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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기획-트로트 홀릭①]"다시 청춘이어라"…중년의 삶 바꾼 트로트 열풍

박소현 기자 sohyunpark@spotvnews.co.kr 2020년 01월 18일 토요일
▲ 지난 16일 송가인 설특집 콘서트 방청을 위해 MBC 공개홀을 찾은 팬들. ⓒ박소현 기자
[스포티비뉴스=박소현 기자]"야구장 가는 거랑 똑같아요~"

엠넷 '엠카운트다운' 생방송이 있는 목요일. 10대~20대 아이돌 팬들이 스튜디오가 있는 서울 상암동을 찾는다. 하지만 지난 16일은 달랐다. 상암 MBC 사옥 인근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핫핑크 의상의 중년들이 대거 몰렸다. 단체 의상을 맞춰입은 송가인 팬들이 추운 날씨에도 대거 방송국을 찾은 것이다. 핫핑크 상의 위에 걸친 검은색 패딩에는 송가인 팬카페 '어게인'이라는 진한 분홍색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들은 송가인의 설 특집 콘서트 '고맙습니다' 방청권을 수령하기 위해 모인 터였다. 방청권은 이날 오후 4시부터 배부됐지만, 오전 11시쯤 일찌감치 도착한 팬들도 있었다. 부산을 비롯한 지방에서 찾아온 팬들도 많았다. 이들에게 왜 분홍이 상징색이냐고 물으니 "송가인이 좋아하는 색"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취향과 기호까지 다 꿰고 있는 탓이다. 정성껏 만든 종이꽃 응원봉을 비롯해 송가인 응원 배지로 가득한 모자, 화려한 슬로건까지, 스타일은 다르지만 송가인을 응원하기 위해 갖가지 치장을 했다.

현장에서 만난 50대 '어게인' 송윤호 씨도 마찬가지다. 분홍색 모자에 동그란 송가인 배지를 달았다. 그는 송가인 덕에 생애 첫 '팬 활동'을 한다. 이곳엔 송 씨처럼 송가인으로 처음 '팬심'이라는 걸 가진 사람이 다수다. 이날 만난 송가인 팬들은 남녀노소를 아울렀다. 

송 씨는 "회원끼리 모이면 오로지 송가인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50대~60대는 이제까지 사회생활을 집과 직장만 오갔어요. 크게 갈 데가 없었는데 송가인이라는 가수를 만나고 팬덤을 만나면서 생활이 달라졌어요"라고 힘줘 말했다. 밥벌이와 살림살이로 바빴던 중장년층에게 새로운 '놀 거리'가 생긴 셈이다. 공연장에서 마치 10대와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응원을 하고, 학창시절 또래를 만나듯 새로운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됐다. 다시 '청춘'을 찾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가수 송가인의 팬들이 직접 만든 송가인 사진을 넣은 에코백과 모자. ⓒ박소현 기자

다른 50대 '어게인' 고부경 씨는 송가인 '팬 활동'에 관해 "순수하게 송가인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에요. 서로 만나면 뭐라도 주려고 해요.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죠. 야구장에 가는 거랑 똑같아요"라고 설명한다. 그는 "사심 없이 온전히 나 혼자 빠져들 수 있어 좋아요. 갱년기 우울증 같은 것들도 많이 해소됐어요. 돈이 많이 들지도 않아요. 다 같이 모여 응원도 하고 바쁜 날엔 오전만 잠시 다녀오기도 해요. 만나면 다 같이 웃고 반갑게 대화해요. 서로가 어디 살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몇 살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여 서로가 선입견이 생길까 봐 사생활을 파고들지 않는다. 호칭도 '님'이다. 반말도 하지 않는다.

