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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리니 매직' 방황하던 韓 여자 배구에 새 패러다임 제시

조영준 기자 cyj@spotvnews.co.kr 2020년 01월 13일 월요일

▲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뒤 기념촬영아는 김수지(왼쪽부터) 김연경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세자르 기술 코치 ⓒ FIVB 제공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오늘은 제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40년을 이 순간을 위해 기다린 것 같아요. 스포츠 계에 종사한 뒤 올림픽에 대한 꿈을 늘 가졌습니다. 이 목표를 이뤄내 정말 환상적입니다."

라바리니 호의 항해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월 대한배구협회는 이탈리아 출신의 스테파노 라바리니(41, 이탈리아) 감독에게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지휘봉을 맡겼다.

라바리니 감독은 그동안 조직력과 수비를 강조한 한국 여자 배구의 방향을 바꿨다. 일본과 태국처럼 수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공격을 강조하는 배구를 추구했다. 궁극적으로 라바리니는 '토털 배구'를 강조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오랫동안 김연경(32, 터키 엑자시바쉬)의 활약에 의존했다. 이를 탈피해 모든 선수가 고르게 활약하는 시스템을 강조했고 결국 이를 이뤄냈다.

라바리니 호의 첫 항해는 순탄치 않았다. 그가 대표 팀을 이끌고 처음 출전한 대회는 2019년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이하 VNL)이다. 한국은 3승(12패)밖에 올리지 못했고 출전한 16개 국가 가운데 15위에 그쳤다.

지난해 8월 라바리니 감독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2020년 도쿄 올림픽으로 가는 첫 관문이었던 올림픽 대륙간 예선에 출전했다. 러시아에서 열린 이 무대에 선 한국은 결승전에서 러시아에 2-3으로 역전패했다. 1, 2세트를 먼저 따낸 한국은 강호 러시아를 제치고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거머쥐는 듯 보였다. 그러나 3세트를 아쉽게 내준 뒤 4, 5세트를 내리 내주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 2020년 도쿄 올림픽 본선행을 결정 지은 뒤 김연경(오른쪽)과 라바리니 감독이 포옹하고 있다. ⓒ FIVB 제공

이달 말 서울 잠실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준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의 2진 멤버들에게 발목이 잡혔다. 당시 김연경은 "이번 결과는 충격적이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라바리니의 역량에 대한 의문 부호는 계속됐다.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고 우승이 점쳐졌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3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표 팀 선수들은 라바리니 감독의 배구에 녹아들었다. 이재영과 김희진(IBK기업은행)은 국제 대회에서도 통하는 공격수가 됐다. 또한 주전 선수는 물론 벤치 멤버들도 고르게 활약하며 김연경의 의존도를 탈피했다.

9월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은 모처럼 '완전체'로 출전했다. 선수들의 기량과 조직력이 무르익은 한국은 이 대회에서 '숙적' 일본은 물론 세계 강호들을 꺾었다.

세계 강호들이 모두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은 6승 5패 전체 6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김연경은 "라바리니 감독이 오신 것은 새로운 배구를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실 일도 없었다"며 라바리니 감독에 대한 신뢰를 꺾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낸 한국은 마침내 목표였던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 꼬랏찻차이홀에서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결승전에서 홈 팀 태국에 세트스코어 3-0(25-22 25-20 25-20)으로 이겼다.

이 대회를 앞둔 한국의 앞날은 '긍정'도 있었지만 '우려'도 컸다. 국내 V리그에서 뛰고 있던 선수들은 상당수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팀의 기둥인 김연경도 태국에서 복근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결승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오른쪽) ⓒ FIVB 제공

여기에 선수들이 모두 모여 제대로 훈련한 날은 5일 정도였다. 이와 비교해 태국은 자국 리그를 연기하며 석 달간 철저하게 준비했다.

여러모로 우려가 많았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철저한 분석과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술로 목표를 이뤄냈다.

라바리니 감독은 "러시아에서 지난 여름 올림픽 티켓 획득에 거의 다 갔는데 믿기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유일한 마지막 기회가 태국에 있었고 선수들은 오직 우리의 목표에만 집중했다.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며 소감을 전했다.

태국과 펼친 결승전에서 김연경은 팀 최다인 22점을 올렸다. 부상을 털어낸 김연경의 활약에 대해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은 그가 늘 해왔던 대로 했다. 나는 (김)연경이 주장이 아니라 한국의 리더라고 생각한다"며 칭찬했다. 이어 "그는 카리스마와 실력으로 모두가 똘똘 뭉치게 한다. 그는 훌륭한 리더이자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라바리니 감독은 세계적인 추세인 '토털 배구'를 한국 여자 배구에 맞게 완성했다. 이번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한국은 결승까지 김연경의 활약에 의존하지 않았다. 매 경기 모든 선수가 골고루 득점을 올렸고 공격력은 예전과 비교해 한층 날카로워졌다.

공격은 물론 장점이었던 수비도 탄탄했다. 무엇보다 주전 세터 이다영(현대건설)이 성장하며 여자 배구 대표 팀의 전력은 업그레이드됐다. 라바리니 감독은 이다영만 따로 불러 꼼꼼하게 지시하는 방법도 보여줬다. 또한 작전 시간을 헛되게 보낸 적도 없었다.

▲ 2020년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뒤 환호하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과 코칭 스태프 ⓒ FIVB 제공

한국 여자 배구의 문제점은 확실한 '색깔'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조직력 배구를 추구하는 일본, 태국과 비교해 선수들의 피지컬이 좋은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팀과 비교해 선수들의 기본기와 조직력은 떨어졌다. 어정쩡한 위치에서 한국 여자 배구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라바리니 감독이 부임하며 한국은 길을 찾았다. 화끈한 '공격 배구'로 조직력을 앞세운 태국을 완파한 한국은 마침내 본선 무대에 도전한다.

라바리니 감독은 올림픽 목표에 대해 아직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일단 내 목표는 올림픽에 가는 것이었다. 올림픽에서도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겠다. 이번 경기는 한국 팀을 맡고 나선 41번째 경기였다. 지금까지 겪었던 많은 일이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고 말했다.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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