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제공|BH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저희가 너무 자주 보는 감이 있죠?"

이병헌(50)을 한 달도 안 돼 다시 만났다. 그의 두 영화가 한 달 차이를 두고 극장에 걸리는 탓이다. 마주앉은 이병헌은 변함없이 똑같은데 보는 기분이 너무 다른 건 너무 다른 두 편의 영화, 그리고 또다시 너무 새로웠던 이병헌 탓이다.

22일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젬스톤픽쳐스)는 세세한 취재기를 따라 재구성된 근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페이지 몇 쪽을 한 인간의 눈으로 더듬어보는 영화다. 이병헌이 맡은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의 눈이 관객의 시선이 된다. 1979년 10월 26일 그가 18년을 충직하게 보필해 온 대통령을 향해 총구를 당기기까지, 마지막 40일이 차고 건조하게, 닿을 듯 생생하게 담긴다.

이병헌은 평정심을 잃어가는 예민한 2인자를 연기했다. 모든 감정을 그저 꾹꾹 누른 채,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카메라 너머 관객에게만 폭발할 것 같은 속내를 드러내는 이병헌은 그저 압권이다. 절로 숨죽이게 되는 114분을 지나고 나면 불과 한 달 전, 백두산 화산폭발 피해를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분투했던 '백두산' 속 북한 요원 이병헌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비록 이름이 다르다 하나 이병헌이 연기한 김규평의 모델이 실존인물인 김재규라는 건 누구나 안다. 이름도 안 나오는 대통령(이성민)은 당연히 박정희, 박용각(곽도원)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형욱, 곽상천(이희준) 경호실장은 차지철이 모델이다. 10.26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이병헌은 어떻게 그를 그려냈을까. "늘 몸부림치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는 이병헌은 "어느 촬영보다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역사적으로 미스터리라면 영화에서도 미스터리해야 한다"는 이병헌은 개인적 의견을 가급적 자제하면서도 "그 인물의 내면을 닮으려 했다"고 털어놨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제공|BH엔터테인먼트
▶우민호 감독과는 '내부자들' 이후 '남산의 부장들'이 2번째 만남이다. 이번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물론 터질 때 터지지만 답답하리만치 계속 누르고 자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걸 표현하는 건 배우들에게 큰 어려움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근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 실존인물에게 더해져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에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 안에만 감정을 연기하자고 생각했다."

▶실존인물 연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김재규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특히 부담감이 컸을 텐데.

"되게 많다. 이렇게 근현대사의 실존인물은 처음이다. '광해'는 픽션이 많이 가미됐지만 기존에 '남한산성'이라든지, 모두 역사적 인물이라해도 먼 옛날인데 이건 근현대사니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여전히 많고, 그렇기 때문에 자칫 우리 영화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역사적으로 아직 미스터리한 부분들을 규정짓는다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미스터리하다면 영화에서도 미스터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까 어느 촬영보다도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여전히 논쟁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부담은 없었나.

"영화를 선택할 때 이야기를 먼저 본다. 그리고 내가 연기할 캐릭터를 본다. 정말 이런 감정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섬세한 심리들, 인물간의 갈등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그런 데서 매력을 느꼈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제공|BH엔터테인먼트
▶결국 '그는 왜 총을 쐈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이해하며 접근해갔나.

"일단 기본적으로는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자체에서 놀자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이해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것 안 하고, 그려진 데서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정말 왜 그랬는지는 계속 논쟁거리고 이야기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규정하지 않았으니까. 그 자신도 사적인 감정들, 곽실장을 대하는 감정이 있을 것이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이렇지 않았으면 하는 대의적인 것이 있었을 것이고 복잡한 마음의 상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살신에) 두 군데 객관적으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장면이 있다. 주관과 객관을 왔다갔다 하는 상태였을 거라 생각하며 연기했다."

▶암살 장면은 어떤 근현대사의 기록같기도 한데, 연극적인 느낌도 있다. 어떻게 연기했나.

"어쩌면 되게 긴 시간 한 커트로 간다. 사실 기술적인 부분인데 나눠서 찍었지만 한 커트로 붙인거다. 그 부분에서 카메라 감독, 감독, 배우들 모두 신경을 많이 썼다. 진짜 긴 한 커트로 그려지도록. 그래서 더 연극적으로 보여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하나도 안 들어갔다고 보면 되는데 어느 부분은 감독님과 상의를 해서 넣은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잠깐 빠질 수 있는 순간이 있어야 그 동안 두 사람의 관계가 약간은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의 부장들' 속 모습을 두고 '한국의 조커'라는 말이 나왔다.

