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부산, 한준 기자] 손흥민(27, 토트넘 홋스퍼)과 황의조(27, 보르도), 이재성(27, 홀슈타인 킬)이 없는 대표팀에선 황인범(23, 밴쿠버 화이트캡스)과 나상호(23, FC도쿄)가 주인공이었다.
벤투호에 꾸준히 차출되고 출전하면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황인범은 2019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3경기에서 홍콩전과 일본전 결승골을 비롯해 대회 내내 공격의 젖줄 역할을 하며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홍콩전에 쐐기골을 넣은 것은 물론 중국과 2차전, 일본과 3차전에서 화려한 공격 기술을 선보인 나상호는 공격 상황에서 지속적인 위협을 만들며 장점을 발휘했다.
◆ 달라진 황인범-나상호, 전보다 수비 부담이 적었던 대회
황인범과 나상호의 경기력이 이전 경기와 달랐던 이유는, 동아시안컵에 나선 대표팀의 선수 구성과 상대 전력에 따른 상성, 그에 따른 전술적 임무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전에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전술 기반은 어떤 선수를 소집했느냐와 관계 없이 유지된다. 주세종이 포백 앞에서 빌드업 미드필더로 기능하며 4-1-4-1 형태와 수비 시 일자형 4-4-2 형태가 혼용된다.
일본은 생소한 3-4-3 포메이션을 썼는데, 이는 이전에 대표팀에 소집된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로 구성된 이번 대표팀의 수비진이 소속팀에서 스리백에 익숙하기 때문에 시도했다. 일본은 스리백을 기반으로 후방 빌드업을 구사하며 경기했다.
한국은 이정협을 원톱으로 두고 2선에 나상호와 황인범, 김인성을 배치했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손준호와 주세종이 배치됐고, 좌우 풀백 김진수와 김태환이 윙어 영역까지 올라와 플레이했다.
이 구성에서 공격의 스포트라이트는 나상호와 황인범에게 집중됐다. 이정협이 문전에서 결정력보다 전방에서 활동력과 공중볼 쟁탈에 장점이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2선 선수에게 득점 기회가 찾아오는 공격 패턴이 주를 이뤘다.
◆ 황인범-나상호가 공격 중심이 된 구조적 이유
비단 일본전 뿐 아니라 대회 내내 그랬다. 김승대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이정협이 투입되고 황인범과 나상호의 공격력이 더 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정협이 전방에서 타깃맨으로 분전하면서 2선에서 공격하는 두 선수에게 공간이 생겼다.
일본전에 오른쪽 날개는 김인성이었다. 김인성은 커트인보다 측면 공격에 주력했다. 일본이 스리백을 세우고 좌우 윙백을 높여 공격하면서 윙백 뒤 공간이 공략 포인트가 됐다.
반대편은 김진수가 때로는 나상호보다도 높은 위치로 올라와 측면 공격을 했다.
김진수의 측면 공격과 돌파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은 전반전에 특히 빛났다. 전반 16분 김진수의 돌파에 이은 크로스가 일본 문전을 위협했고, 전반 28분 황인범의 선제골은 김진수가 하프스페이스를 직접 치고 들어가며 공간을 만든 뒤 내준 패스를 받아 슈팅해 나온 것이다.
오른쪽 측면에 배치된 김인성과 김태환은 중앙 지역으로 빈번하게 치고 들어온 왼쪽의 나상호와 김진수보다 직선적으로 움직였다. 좌우 풀백 모두 공격적으로 경기했지만 김진수가 김태환보다 높이 서서, 빈번하게 공격했는데, 이유는 중앙 미드필드 구성과 특성에 있었다.
◆ 결정력 보다 활동력, 2선을 빛나게 해준 이정협
손준호, 황인범, 주세종으로 구성된 중원 삼각형에서 황인범은 이번 대회 내내 처진 스트라이커 영역에서 직접 슈팅하고 키패스를 뿌리는 등 공격에 집중했다. 주세종은 전환 패스, 전진 패스 등 빌드업의 기점 역할을 했다.
손준호는 이 둘의 보호자 역할을 하며 수비 상황에 가장 부지런히 가담했다. 황인범의 뒤 자리에서 상대 역습에 대비했고, 주세종이 수비를 지원했다. 주세종은 김민재의 전진 수비를 통한 보호도 받았다.
왼쪽 영역에서 손준호가 안정적인 수비 보호막 역할을 하면서 김진수와 나상호, 황인범이 부담 없이 공격에 가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황인범이 왼쪽 측면에 치우쳐 공격을 펼쳤다. 김인성과 김태환이 자리한 오른쪽에서 콤비네이션 플레이가 많이 나오지 않고, 손준호가 잘 보지이 않았던 이유다.
