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범(가운데 16번)의 득점을 축하하는 한국 선수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부산, 유현태 기자] "공격적, 조직적인 면은 단시간에 좋아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보경

한국은 11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이하 동아시안컵) 홍콩과 첫 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

홍콩은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80%도 넘는 점유율을 기록한 한국은 12개 슛을 시도해 7개를 골문 안쪽으로 보냈고 2골을 만들었다. 반면 홍콩이 시도한 슈팅은 단 한 번뿐이었다. 전반 26분 코너킥 상황에서 역습을 준 장면을 제외하면 한국은 경기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내용에선 한국이 만족하기 어려웠다. 홍콩의 수비적 운영에 고전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정당한 승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전반전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후반전에 좀 더 경기력이 좋아졌다. 득점 기회도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지배를 한 경기였지만, 득점 기회가 많이 없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벤투호 출범 이후 줄곧 제기된 '밀집 수비 공략'이란 과제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벤투호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동아시안컵은 벤투호의 출발선이 이전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밀집 수비는 어떤 팀이든 쉽지 않다.

"홍콩은 최대한 실점하지 않으려 했다. 실점 뒤에도 그런 전략을 취했다. 추가 득점이 중요했다. (경기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밀집 수비 대처 방안이 필요했다." - 벤투 감독

작정하고 나선 밀집 수비를 뚫는 것은 어떤 팀도 쉽지 않다. '두 줄 수비'가 등장하면서 약팀들이 강팀을 괴롭힐 수 있게 됐다. 공격이 골이란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야 하지만, 수비는 상대를 방해하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한국의 답답했던 공격의 이면엔, 단 1번만 슈팅을 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물러난 홍콩의 경기 운영이 있다. 4-1-4-1 포메이션으로 미드필더-수비가 두 줄로 섰다. 여기에 후앙양이 미드필더-수비 사이 공간마저 채웠다.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면서 한국 선수들을 쫓은 홍콩의 수비 조직력도 만만치 않았다. 홍콩은 선제 실점 이후에도 수비적인 전술을 유지했다. 한국이 결론적으로 2골을 넣었으나 오픈플레이에선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개인 기량을 앞세운 돌파도 협력 수비에 막혔다.

비단 한국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일례로 스페인도 지난 3월 유로2020 예선에서 몰타에 2-0으로 승리했다. 2019년 2월 랭킹을 기준으로 스페인은 FIFA 랭킹 9위였다. 반면 몰타의 FIFA 랭킹은 182위다. 지난달 스페인은 몰타와 리턴매치에서 7-0 대승을 거뒀다. 요지는 어떤 팀도 매번 대승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벤투 감독

◆ 손발을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최종 목표인 월드컵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보여주려면 확고한 스타일이 필요하다. 지난 11월 브라질과 평가전에서도 한국은 똑같은 색을 유지했다. 그래서 벤투 감독은 밀집 수비를 만났을 때도 '팀으로서' 세밀하게 풀어가길 원한다. 개인 기량에 의존하거나, 단순한 공격 전개는 세계적 수준에서 통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대표팀은 단기간 소집돼 경기를 치르고 해산한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공격적, 조직적인 면은 단시간에 좋아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비적인 것은 2,3일 만에도 좋아질 수 있다. 상대는 11명 가까이 수비에 가담했다. 그래서 저희도 어려웠다." - 김보경

홍콩전이 특히 어려웠던 이유도 바로 '시간'이다. 새로운 얼굴의 대거 합류로 벤투호는 사실상 새로운 팀이 됐다. 홍콩전에 나선 베스트11 가운데 문선민, 박주호는 2018년 11월 우즈베키스탄전, 김태환, 손준호, 김승대 등은 벤투호 출범 뒤 첫 출전 기회를 잡았다. 팀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새 얼굴이었다. 전반 초반에 딱히 압박이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몇 차례 패스미스가 나왔다. 각자 다른 팀에서 뛰다 모인 선수들이 하나로 모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홍콩은 팀으로 수비하는데, 한국은 개인으로 공격해야 했다.

전반보다 후반이 좋았던 것은 '실전에서 45분'이 준 효과다. 후반 5분 황인범의 슈팅, 후반 21분 나상호의 크로스 모두 세밀한 패스에서 나왔다. 후반 26분 나상호의 돌파 장면, 후반 27분 윤일록의 크로스 장면, 후반 35분 손준호에서 김보경으로 연결되는 장면도 모두 벤투호가 추구하는 '침투 패스와 움직임'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개인 돌파도 주변에서 적절한 움직임으로 수비를 분산할 때 더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다.

황인범은 "아무래도 전반전에 부족했던 것들을 하프타임, 경기 중에도 맞춰갈 수 있었다. 그래서 후반전에 조금 더 여유 있게 경기를 했다"며 "분명히 더 맞춰본다면 경기장에서 더 좋은 장면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경기,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선 더 좋은 찬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나타낸 이유다.

▲ 김보경(가운데)은 공격이 손발을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점검과 실험이 중요한 동아시안컵

애초에 이번 동아시안컵에 참가했던 한국의 목표를 되짚어야 한다. 벤투 감독은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기간이 아니라 시즌이 진행 중인 유럽 및 중동리그 선수들이 합류하지 못하지만 그동안 지켜보았던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기적으로 월드컵까지 나설 선수 풀을 넓히고, 또 그 안에 있는 선수들을 점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기존 선수들과 녹아들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즉 동아시안컵은 벤투 감독에게 부족했다고 지적됐던 '실험'을 하기에 최상의 무대다.

경기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필요하다. 하지만 홍콩전 내용이 부진했던 것과 별개로 벤투 감독이 확인한 것도 분명히 있었다. 소집 훈련만 했던 선수들을 직접 기용하며 장단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내년 3월부터 다시 월드컵 예선이란 '실전'을 앞두고 있다. 월드컵까지 가는 길은 길고 험난하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경기가 있다면 바로 동아시안컵이다.

스포티비뉴스=부산,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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