '동백꽃 필 무렵' 제작진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미혼모인 동백을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모습을 그려냈고, 인식개선에 도움을 줬음을 강조했다.
▲ 배우 이정은은 KBS '동백꽃 필 무렵'에 관해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자세를 보여준다"라고 전했다 ⓒ한희재 기자

이정은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숙도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 딸을 버려놓고 이제 착한 척을 하느냐고 하더라"라며 "나도 그저 미혼모를 비롯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안됐지'라고만 말하던 사람이다"라며 '동백꽃 필 무렵'과 함께 자신의 인식도 달라졌음을 설명했다.

그는 "'동백꽃 필 무렵'은 모정보다도 '사람이 자신이 뿌린 씨앗에 대해 어떻게 책임지고 싶어 하느냐'에 관한 이야기"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다. 대개 내 자식은 예뻐해도, 남의 자식은 고려하지 않는다. 여러 측면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정은은 "나도 개발도상국처럼 성장하고 있다. 내 가족만 챙기는 게 아니라 남의 가족도 봐야 한다"라며 보다 넓은 시선으로 사회를 보듬게 되었음을 피력했다.

그는 "정숙의 사랑은 자신이 저지른 원죄에 대한 회복이다. 사회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음 세대에 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내가 불교 신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인과 결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다른 측면을 보고 시야가 넓어진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얼마 전 목포에 사는 미혼모 한 분이 열아홉 된 딸을 데리고 내 지인을 통해 찾아왔다. 자신이 미혼모였다고 당당하게 내게 이야기해 주더라.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더욱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뉴스에서 단편적으로 담은 짧은 이야기 너머 사람들의 삶을 더 생각하게 됐다. 
▲ 배우 이정은이 KBS '동백꽃 필 무렵' 정숙 역은 자신의 어머니가 보여준 연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혔다 ⓒ한희재 기자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는 처음에는 이정은에게도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단다. 이정은은 "가끔 배우가 많은 것을 알고 연기를 하는 것이 방해되는 순간도 있다. 나는 대본이 나오는 속도만큼만 갔다. 처음에는 치매가 주는 어이없는 모습을 증폭시키려고 했고, 이야기가 밝혀지면 다 축소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자유롭게 표현하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tvN '아는 와이프'에서 치매에 걸린 노모가 되어본 적이 있기에 처음에는 거절하기도 했었지만, 다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동백꽃 필 무렵'을 시작했다. 임 작가는 행여 이정은에게 부담이 될까봐 연락을 자제했지만,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그에게 고마워 문자 메시지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을 준비하며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정숙의 모습을 찾기도 했다. 이정은은 "엄마가 '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자신의 연기를 모티브로 삼았냐고 묻더라. 엄마가 다정다감하면서도 위급한 상황에선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복지관에 다니는 그의 어머니는 딸에게 주변 치매 환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언해줬다. 이정은은 그때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TV에선 보지 못한 새로운 연기를 봤다.

'동백꽃 필 무렵' 37, 38회는 이정은의 연기 내공이 돋보였다. 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려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기어코 울렸다.

이정은은 "그 정도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고, 내가 그만한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두려웠다. 거의 인생 다큐멘터리 아니었나"라며 "너무 드라마같이 풀면 연기를 못 하는 거로 보일 것 같더라. 과거와 현재의 나이 차가 나는데 이 모습을 믿어주겠나 싶었다. 믿게 만들고 싶어 최대한 담백하게 했다"라고 전했다. 임상춘 작가가 그려놓은 '큰 그림'은 뛰어났지만, 배우 입장에선 부담이 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는 "감정이 늘어지지 않도록 했는데, 편집을 보니 비교적 공감을 할 수 있게 됐더라. 내레이션도 대개 시간 관계상 찍으면서 바로 입히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편집이 모두 끝난 뒤 녹음했다. 차영훈 감독이 배려해줬고 덕분에 좋은 효과를 얻었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 배우 이정은은 '까불이'가 이규성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다고 전했다 ⓒ한희재 기자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엄마는 자식 해치러 온 놈은 금방 알아본다'는 대목이 이정은의 가슴에 박혔다. 7년 3개월 적금 언급도 좋아한다. 슬쩍 마지막 회에 나온 '당장 야금야금 부지런히 행복해야 한다'는 그 말을 꺼내니, "어떻게 그렇게 대사를 쓸까"라고 다시 감탄했다.

특히 '엄마는 자식 해치러 온 놈은 금방 알아본다'는 말은 결국 동백을 해치려는 까불이의 복선이 됐다. 이정은은 "흥식이를 볼 때마다 '너지? 네가 분명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흥식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잡히지 않았나. 그때 이상했다"라며 자신의 '촉'이 틀려 이상했었음을 고백했다.

이정은은 "대본이 자신의 분량 말고 공유가 되지 않다 보니 '내가 틀렸나?'라고도 생각했었다"라며 "나중에 흥식이가 까불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통쾌했다"라고 웃었다.

전작이 살인이 쏟아져 나오는 '타인은 지옥이다'였다. 이로 인해 '동백꽃 필 무렵' 방송 초반 까불이로 이정은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그는 "'동백꽃 필 무렵' 방송 후 반응을 보는데 '너무 무시무시하다'라고 하더라. 내 전작이 없다면 조금 더 착하게 보일 수 있었는데"라고 웃었다. 

이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뻔한 뒷이야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딸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기꾼 엄마로 보기도 했다. 모정에 관한 의심을 품게 하는 점이 재밌는 축이 됐고, 나쁘지 않은 영향이다 싶어 긍정적으로 봤다"라고 전했다.
▲ 배우 이정은이 전작 OCN '타인은 지옥이다'의 배역으로 인해, KBS '동백꽃 필 무렵'에서 자신이 보여준 모성애가 의심받게 된 점이 오히려 재밌었음을 전했다 ⓒ한희재 기자

이정은은 자신이 올해 맡은 배역은 모두 미묘하게 서로 관통하는 선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매 작품을 다르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본이 올 때 다르게 이미 쓰여 있다. 나는 그대로 그 길을 가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거라 제작진에게 고맙다. 시기적으로 겹치는 작품은 다른 측면을 부각하는 인물을 하려고 하지만, 하다 보면 내 안의 '원'이 형성되더라"라고 설명했다.

가령 '타인은 지옥이다' 복순이 가진 무한한 상대방을 향한 관심과 집중도 극악무도한 버전의 사랑 표현이라고 보는 식이다. 그는 "이동욱이 하자는 대로 그를 추종하고 살인하는 것도 왜곡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양아들로 키워내고, 부정적인 측면도 나타났지만, 일종의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면에서 중심을 잡고 보완해 다른 변주를 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정은의 차기작은 내년 상반기 방송되는 KBS 주말극이다. 이미 tvN '오 나의 귀신님', MBC '역도요정 김복주'를 함께 했던 양희승 작가와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눈부신 2019년을 보낸 그가 열 2020년 또한 기대를 모은다. 

스포티비뉴스=박소현 기자 sohyunpark@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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