황인범은 동아시안컵 이전 대표팀 소집에서 손준호의 자리에서 뛰었다. 중앙 지역 빌드업 기점 상황에 관여하면서 전진해서 2선 공격을 돕고, 중원 수비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체력이 떨어지고, 플레이의 정확성이 떨어졌다.
공격 전개의 중심 역할이 되지 못한 상황인데다 소속팀 밴쿠에서 장거리 이동이 많은 시즌을 치르며 몸상태도 좋지 않았다. 여러 부정적 요인이 겹쳐 부진했다.
동아시안컵에서는 자신의 공격적 강점이 돋보이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이동한 것은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시즌이 조기에 종료되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몸 상태를 회복하고 대표팀 경기에 임했다.
◆ 황인범은 한 칸 앞에서 자유를 누렸다
황인범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과정에도 공격적으로 전진 배치됐을 때 더 좋은 경기를 했다. 대전 시티즌에서 뛸 때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경기 전체를 설계하는 마에스트로로 기능했지만, 최고 수준의 경기에서는 수비 부담은 물론, 공격 재능이 풍부한 2선 자원이 많은 대표팀 안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경기를 하기 어려웠다.
황인범은 김진수가 사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일본 수비를 흔들고, 나상호까지 파괴적인 돌파로 일본 수비의 라인 사이를 벌려 놓자 더 편하게 경기할 수 있었다. 비단 일본전 뿐 아니라 홍콩전, 중국전도 이런 이유로 최고의 활약을 할 수 있었다.
나상호의 경우에도 이전 대표팀 소집 당시에는 2선까지 내려가 빌드업에 관여하는 손흥민, 전방에서 득점 과정에 집중하는 황의조와 함께 경기할 때 전방 압박에 대한 부담을 많이 가졌다.
동아시안컵에서는 상대 수비의 빌드업 밀도가 떨어졌던 것은 물론, 이러한 전방 수비의 체력 부담을 이정협이 담당하면서 공격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일본이 공격 시 좌우 윙백 하시오카와 엔도를 전진시켜 스리백으로 빌드업하자 한국은 윙백과 센터백 사이 공간을 직격하는 롱패스로 역공했다. 일본은 나상호와 김인성이 빛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경기했다. 측면 공격이 강한 한국의 강점이 더 빛나는 경기를 할 수 있었다.
◆ 보이지 않았던 손준호는 중원에서 궂은 일을 했다
선수의 개별적 활약은 단지 선수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팀 플레이 안에서 개인의 장점이 빛나는 것이다. 이정협은 동아시안컵 기간 득점에 실패했지만 전술적으로 최전방 공격수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준수하게 수행했다. 전북에서는 황인범과 같이 중원 공격의 키를 잡은 손준호가 이번에는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소금같은 역할을 했다.
손준호가 상대적으로 더 수비에 집중했던 이유는 일본의 스리톱 중 그나마 위협적이었던 선수가 오른쪽 측면에서 공격한 스즈키 무사시였기 때문이다. 자메이카 혼혈인 스즈키는 전반적으로 몸싸움이 약하고 스피드가 느렸던 일본 선수들 사이에 공을 지킬 수 있고, 빠르게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선수였다.
김영권과 손준호의 수비에 갇힌 스즈키는 왼쪽으로 이동했을 때 유효한 공격 장면을 겨우 만들 수 있었다. 스즈키가 교체아웃된 후에는 일본이 총공세를 퍼부어야 하는 0-1 열세 였음에도 제대로된 공격이 되지 않았다.
1-0 리드 상태로 후반전을 맞이한 한국이 압박 지점을 아래로 낮추자 일본의 후방 빌드업이 살아났지만, 스리톱 공격진의 힘과 속도가 미진해 파이널 서드 지역에선 위협적인 장면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한국은 무실점 전승을 거두며 동아시안컵 3연속 우승을 했다. 벤투 감독은 지금까지 유지하고 시도해온 경기 콘셉트의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이날 한국은 강한 전방 압박으로 경기를 장악했고, 속도감 있는 공격, 1대1 대결 압도로 일본을 제압했다. 대회 기간 필드골은 한 골 밖에 넣지 못했으나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패턴 플레이를 여럿 보였다.
이번 대회를 복기했을 때 개선해야 하는 점은 마무리 패스의 판단과 정확성, 그리고 마무리 슈팅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전 대표팀이 미진한 경기력에도 확실한 결정력으로 결과를 내왔다면, 이번 대표팀은 안방에서 보다 수월한 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하면서도 결정력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벤투의 플레이 콘셉트가 결과를 냈지만 중국, 일본이 대표팀 경험이 적은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다.
스포티비뉴스=부산,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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