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서희는 지난달 31일 라이진에서 슈퍼아톰급 챔피언에 오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스포티비뉴스=도쿄, 이교덕 격투기 전문기자] 대한민국 대표 여성 파이터 함서희(32, 부산 팀 매드)가 일본 에이전시의 횡령 사실을 포착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으로 폭로했다. 일명 '모로오카 게이트'다.

함서희는 지난 1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2007년부터 자신의 일본 경기를 연결해 주던 에이전시 모로오카 히데카츠 CMA 회장과 그의 아내인 재일교포 이윤식 씨가 최근 일본 대회 라이진(RIZIN)에서 두 경기를 뛰고 받은 파이트머니 중 약 3000만 원을 빼돌렸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15년 동안 일본에서 한 모든 경기는 이 두 분만을 통해서 뛰었다"는 함서희는 "그런데 두 분은 제가 일본에 복귀해 2019년 7월과 10월 (라이진에서) 두 번 경기하는 동안 30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말없이 횡령했다. 이 일을 알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내 파이트머니를 횡령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한국 선수들이 당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워했다.

함서희는 2007년 2월 일본 단체 딥(DEEP) 28에서 프로 데뷔했다. 선수 생활 13년 동안 총 전적 31전 23승 8패를 쌓았고, 그중 일본에서 뛴 경기는 21번이나 된다.

모로오카 회장 부부는 2004년 '부산 중전차' 최무배가 프라이드와 계약할 때부터 한국 선수들의 일본 진출 징검다리였다. '스턴건' 김동현이 UFC에 진출하기 전에도 일본 경기를 잡아 줬다.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신뢰했던 에이전시였다. 일본 선수들을 한국 대회사에도 오랫동안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종합격투기계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특히 함서희는 모로오카 회장 부부를 가장 믿고 따르던 파이터 중 하나. 그래서 충격이 더 크다고 고백했다.

함서희는 "항상 저를 딸이라고 말씀하셨다. 저도 일본의 아버지 어머니라 생각하며 따랐다. 두 분은 한국 선수들 일본에서 경기 잡아 주고 1원 한 푼 챙긴 적이 없다고, 한국 선수들 일본 오면 항상 적자라며 한탄을 하셨기 때문에 저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동안 두 분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했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라고 생각하며 계속 함께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증거가 하나둘씩 모이면서 15년 동안 쌓아온 저의 믿음과 신뢰가 무너졌다. 제가 정말 15년 동안 부모라 생각하고 믿고 따른 분들이기에 이런 글 올리는 것 자체도 많이 조심스러웠고 고민했지만, 저를 시작으로 힘들게 운동하며 돈 버는 또 다른 피해를 받는 선수들이 안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쓴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도 그분들은 미안한 마음 없이 다른 선수들을 물색하고 시합에 참여시키고 있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이분들이 너무 실망스럽다"며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두 분이 이 격투기 바닥에서 없어지길 바라고, 두 분을 따르는 선수들 또한 없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에이전시가 하는 주 업무는 자신과 계약한 선수, 즉 클라이언트를 대회사에 소개하고 클라이언트(선수)가 만족할 만한 파이트머니를 받아 주는 일이다. 에이전시는 대회사가 선수에게 파이트머니를 지급하면, 사전에 합의한 조건에 따라 파이트머니의 일부를 수고비로 받는다.

일반적으로 출전 계약은 '갑'인 대회사와 '을'인 선수 사이에서 이뤄진다. 파이트머니는 대회사가 선수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격투기계에선 관행상 에이전시가 대회사에 파이트머니를 대신 받고 이를 선수에게 건네주는 일이 빈번했다. 모로오카 회장 부부가 대표적이었고, 중간에서 정확히 어느 정도 수고비를 가져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선수들은 의심이 가더라도 아무 어필을 하지 못했다.

계약 과정도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함서희는 1일 격투기 전문매체 '랭크5(RANK5)'와 단독 인터뷰에서 "(모로오카 회장 부부와 일하면서) 15년 동안 계약서를 본 적이 없다. 단 한 장도 본 적이 없다. 경기할 때마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종이를 주면서 '영수증을 내야 하니 서명을 해 달라'고 해서 서명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함서희는 선수 생활 처음으로 일본 대회 출전 계약서를 라이진을 통해서야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자신의 실제 파이트머니 금액을 정확히 알게 됐다. "계약서를 봤다. 다른 사람의 필적으로 서명된 계약서더라. 내 글씨체를 따라 한 계약서도 있었다. 계약서에 적힌 금액은 내가 받은 것과 달랐다"고 말했다.

함서희의 소속 대회사 로드FC는 이를 한국 격투기계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일본 라이진과 협조해 확인에 나섰다. 모로오카 회장 부부와 주변 관계자들이 어디까지 횡령에 공조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확대하는 중이다.

정문홍 로드FC 회장은 지난달 31일 일본 사이타마슈퍼아레나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국과 일본 에이전시의 어두운 부분을 도려내려고 왔다. 피해 받은 선수가 몇 명이고, 피해액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사카키바라 노부유키 라이진 대표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법적 절차를 밟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함서희는 지난달 31일 라이진 20에서 하마사키 아야카를 2-1 판정으로 꺾고 라이진 여성 슈퍼아톰급 챔피언에 올랐다. 로드FC 여성 아톰급 챔피언에 이어, 한일 양국 메이저 단체 동시 정상에 서는 기염을 토했다. 명실상부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했다.

함서희는 "일단 잔부상을 치료하고 로드FC와 라이진 타이틀을 방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2020년 포부를 알렸다.

모로오카 회장 부부는 아직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아래는 함서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전문

2007년부터 일본 경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모로오카 히데카츠 사장님과 그분의 와이프인 이윤식 사모님과 함께 경기를 잡았습니다. 지금까지 15년 동안 일본에서 한 모든 경기는 이 두 분만을 통해서 뛰었습니다.

항상 저를 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일본의 아버지 어머니라 생각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5년 만에 일본 경기를 다시 뛰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이 두 분이 저에게 말 한마디 없이 저의 파이트머니를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물론 그 금액이 그냥 일이백이면 저도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거 생각해서 감사한 마음에라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항상 두 분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 일본에서 경기 잡아주고 1원 한 푼 챙긴 적이 없다고, 한국 선수들 오면 항상 적자라며 한탄을 하셨기 때문에 저도 마음이 항상 불편했습니다.

그동안 두 분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며 계속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하나둘씩 모이면서 15년 동안 쌓아온 저의 믿음과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제가 일본에 복귀해 2019년 7월과 10월 두 번 경기를 하는 동안 30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말없이 횡령하였습니다.

이 일을 알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내 파이트머니를 횡령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한국 선수들이 당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정말 15년 동안 부모라 생각하고 믿고 따른 분들이기에 이런 글 올리는 것 자체도 많이 조심스러웠고 고민했지만, 저를 시작으로 힘들게 운동하며 돈 버는 또 다른 피해를 받는 선수들이 안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씁니다.

지금도 그분들은 미안한 마음 없이 다른 선수들을 물색하고 시합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이분들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두 분이 이 격투기 바닥에서 없어지길 바라고, 그 두 분을 따르는 선수들 또한 없길 바랍니다.

스포티비뉴스=도쿄, 이교덕 격투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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