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99억의 여자'에서 홍인표 역을 맡은 정웅인. 제공|KBS
[스포티비뉴스=박소현 기자]"아내가 출연을 반대했어요."

23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에서 아내에게 극도로 집착하며 고문까지 하는 악랄한 홍인표 역으로 나선 정웅인은 미소와 함께 '99억의 여자' 뒷이야기를 전했다. 

서울 논현동에서 23일 만난 그는 "아내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역이라 대본을 보고 불편했다.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이가 커가는데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더라. '99억의 여자' 김영조 감독은 나에게 KBS 인연을 맺어준 감독으로, 2000년부터 내 연기를 좋아해 줬다. 단막극도 함께 많이 했었다. 제작진에게 더 좋은 배우랑 했으면 한다고 고사했었다"라고 말했다.

마침 캐스팅 과정에서 변동이 생기면서 정웅인이 자연스럽게 출연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었다. 그러나 새롭게 판이 꾸려지면서 극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정웅인은 '99억의 여자'가 '운명'임을 직감했다. 

정웅인은 "출연을 결정하던 당시 지상파 드라마가 침체기였다. 나는 SBS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MBC에서도 드라마를 많이 했었다. 지상파에서도 '붐'을 일으키고 싶었다. 마침 '동백꽃 필 무렵'도 잘 돼서 '99억의 여자'가 후속으로 그 드라마를 업고 가게 됐다. 여러 가지가 잘 맞았다"라고 말했다.

'99억의 여자' 출연을 반대했던 아내 이지인 씨는 드라마를 보진 않았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주변에서 홍인표의 활약상을 듣고 왔다. 그는 "아내가 '오늘은 사람을 사포질했어?'라고 묻더라. 다 듣고 와서 내게 묻더라"며 웃었다. 그의 딸들도 '아빠 이상한 거 해요?' 물었다. 드라마에서 아내를 학대한다는 말에 정웅인의 사랑스러운 딸들이 깜짝 놀랐단다.

정웅인은 "과거와 달리 시청자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이젠 악역도 '연기'로 봐준다. 예전에는 드라마 악역에게 돌을 던지고 밥도 안 주고 그러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악역, 불편한 연기에도 상을 받을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김영조 감독은 정웅인과 함께 홍인표라는 캐릭터를 보다 강렬하게 만들었다. 정웅인은 "김영조 감독이 홍인표라는 캐릭터에게 애착이 있었던 느낌이다. 홍인표가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도록, 카메라 앵글을 긴장감이 느껴지고 그로테스크하게 연출했다. 배경음악도 마찬가지"라며 섬세한 연출에 고마워했다.

현장에서 김영조 감독과 즉석에서 논의해 홍인표가 더욱 강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정웅인은 생매장 당하는 장면에서 대역을 쓰는 대신 직접 묻혔다가 파고 나오는 쪽을 택했다. 흙더미를 뚫고 나오면서 입에 흙이 들어가고, 다음 날 코에서 또 흙이 나왔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화면에 잘 나와 만족했다는 그다.

정웅인은 "내 나이에 연기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타성, 나태, 거만을 조심한다. 차는 디젤, 하이브리드, 전기차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데 연기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한다. 내 나이라면, '이 배우가 이 드라마에서 열심히 한다'는 것이 보이는 게 커야 할 것 같았다"고 생매장 장면에 임했던 각오를 털어놨다.

섬세한 김 감독의 연출과 정웅인의 열연에 시청자들은 반응도 뜨거웠다. 정웅인은 "'99억의 여자' 댓글 반응을 봤는데 '미친 X', '99억의 남자'에 폭탄을 만들었더니 '웅봉길'이라고 하더라. 예전에 '감 잡았어', '죽일 거다' 같은 유행어가 생긴 것처럼 홍인표에게 관심을 보여줬다. 오랜만에 느껴본 좋은 감정이다. 연기자는 이런 것으로 먹고 사는 것 같다"고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정웅인은 "'99억의 여자'와 홍인표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꼈다면 감사하다. 나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정웅인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는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포티비뉴스=박소현 기자 sohyunpark@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