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프로농구(NBA) 역대 최고 슈팅가드 가운데 한 명인 코비 브라이언트가 숨을 거뒀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미국프로농구(NBA) 전설적인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41)가 사망했다.

27일(이하 한국 시간)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에서 헬기가 추락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실은 트위터에서 이번 사고로 코비를 포함한 총 5명이 사망했으며 생존자는 없다고 발표했다.

코비는 1978년 8월 2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이름이 독특하다. NBA 선수 출신인 아버지 조 브라이언트는 식당에서 와규 스테이크를 먹은 뒤 코비(KOBE)란 이름을 지었다. 와규가 일본 고베(KOBE) 지역 특산품인 점을 착안해 아들에게 독특한 이름을 선물했다.

조는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프로 농구 선수로 뛰었다. 코비 역시 아버지를 따라 6살 때부터 8년간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덕분에 유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코비는 과거 CNN과 인터뷰에서 "(유년 시절) 유럽 생활은 내가 축구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우울한 면도 있었다. (이탈리아는) 인종차별이 상당히 심했다. 어렸을 때부터 심심찮게 차별적인 언행을 목격했다"며 이탈리아에서 이방인 생활 음과 양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종차별 경험은 '소년 코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CNN 앤디 스콜스 기자는 "20년 가까운 선수생활 동안 코비에게서 엿보인 성장을 향한 집념, 실력에의 의지는 (이탈리아에서) 경험이 큰 역할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비 또한 "부모님은 늘 내게 강조하셨다. 어떤 종류의 개인, 집단, 경험을 마주하더라도 그에 맞춰 행동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치셨다. NBA에서 뛰면서 다양한 변수를 맞닥뜨릴 때마다 유럽에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브라이언트는 펜실베이니아주 로워매리언 고교에 진학했다. 3년 동안 기록이란 기록은 모두 갈아치웠다. 평균 30.8득점 12리바운드 6.5어시스트 4스틸을 수확했다. 발군의 기량으로 팀 성적도 월등히 이끌었다. 

코비 재학 기간 로워매리언 고교가 거둔 승수는 무려 77승(13패)에 달했다.

언론은 일찌감치 코비를 주목했다. 198cm 키와 슈팅가드 포지션, 넘치는 승리욕과 화려한 테크닉 등은 그에게 '포스트 조던' 수식어를 안겼다.

당시만 해도 고교생 드래프트 신청은 흔치 않았다. 코비보다 1년 앞서 케빈 가넷이 1995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호명되긴 했으나 분위기는 '케빈 맥헤일의 깜짝 지명'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코비는 전체 13순위로 샬럿 호네츠 지명을 받았고 이후 곧바로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됐다. 코비 잠재성을 높이 평가한 레이커스 수뇌부가 주전 센터 블라디 디박을 매물로 내놓을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코비는 20시즌 동안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올스타 선정 18회와 득점왕 2회, 5개의 우승 반지와 올-NBA 팀 15회 선정, 정규시즌 MVP 1회 등 개인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었다. 통산 득점 33,643점도 역대 4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CNN은 "코비의 눈부신 미소는 나이키 신발부터 맥도날드 햄버거에 이르기까지 (구매욕 증진에) 영향을 안 미치는 곳이 없었다. 코트 위는 물론 밖에서도 대단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다. 대중은 그를 위대한 농구 선수로, 또 출중한 이 시대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슈팅가드 죽음을 애도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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