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도중 한데 모여 의논하고 있는 KBO 심판진. 해당 사진은 기사에서 언급한 사건과 무관. ⓒ한희재 기자
KBO리그 들썩거리게 만든 역대 사인 스캔들

사소한 오해부터 중징계 사건까지 각양각색

야구인들 “ML 사태, 경종 울리는 계기 되길”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메이저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사인 훔치기’ 스캔들의 후폭풍이 거세다. 2017년과 2018년 월드시리즈에서 전자기기를 이용해 상대의 사인을 훔친 혐의가 드러난 휴스턴 애스트로스 AJ 힌치 감독과 보스턴 레드삭스 알렉스 코라 감독은 나란히 옷을 벗었고, 역시 2017년 휴스턴에서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알려진 카를로스 벨트란도 뉴욕 메츠에서 단 한 경기도 지휘해보지 못하고 경질됐다.

스포티비뉴스는 메이저리그를 강타하고 있는 사인 스캔들의 심각성을 파헤치고, 또 이와 무관치 않은 KBO리그의 방지 대책을 점검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KBO리그 10개 구단 단장과 감독은 물론, 현역선수와 전직 감독, 해설위원 그리고 KBO 사무국 관계자까지 총 50명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도 진행해 각자의 의견을 종합했다.

KBO리그 역사에서도 '사인 훔치기'는 늘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크고 작은 일들과 해프닝은 꾸준히 벌어졌다. [SPO 기획-사인 스캔들] ②편은 KBO리그를 뒤흔든 굵직한 사인 스캔들의 역사를 짚어본다.

◆2007년 KS 몰래카메라(?) 사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강력한 칼을 빼든 스캔들은 KBO리그에서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감자로 통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지만, 상대의 사인을 빼앗으려는 행위는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내에서 눈썰미로 상대 사인을 간파하는 것은 능력으로 평가받고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만, 전자기기를 이용한 사인 훔치기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해치는, 선을 넘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씨가 그라운드 속 논쟁으로 본격 점화된 때는 2007년 ‘몰래카메라(?) 사건’이었다. 메이저리그 사인 스캔들이 월드시리즈에서 나왔듯이 KBO리그에서도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한국시리즈에서 일이 터졌다.

2007년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문학구장(현 인천SK행복드림구장). 경기를 앞두고 두산의 배트보이가 공인구를 받기 위해 SK 쪽 1루 덕아웃을 들렀다가 모퉁이 근처 구멍에서 카메라 하나를 발견했다. 사건의 발단. 이를 미심쩍게 생각한 배트보이는 해당 사실을 즉각 두산 관계자에게 알렸다.

이 카메라가 3루코치의 사인을 훔치기 위해 설치된 몰래카메라라고 판단한 두산은 언론을 통해 이 사안을 공개했다. 현장이 발칵 뒤집히는 건 시간 문제. SK 관계자들은 부랴부랴 상황 수습에 나섰고, 취재진 역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양측 덕아웃을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해당 카메라는 SK 원정 기록원이 보관 차원에서 갖다 놓은 것으로 판명됐고, 해당 사건은 오해가 빚은 해프닝으로 결론을 내렸다. 두산 구단에서 사과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는 두산과 SK 프런트가 강도 높은 감정싸움을 벌인 뒤였고, 속으로 앙금을 풀지 못한 양 팀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2009년 KS 그라운드 신경전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한국시리즈. 이번에도 사인 훔치기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이번에는 SK가 “KIA 타이거즈 선수들이 우리의 사인을 훔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불씨가 당겨졌다. 이를 들은 KIA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광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 도중 SK 김정준 전력분석팀장이 백스톱 뒤 중앙 본부석에 앉아 수비수들에게 팔로 수비 시프트 수신호를 보내자 KIA 김동재 코치가 오석환 주심에게 항의를 했다. 심판측은 이에 대해 "금지행위"라며 경고를 했다.

그런데 20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4차전에서 또 김 팀장이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와 벤치에 수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KIA 조범현 감독은 4차전 직후 인터뷰에서 "1차전에서 어필을 했는데 또다시 그렇게 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 "1차전에서 문제가 되자 KBO가 이 같은 행동에 대해 금지행위라고 밝힌 바 있다. 모든 작전은 그라운드 내 덕아웃에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부석에 앉은 전력분석원의 수신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불붙었다. 당시 KBO는 결국 대회요강 26조(경기중 직원이나 관계자가 무전기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로 사인을 전달할 수 없다)를 들어 "수신호도 명백한 금지행위"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전력분석원은 바로 앞에 카메라와 노트북 등 첨단장비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자방비를 활용한 사인 훔치기'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그럴 가능성이 커진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용광로는 6차전에서 터지고 말았다. SK 투수 송은범과 2루수 정근우가 2루주자 나지완과 사인 훔치기를 놓고 언쟁을 벌였고, 이를 보던 KIA 김종국이 정근우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면서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미 SK와 KIA는 앞선 3차전에서 타자 정근우와 투수 서재응인 신경전을 벌인 바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분위기는 더욱 험악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충돌하는 벤치클리어링은 없었지만, 긴장감이 한껏 치솟은 장면이었다.

