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현을 환영하는 부시스타디움 ⓒ브랜뉴 스포츠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비록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에 패하기는 했지만, 한국 야구의 성장세를 세계적으로 떨친 대회로 기록됐다.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몇몇 20대 선수들은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KBO리그 소속이라는 핸디캡을 넘어 WBC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들 중 몇몇은 MLB 진출이라는 꿈을 이루기도 했다.

당시 미 야구전문매체 ‘베이스볼아메리카’는 국외 선수 랭킹 ‘TOP 20’을 선정했다. 한국 선수가 네 명이나 있었다. 류현진이 5위, 김광현이 9위, 윤석민이 18위, 김현수가 19위였다.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당시 랭킹에 선정됐던 네 명의 선수 모두가 MLB 구단과 계약을 맺었거나 지금도 MLB에서 뛰게 됐다.

가장 랭킹이 높았던 류현진은 가장 큰 성공 사례로 남았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예상을 깨는 포스팅 금액(약 2573만 달러)를 기록하며 LA 다저스와 계약했다. 2013년과 2014년 합계 28승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던 류현진은 어깨 부상이라는 지독한 악재를 이겨내고 올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한 류현진은 23일에는 토론토아 4년 80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맺기도 했다.

다만 윤석민은 성공하지 못했다. 윤석민은 류현진보다 1년 뒤인 2014년 볼티모어와 계약을 맺고 성공을 꿈꿨다. 그러나 몸 상태가 좋지 못했고, 떨어진 구위로는 MLB에 갈 수 없었다. 1년간 마이너리그 생활을 한 끝에 결국 계약을 해지하고 2015년 KIA로 복귀했다. 망가진 몸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고, 결국 2019년 시즌을 끝으로 아쉬운 은퇴를 택했다.

김현수는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볼티모어와 2년 계약을 맺고 MLB에 도전한 김현수는 초반 난관을 이겨내고 팀의 주전급 선수를 자리했다. 2016년은 95경기 성적이지만 타율 0.302, 출루율 0.382를 기록하며 타격 기계의 면모를 뽐냈다. 

다만 그 성적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7년에는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돼 마지막 기회를 노렸으나 끝내 KBO리그로 복귀했다. MLB 통산 성적은 191경기에서 타율 0.273, 출루율 0.351이었다. 장타가 부족한 외야수가 주전으로 자리잡기는 쉽지 않았다.

김광현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도전자다. 김광현은 2014년 말 포스팅을 통해 MLB 도전을 선택했다. 그러나 샌디에이고와 개인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으며 한 번 꿈을 접었다. 팔꿈치 부상으로 MLB에 갈 기회를 다시 놓친 김광현은 올해 포스팅을 통해 재도전에 나선 결과 세인트루이스와 2년 총액 11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좋은 계약을 맺고 새 출발점에 선다.

계약은 김현수와 비슷한 점이 있다. 2년 계약이고,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손에 넣었다. 다만 주전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왼손으로서의 이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팀인데다 로테이션도 비교적 잘 구성되어 있다. 김광현이 하기 나름이다. 

한편 당시 톱랭커들은 현재 MLB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 간 경우가 많다. 1위인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 2위 아롤디스 채프먼(뉴욕 양키스), 4위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는 좋은 계약을 맺으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3위 이와쿠마 히사시 또한 시애틀에서 준수한 성적을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6위 요에니스 세스페데스(뉴욕 메츠)도 MLB 입성 당시에는 큰 기대를 모았다. TOP 10 중에서 김광현이 가장 마지막으로 도전 기회를 잡았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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