"처음 들었다. 기분좋은 칭찬이다. 그렇게 비유를 해주신다면 영광이다."

▶곽도원은 이병헌을 두고 '가장 완벽한 형태의 배우'라는 말도 했는데.

"저는 그말이 개그처럼 들렸다. 도원씨는 극찬을 잘하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낯뜨거웠지만 좋은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했고 칭찬에 후한 배우구나 했고. 정말 좋았다. 그런데 어떤 게 완벽한 형태의 배우인지는 모르겠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스틸. 제공|쇼박스
실제 모델과는 외모부터 다르다. 닮은 모습을 연기하려 의식했나.

"외모의 싱크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인물이 가지는 심리와 감정상태는 최대한 닮으려고 애를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자료들이나 다큐멘터리, 실제 영상들. 여기저기서 들은 증언들까지도 다 도움이 됐다. 내가 실제 그 상황을 알수 없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내면의 심리 상태와 감정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실존인물과 싱크는 카메라 테스트나 그 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심지어 목소리와 말투도 싱크를 맞추는 게 좋겠냐 그냥 하는 게 좋겠냐 했다. (감독님이) 그냥 하는 게 좋겠다 해서 그렇게 갔다. 굳이 똑같이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름도 다르지 않나. 굳이 똑같이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중요한 몇가지 부분-헤어스타일, 안경 정도만 참고하자 했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부터 영화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거다."

머리를 만지는 디테일에는 의미가 있나.

"실제 영상들, 여러가지 자료들을 봤다. 법정에서의 모습들을 봤다. 당연히 포마드나 제품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일 텐데 이미 자란 긴 머리를 계속 넘기는 모습을 봤다. 머리 한 올이 내려와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함, 감정적으로 예민해졌을 때라든지 신경질적인 느낌이 보여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참고했다. 곽실장과 싸워서 머리가 헝클어졌을 때나, 고문하러 내려가서 예민해졌을 때 쓰는 장치로 사용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다 알고 보는 영화이기에 배우들 연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픽션보다 짊어져야 할 짐이 많지 않나.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고 근현대사라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건데 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겉으로만 알고 있는 사건에 깊숙이 카메라가 들어가서 그 감정의 결을 세심하게 보여준다는 거다. 어떤 영화보다도 그런 지점 때문에 섬세한 연기, 섬세한 심리 묘사가 필요하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제공|BH엔터테인먼트
꾹꾹 눌러가며 호흡까지 아껴 뱉는 연기는 스트레스 더 많았을 것 같다.

"대사를 몇 마디 안 하고 절제하면서 해야 할 때는 훨씬 더 디테일이 보이고 그 조용조용 내뱉는 대사 속에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달돼야 하니까 아무래도 더 힘들다. 한편으로는 그런 지점이 이 인물의 미덕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결과적으로는 터뜨리는 부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역할에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클로즈업이 인상적이다. 그 변화는 계산하나, 혹은 이입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나.

"클로즈업이 많은 작품에서는 내가 뭔가 보여주려고 할 때 거부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은 클로즈업은 실제랑 약간 다르다. 직접 만나 사람을 봐도 그 사람 감정을 못 읽을 때가 있다. 반면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그 기분만 가지고 있어도 그게 전달되기도 한다. 되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배우들이 느끼는 신기한, 마술같은 부분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는 그 감정과 기분을 가지려고 애를 쓰면 그것이 전달되리라는 믿음만으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얼굴 클로즈업, 명암이 확실히 드러나는 장면이 많다. 감량했나.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딴 때보다 몸무게는 더 많이 나갔다. 배우로서 다행인지 모르겠는데 얼굴에 살이 잘 안 찐다."

어떤 신이 제일 힘들었나. 

"도청하는 장면도 굉장히 중요한 신이었고, 리틀엔젤스 극장에서 교차편집되는 신이 힘들었다. 대사 한마디가 없는데 아주 극적인 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정신이 아닌 느낌이고. 내 안에서 내 자신과 싸우는 느낌을 대사도 없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 시퀀스가 아주 많이 힘이 들었다."

배우 이병헌은 객관성을 갖고 연기했지만 연기하고 나서는 영화를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제 개인적인 견해가 선입견이 될까봐 조금…,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곽실장은 보기에도 얄밉다. 몸싸움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희준은 연기하고 나니 가슴팍에 멍이 다 들었다더라.

