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부터 '곽실장' 이희준을 만나러 갔다. 투박한 탱크 신봉자 '곽실장'은 어디로 갔는지, 길어진 머리를 늘어뜨린 그는 평소보다도 날렵해 보였다. "굵은 붓으로 한번에 그은 것 같은 힘"을 느꼈다며 자신을 두고선 "영화를 보니 다른 것 없이 '병헌이 형 화나게 하려고 100% 했구나. 각하를 위한다는 마음에 100% 했구나' 했다"고 소감을 밝힌 이희준. 내 앞의 사람이 내가 어제 본 곽실장이 맞는지, 이야기를 주고받아도 적응이 안된다 하니 영화에선 한 번도 못 본 미소를 지었다. "그거, 저 아니에요."
사실이 바탕이 된 픽션이라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누가 어찌 보아도 여지없는 10.26 이야기다. 그가 맡은 곽실장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10.26 당시 숨진 차지철 경호실장이 모델이다. 부담되거나 긴장되지 않았을까. 이희준은 "부담보다 흥분이 컸다"고 했다."'야, 재밌겠다. 이 선배님들이랑 연기하면 정말 재밌겠다' 싶었죠. 물론 제가 막내니까 깍듯하게 했어요. 그런데 진짜 재미있었어요. 속으로는 후배로서 닮고 싶은 선배라 '저걸 어떻게 할까' 궁금한게 많았거든요. 참여하면서도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겸손한 소감이지만, 영화를 보면 그 막강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이희준이 전혀 안 밀린다. 이병헌과는 투닥거리는 것으로 모자라 쌍욕을 해가며 멱살도 잡는데도 그렇다. '마약왕'에서 이미 이희준과 함께했던 우민호 감독은 송강호와 맞붙어서도 기가 안 죽는 모습을 보고 곽실장 역에 이희준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제안을 받았을 때 이희준은 당혹감을 느꼈다. 실존인물이 떠오르는 캐릭터 때문이 아니다. 대본은 재미있었지만 세심한 결이라곤 없이 그저 확고하게 '그분'을 신봉하는 곽실장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희준은 자신은 납득이 안 되면 연기를 못 하는 배우라 했다. '왜 이걸 내게 주나' '이 사람은 왜 이러나' 하는 의문은 곧 의욕이 됐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희준이 집중한 건 "이 캐릭터의 신념"이었다."편협하지 않으려 했어요. 이희준의 시각을 내려놓고 다양한 자료를, 양 끝에 있는 자료를 다 봤어요. 최종적으로는 이 극 안에서 내가 어떤 역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감독님과 결정하게 됐고요…. 이 캐릭터한테는 그게 최선이었구나, 이 캐릭터는 그렇게 믿고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그게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100% 확신한 것 같아요. 1%의 의심도 없이.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것 아닐까요. 권력 욕심도 없지 않았을까, 혹여 있어도 '절대 안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끝났을 땐 이해가 됐어요. '이럴 수 있잖아.'"
곽실장은 경호실장인데다 모든 신경이 대통령에게 쏠리다시 해 화도 대신 내고 흥분도 대신 하는 인물이었다. 현장에서도 이희준은 대통령 역 이성민과 붙어있다시피 했다. 이성민을 두고 이희준은 "대구에서 연극하던 선배고 극단 차이무 선배이기도 하다. 깍듯하게 하는 습관이 있어서 쉽게 잘 모셨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영화 속 모습에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했다."선배님이 노력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계속 유튜브와 자료를 보셨는데 결과물을 보니 목소리 톤이나 말투, 걸음걸이 이런 게 정말 대단했어요. 정말 감동했던 건, 부연설명 없이 그냥 장면 탁탁 넘어갈 때마다 그 캐릭터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을까 이런 게 얼굴과 눈에 보여서 깜짝 놀랐죠. 본능적으로 하는 연기잖아요. 저거 어떻게 하는 거지, 생각도 하고. 마음 같아선 다 빨아먹고 싶은데 제 길이 있겠죠. '아 저렇게 하는구나' 잘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이희준이 실제와 너무도 다른 건 25kg을 찌운 비주얼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캐릭터를 살필수록 중량감이 필요하겠다 느꼈고, 이병헌과 비주얼에서 대조를 이뤄야겠다는 생각도 있어 먼저 살을 찌우겠다고 했다.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보니 찌워보자 마음을 먹고선 심리적으로는 두려움도 느꼈다. '이렇게 나온 배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배우로 살며 배가 나오면 안된다는 '결벽'이 있었는지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불교신자인 이희준은 108배를 했다. '괜찮다, 배 나와도 괜찮다'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다독여 허락(?)하는 시간이 필요했단다. 목표를 세우고 3개월을 찌웠고 '이 비주얼이면 되겠다' 했을 땐 몸무게가 100kg였다.
"웨이트를 올려가며 운동을 하고, 식사와 식사 사이 땅콩버터를 잔뜩 바른 토스트를 먹었어요. 배가 부를 때 더 먹어야 하니까 평소 안 먹던 걸 먹기 시작했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끊기 힘들었어요.(웃음)"
평소로 되돌아오는 데도 3개월이 걸렸다. 당뇨 위험이 있다기에 아예 노출이 있는 화보 일정을 잡아두고 매일매일 식단을 관리하며 운동했다. 찌우는 것보다 빼는 쪽이 확실히 더 힘들었다. 오가는 것으로 모자라 피트니스 클럽 바로 앞에 고시원을 잡고 하루 4번 운동을 했다. 연극 시작할 때 대구에서 상경해서 고시원에 살았다는 이희준은 "마흔하나에 자발적으로 다시 고시원에 들어가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생각에 잠겼다.'남산의 부장들' 영화에서 보듯, 체중을 늘린 효과는 확실했다. 이희준도 실감했다. 목소리가 낮아지고 자세와 걸음걸이가 함께 달라졌다. 배우로선 놀라운 경험이기도 했다. 이희준은 "잘 만들어진 가면을 쓴 느낌이었다. 숨 차고 대사를 한 호흡에 못하게 돼 신기하기도 했다"면서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이거 보시고 살찐 캐릭터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하나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잠깐잠깐 있지만 다 지르는 대사거든요. 살을 찌워서 그런지 한 호흡에 할 수 있는 글자가 많지 않더라고요. 세네 글자만 해도 숨이 차서 계속…. 이병헌 선배님도 엄청 재미있어 해 주셨어요. 컷 하면 '야, 숨넘어가겠다' 하시고.(웃음)"
살을 찌우든 안 찌우든, 작품마다 휙휙 달라지는 이희준을 보면 천생배우다 싶은 생각이 든다. '최악의 하루'에선 자칭 '멜로계 희대의 악마'(?)였다가 '미쓰백'에선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다시 '남산의 부장'에선 문제적 경호실장이 되는 이희준은 "연기는 정말 재미있다"를 연발했다. 배우를 안 하면 어땠겠냐 했더니 "정말 우울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늘 쟁취하는 거라 마약같은 게 있다. 일상은 그에 비하면 심심하다"고도 했다."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 욕먹으면 어쩌나, 외부 평가에 대한 불안이 늘 있고 다가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남산의 부장들'을 하면서도 느꼈죠. '남산의 부장들'을 안 했다면 저는 곽상천 같은 인물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을 거예요.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끝내고 나니 뭔가를 강하게 믿는 사람을 보면 이해는 돼요.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게 배우를 하며 얻는 멋진 점이죠. 그 전에 재미가 있어요, 정말 재미가 있어요 아직도요."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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