"자녀들도 처음엔 '엄마가 왜 저러지?' 했어요. 팬 활동을 숨기고 다니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서 응원한다고 사진도 보여주고 설명했죠. 엄마가 우울하게 있는 것보단 나가서 밝아지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더라고요. 남편도 요즘 은근히 같이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예요."(고부경 씨)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며 생각도 바뀌었다. 고 씨는 "둘째가 고3이라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내가 좋아서 다녀보니 알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더라고요. 1, 2년 늦더라도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어요"라며 웃음지었다.
▲ 대기 시간에도 송가인의 노래를 스트리밍하는 팬. ⓒ박소현 기자
송가인의 팬카페 '어게인' 운영진인 닉네임 '송편', '간니'는 팬카페 회원은 중년이 다수지만 20대와 30대도 상당하다고 했다. 운영자 역시 20,30대다.

그들은 "저희 팬카페 평균이 50대 정도라서 중장년층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같은 20대와 30대도 트로트와 송가인이 좋아서 찾아와요. 50대와 60대는 물론이고 젊은 층까지 좋아하게 된 게 놀라운 일 같아요"라고 강조했다.

닉네임 '송편'은 "부모님과 비슷한 연령대의 팬들과 자주 만나 소통하면서, 부모님 세대를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같이 했으면 하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트로트'와 송가인을 통해 '세대통합'이 이뤄진 셈이다. 이곳에는 꽉 막힌 '꼰대'도, 버릇없는 '애들'도 없다. 서로에게 '님'을 붙여 존중하는 다 같은 '송가인 팬'들만이 가득하다.

지난해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유재석)까지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주목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변두리'에서 트로트를 즐기던 중장년층이 대중문화 팬덤의 주요 구성원으로 편입됐다. 중장년층은 최근 TV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세대이자,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는 구매력이 있는 집단이다.

이러한 시청자의 수요를 방송사들은 발빠르게 포착했다. 아이돌이나 힙합 일변도였던 TV음악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관련 콘텐츠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해 지역 민방이 합심한 '골든 마이크'를 필두로 올 초부터 TV조선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방송 중이다. KBS1은 지난해 10월 '노래가 좋아' 특집으로 '트로트가 좋아'를 진행해 1999년생 신예 트로트가수 조명섭(조희언)을 발굴했다.

곧 론칭하는 트로트 프로그램도 다수다. MBC플러스는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편성했고, SBS도 새 예능 '트롯신'(가제)을 준비 중이다. 

트로트 인기는 아이돌 콘텐츠와 뮤지컬로도 확장됐다. 오는 22일에는 엠넷 'TMI 뉴스'에서 설특집으로 아이돌 트로트 자랑을 개최한다. 10명의 아이돌이 트로트를 부르는 형식이다. 오는 3월부터는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트로트를 주제로 한 뮤지컬 '트롯연가'도 관객들을 만난다. 
▲ '미스트롯' 전국투어 콘서트 현장. 제공|포켓돌스튜디오
트로트 공연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스트롯' 전국투어 콘서트는 어느덧 시즌2까지 진행 중이다. '미스트롯' 서울 콘서트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체조경기장은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 아이유, 박효신 등 대형 가수들이 공연하는 곳으로, 1만 석이 넘는 대규모 공연장이다. 입장권은 물론 매진됐다. 

열풍의 핵심에 있는 '대세 트로트 스타' 송가인은 최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4000여 석 규모로 단독 콘서트도 개최했다. 이례적으로 MBC가 트로스 신예 스타의 콘서트 실황을 파격 편성했고, 높은 시청률로 여러 차례 재방송이 이뤄졌다. MBC는 설특집 송가인 콘서트 '고맙습니다'까지 마련했다. 

트로트의 인기로 형성된 두터운 중장년층 팬덤은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스타탄생이 이어진다면 장르의 인기와 팬덤 문화가 굳건히 자리잡아 대중문화 산업의 외연 또한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문화 산업에서는 최종 목표를 '팬덤의 움직임'으로 본다. 어떻게 행동방식이 표출되느냐가 중요한데,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굉장히 유의미하다. 공연장을 찾는 중년 관객들은 '삶의 출구'를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봤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꾸준히 등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강 평론가는 "가창력은 물론 스타성을 지닌 트로트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라 대중의 흐름과 정서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반짝'하는 것이 아닌 롱런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나타나면 트로트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포티비뉴스=박소현 기자 sohyunpark@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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