"저도 긁힌 자국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야 이거 엉망이 되겠구나' 한 신이었다. 시나리오 읽을 때도 이거 어떻게 하지 싶은 장면이었다. 누가 때리고 피하고 반격한다가 아니라 찢어져라 붙들고 늘어지고 대사도 엉키고 극도의 흥분상태이기 때문에, 엉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엉망이었다. 엉망인 상태 자체로 좋아하신 것 같다."

▶이희준과 호흡은 어땠나. 25kg을 찌워서 헉헉거리며 연기하는 걸 보고 '숨 넘어가겠다' 했다던데.

"영화 보자마자 '니가 정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는 사실 '내부자들'처럼 쉬어 가는 캐릭터가 없다. 계속 심각하고 심각한 상황이고 진지하고 긴장감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그나마 곽실장 캐릭터가 실소를 자아낼 수 있는 캐릭터다. 본인이 설정해서 걸음걸이라든지 뛰어가는 뒷모습 같은 걸 만들었겠지만, 살이 그렇게 찌니까 발성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희준 배우를 아니까 웃겼던 게 많다. 특히나 헬기 뜨기 전에 오지 말라고 하고 뛰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심각하게 연기해야 하는데 웃겼다. 그렇게 설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하도 소리를 지르면서 하니까 호흡이 달리는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이야기하더라."

▶대통령 역 이성민은 어땠나. 실존인물과 싱크로율이 상당하다.

"이성민 배우와 촬영을 하기 전에 집무실에서 처음 그림을 봤다. 대통령을 그린 큰 그림이다. 누군지 몰랐다. 자세히 보니까 이성민 배우인 거다. 그 그림을 보고도 '헉' 하는 느낌이었다. 우와 어떻게.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실제로 이성민 배우를 현장에서 처음 봤을 떄도 되게 놀라웠다. 그런 감정이 2인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분명히 도움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제공|BH엔터테인먼트
'남산의 부장들'은 느와르 느낌도 강하다. 이병헌은 느와르에서 빛나는구나 생각도 든다. 스스로도 끌리는 장르인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내 영화 중) 이 이야기 안에 있는 감정이나 정서가 가장 닮은 것은 '달콤한 인생'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느와르가 가진 감정, 충성 배신 애증 등이 주류를 이루지 않나. 그런 심리를 그런 감정을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좀 있는 것 같다."

▶믿고 보는 배우로 평가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부담이기도 하고 기분좋은 칭찬이기도 하다. 어떤 배우가 영화를 찍는다고 기대하고 보러가야지 하는 배우로 있을 수 있다면 감사하고 축복받은 일이다."

▶사실 늘 1인자나 다름없는 톱스타다. 이 영화를 하며 2인자의 마음이 이해가 됐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그렇게 살면 굉장히 숨막힐 것 같다. 제가 그런 데 대해 약간 거부감이 있는 것 같은데, 첫번째 두번째 나누는 걸 안 좋아한다.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고 배우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숨막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걸 안 좋아한다. 그러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배우로서 장점이 있다면.

"신인 때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처음 시작했다. 조명감독님이 제 얼굴을 되게 까다로워 했다. 조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얼굴이 특이해서. 이렇게 하면 그로테스크하다고도 하고. 심지어 약간 짜증내는 조명감독님도 봤다. 시간이 흘러 영화를 할 때 감독님들이 몇 분 그런 칭찬을 해주셨다. 각도에 따라서 얼굴이 다양한 분위기를 낸다고. 처음엔 욕인 줄 알고 약간 긴장했는데, 그래서 좋다고 하셔서 다행이다 한 적이 있다."

▶흥행예측은 어떻게 하나.

"흥행은 모른다. 제가 한 어떤 영화든 손해 안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백두산'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신작이 개봉한다. 관객들이 '백두산'은 잊고 봤으면 좋겠나.

"아니다. 다 애정이 있으니까. '백두산'은 오락영화고 팝콘영화지만 그 캐릭터도 좋아하는 영화팬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 인물을 담아두고 계신 분이 있을 텐데. 다만 너무 밭게 나온다. 그런 지점이 아쉽다. 두 개 같은 날 개봉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데 비하면 뭐."(이성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는 '남산의 부장들'과 같은 22일 개봉이다.)

▶연기도 잘하시는 분이, 요새 개그 욕심이 늘어난 것 같다.

"개그 '욕심'이 늘어난 게 아니다. 사람들이 몰랐던 거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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