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름은 슬럼프에 빠질 때면 늘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았다. 밖이 아닌 안에 시선을 맞췄다. "대부분 훈련량 부족이 부진 이유였다"며 웃었다.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공릉동, 박대현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김보름(27, 강원도청)은 쇼트트랙으로 빙상 첫발을 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쇼트트랙을 시작했다. 순탄하진 않았다. 남들보다 오륙년 늦은 입문이 발목을 잡았다.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유망주 지위는 금세 얻었다. 하나 한국 쇼트트랙은 '동계 올림픽 양궁'이다. 수준도 높고 경쟁도 치열하다.

조금 잘하는 걸론 명함 내밀기가 힘들다. 김보름이 딱 그랬다. 

고등학교 들어서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정화여고 2학년 때인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 지난해 12월 27일 김보름은 제74회 전국 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3관왕을 차지했다. ⓒ 임창만 영상 기자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옮긴 뒤 김보름은 숨은 재능을 활짝 피웠다. 특히 장거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종목 변경 1년 만인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3000m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선 같은 종목 13위를 차지했다.

역대 한국 여자 선수 가운데 3000m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성장세가 가팔랐다.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건 매스스타트에서였다. 2014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새 종목을 도입했다.

타원형 트랙을 십몇 바퀴 도는 스피드스케이팅에 박진감을 불어넣기 위해 매스스타트를 추가했다.

2013~2014시즌 5차 월드컵에서 첫 선을 보인 매스스타트는 선수 레인이 고정된 기존 종목과 달리 최대 24명이 레인 구분 없이 출발해 400m 트랙을 16바퀴 돈다.

쇼트트랙처럼 순위 경쟁을 뿌리로 두면서도 시종 선두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을 덧대 보는 맛을 더했다.

김보름은 2014~2015시즌부터 매스스타트에 나섰다. 싹수가 보였다. 데뷔 첫해 월드컵 랭킹 8위에 올랐다.

기량이 만개한 건 2016~2017시즌. 정점을 찍었다. 명실상부 매스스타트 최강자로 성장했다.

네 차례 월드컵과 월드컵 파이널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했다.

김보름은 순발력과 지구력이 두루 필요한 매스스타트와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이 신의 한 수였다면 매스스타트는 그의 등에 날개를 달아준 도약대였다.

지난달 27일 김보름은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74회 전국 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명불허전. 김보름은 여자 1500m와 3000m, 5000m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여전히 한국 장거리 간판은 자신이란 점을 증명했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 김보름에게 요즘 고민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자 "이번 대회는 (3관왕으로) 잘 치르긴 했는데 올 시즌 월드컵에서 조금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지난 시즌보다 성적이 안 나와서 현재 그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래서 물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자기만의 슬럼프 탈출법이 있는지.

김보름은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문제 원인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는다고 강조했다.

"일단 과정을 돌이켜본다. '훈련량이 부족하지 않았나' '(전력분석이나 마인트 콘트롤 면에서) 조금 게으르진 않았나' 대회 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복기를 해 본다. 컨디션이나 그밖 문제는 부차적이다. 대회에 앞서 준비 과정을 꼼꼼히 짚어보는 스타일이다. 그러면 실마리가 나오더라."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지, (열심히) 준비했다면 방법상 문제는 없었는지. 동기부여는 충실히 이뤄졌는지. 이런 부문을 집중적으로 되짚어보고 개선점을 찾는다. 말하자면 대회 전기간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피드백을 쭉 해보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문제점을 찾게 되고 (문제점이 나오면) 해결하는데 집중한다. 그렇게 (슬럼프 또는 성적 부진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김보름은 "그런데 대체로 훈련량 (부족) 문제가 많더라"며 웃었다.

정상에 선 패자(覇者)는 뭔가가 다르다.

한 번이라도 자기 분야에서 일등을 차지한 이를 보면 남과 구분되는 차별점이 있다. 연습량이든 유전자든 집안 분위기든 하다못해 운(運)이라도.

김보름은 국내 장거리 부동의 1위다. 약 3년 전부터 시상대 맨 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도 특이점이 있을지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발목 힘이 월등히 좋았다든지 독기가 남달랐다, 정체기에 빠져도 금방 툭툭 털어 냈다 류의 말을 기대했다.

하나 돌아온 답은 평범했다. 그런데도 힘이 실렸다.

김보름이 강조한 건, '노력'이었다.

"아직 정상에 다다랐는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래도 내가 (빙속 종목에서) 호성적을 거두는 건 결국 노력이다. 그것밖에 없다. 노력한 사람 중에서 '더' 노력한 선수가 결국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고 믿는다."

"모두가 노력은 한다. 노력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그 단계에서 반보 나아가) 남들 쉴 때 하나라도 더 (연마)하는 그런 행동이 쌓여야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 (남은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그렇게 믿고 있다."

김보름에게 '지도자나 주변에서 평가하는 김보름'은 어떤지 물었다. 겸연쩍은 웃음으로 망설이던 그가 어렵게 입을 뗐다.

"스케이트화 신었을 때부터 (코치님들이) 넌 끈기가 있다, 참을성이 더 있는 것 같다 이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 같다. 그밖에 생각나는 말은 딱히 없다(웃음)."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된 빙속 간판의 노력론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힘있게 다가왔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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