▲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충돌하고 있는 SK와 KIA 선수들. 이 벤치클리어링은 6차전 사인 훔치기와 관련된 신경전으로 연결됐다. ⓒ연합뉴스
◆2015년 청주구장 CCTV 사건

2015년 청주구장에선 CCTV가 논란이 됐다. 한화 이글스 원정을 치르던 KIA 김기태 감독이 경기 도중 이기중 주심을 불러 3루 덕아웃 한쪽에 설치된 CCTV 카메라 모니터를 놓고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청주구장 덕아웃에는 불펜을 비춰주는 모니터 두 대와 좌측 폴 아래 펜스 일대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김 감독은 벤치 안에서 조이스틱으로 이 카메라를 조종해 모니터로 볼 경우 상대 벤치까지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었다. 줌인 기능까지 장착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이는 사인을 훔치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고 항의했고, 이 사건은 CCTV 사태로 확산되면서 크나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청주시까지 나서서 “한화에서 CCTV와 모니터 설치를 요청하지 않았을 뿐더러 사인을 훔칠 수도 없다. 아무리 줌인을 해도 덕아웃 안은 볼 수가 없는 각도다. CCTV의 성능도 단순하다. 단순한 방범용 카메라다”라고 해명했다.

해당 사안을 놓고 KBO 사무국은 고심을 거듭했다. 이러한 사건은 KBO리그 출범 후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KBO는 “해당 CCTV와 모니터로 상대팀 사인을 훔치는 등의 소지는 발견하기 힘들다”면서도 경기 중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CCTV 사용 금지 결정을 내리면서 당시 사건을 매듭지었다.

▲ ▲ 2018년 4월 KBO 상벌위원회가 LG의 사인 훔치기 논란을 놓고 회의하는 장면. ⓒ한희재 기자
◆2018년 LG 사인 설명서 논란

사인 스캔들의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8년 LG 트윈스의 광주 원정경기를 들 수 있다. LG 덕아웃에 부착된 KIA의 구종별 사인 설명서가 한 카메라로 포착된 사건이었다. LG는 “전력분석팀에서 주자의 도루를 돕기 위해 준비한 내용이었지만,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KBO는 사건 직후 상벌위원회를 열어 LG가 야구규정 제26조 2항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 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 조항을 위반한 LG에 벌금 2000만 원을 부과했다. 또 류중일 감독에게 1000만 원, 한혁수 1루코치와 유지현 3루코치에게 100만 원 벌금을 내렸다. 총합 5000만 원의 제재금. 이는 KBO 역사상 공동 최다 벌금이었다.

<설문 참가자 50명>

◆구단 30명=김태룡 단장, 김태형 감독, 유희관(이상 두산), 손차훈 단장, 염경엽 감독, 김강민(이상 SK), 김치현 단장, 손혁 감독, 이지영(이상 키움), 차명석 단장, 류중일 감독, 유지현 코치(이상 LG), 김종문 단장, 이동욱 감독, 노진혁(이상 NC), 이숭용 단장, 이강철 감독, 전유수(이상 kt), 조계현 단장, 김종국 코치, 진갑용 코치(이상 KIA), 허삼영 감독, 최태원 코치, 임현준(이상 삼성), 정민철 단장, 한용덕 감독, 이성열(이상 한화), 성민규 단장, 허문회 감독, 김동한(이상 롯데)

◆전 감독 4명=김시진 김용희 김재박 조범현

◆해설위원 10명=김경기 김재현 민훈기 박재홍 서용빈 안치용 양준혁 이종열 장성호 허구연

◆KBO 6명=류대환 사무총장, 정금조 운영본부장, 박근찬 운영팀장, 김풍기 심판위원장, 김제원 기록위원장, 이종훈 기록팀장


이처럼 KBO리그에선 사인 훔치기와 관련된 논란이 빈번히 발생했다. 물론 이와 관련된 의견은 상반된다.

스포티비뉴스가 야구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사인을 훔친 쪽의 잘못이 더욱 크다는 의견이 70%(35명)로 주를 이뤘지만, 뺏긴 쪽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견해도 16%(8명)로 나왔고, 기타 의견으로도 이를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전자기기를 활용한 사인 훔치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훔친 쪽의 잘못'으로 판단했지만, 전자기기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사인을 들킨 쪽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재발 방지라는 차원을 놓고는 하나를 이뤘다. 야구인들은 “메이저릭에서 발생한 사태는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갈수록 전자기기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야구인들 스스로가 스포츠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이번 사건은 KBO리그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KBO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덕아웃 내 전자기기 반입을 놓고도 엄중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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