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 증세로 활동을 중단한 트와이스 미나(왼쪽 위부터), 이달의소녀 하슬, 오마이걸 지호, 강다니엘(왼쪽 아래부터), 세븐틴 에스쿱스, 몬스타엑스 주헌.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1. 해외공연을 위해 비행기를 탑승한 아이돌 가수 A. 한창 비행 중에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식은땀을 흘린다. 점점 호흡이 가빠지면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악화된다. 깜짝 놀란 주변 사람들이 달려들어 몸을 주무르고 냉수를 마시게 한다. 말을 계속 시키면서 호흡을 진정시키고, 안정을 찾도록 한다. A는 갇혀 있는 공간이 두렵다. 일면식 없는 사람과 뒤섞여 있는 것도 공포스러운 감정을 만든다.

#2. 방송 무대를 앞둔 한 아이돌 그룹 대기실. 갑자기 멤버 B가 울음을 터트린다. B는 어쩔 줄 몰라하는 듯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사방을 살핀다. 대기실 안을 왔다갔다 하다가 털석 주저앉고 만다. 그리고 또 펑펑 눈물을 흘린다. 조용히 있던 B의 돌발 행동에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갑자기 왜 저러지? 꾀병이라도 부리는 건가'. B는 대기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자신을 향한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호흡 곤란까지 만든다.

두 사례에 등장하는 A와 B는 최근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감정기복에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며, 폐소공포증, 우울증 증세를 보인 이들이다. 

최근 여러 아이돌 스타들이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활동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9년 하반기에만 트와이스 미나, 우주소녀 다원, 세븐틴 에스쿱스, 오마이걸 지호, 몬스타엑스 주헌, 강다니엘, 이달의 소녀 하슬, 스트레이키즈 한 등 K팝 대표 아이돌 스타들이 지속적인 불안 증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불안장애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 질환을 통칭한다. 지나친 불안으로 교감신경이 흥분돼 두통, 심장 박동 증가, 호흡수 증가, 위장관계 이상 증상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범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특정 공포증, 분리불안 장애, 선택적 함구증 등이 포함된다<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소유. 출처ㅣJTBC '아는형님' 방송화면 캡처

◆악플과 스토킹, 몰카 등 범죄로 변질된 팬덤이 주 원인 꼽혀

K팝이 전 세계인들을 사로잡는 주류 문화로 떠오르고,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면엔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1세대 아이돌, 2004년대 전후 데뷔한 2세대 한류 스타들이 활동할 당시엔 활동 중단이나 멤버 탈퇴는 엄청난 이슈가 될 만큼 '대형 사건'이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돌 그룹에는 불안장애 증세로 활동을 중단한 멤버가 없는 경우가 드물고, 심지어 팀을 탈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불안장애로 인한 활동중단 사례가 최근 들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요 관계자들은 우선 악성 댓글(이하 악플)을 여러 원인의 첫 번째로 꼽는다. 온라인 상에서 접한 악플이 뇌리에 쌓이고,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점차 커지면서 불안장애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 여론이 점차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개인 및 팀 SNS 계정을 갖게 된 아이돌이 악플에 노출되는 빈도와 절대량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이렇게 쏟아지는 악플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웬만큼 단련이 된 강심장도 '심하다'고 느낄 정도의 표현들이 난무한다. 악플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는 스타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댓글을 보지 마라'는 충고는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다. 1000개의 댓글 중 한 개의 악플로 크게 충격을 받더라도 댓글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연예인은 태생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곧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댓글을 모두 읽는다. 대중의 반응도 궁금하고, 자신의 활동을 모니터링을 할 수 있고, 때론 에너지를 얻는 동력원이기도 하다. 그룹 씨스타 출신 소유는 과거 한 방송을 통해 "댓글이 3000개면 3000개를 다 읽는다. 다 기억난다. 악플은 펑펑 울면서 극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유명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관계자는 "아이돌을 향한 대중의 도덕적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 요즘 아이돌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성인인데도 국내 정서상 음주나 흡연만 해도 난리가 나고, 해외 스타들과는 다르게 욕도 할 수 없다. 참아도 병이 나고, 고통을 호소해도 댓글로 비난을 받는다. 옆에서 지켜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 나연 ⓒ곽혜미 기자

비뚤어지고 변질된 팬 문화도 아이돌 가수들이 불안장애를 얻게 되는 큰 요인으로 꼽힌다. K팝과 함께 K팝 팬덤 문화까지 전 세계에 '수출'될 정도로 팬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비뚤어진 팬심'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들도 많아졌다. 스타를 향한 스토킹이나 몰래카메라, 개인정보 유출 및 거래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초기 아이돌 팬들은 공개방송 방청을 비롯해 기획사나 숙소 앞에 줄지어 기다리는 일이 일반화된 응원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소수 팬의 일탈 수준이던 스토킹 등 범죄행위가 최근에는 '사생팬'(사생활을 포기하고 스타의 모든 일정을 쫓아다니는 극성팬)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아이돌의 관심을 끌기 위한 욕설과 폭언, 사진을 찍기 위해 벌어지는 과격한 행동, 특정 연예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의 지속적인 악플과 유언비어 양성, 여권번호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유출 및 공유, 24시간 (몰래)카메라에 노출되고 있다는 공포감 등이 스타들을 괴롭힌다.

최근에는 트와이스 나연의 스토킹 피해 사실이 알려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럽의 한 스토커가 나연의 동선을 따라 비행기에 함께 탑승해 접근을 시도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연은 극심한 공포감을 호소했고, 소속사는 수사기관에 해당 스토커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한 유명 보이그룹 기획사 관계자는 "사생들의 행동이 상상 초월이다. 해외 투어 일정에 비행기를 따라 탑승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호텔도 한 층을 통째로 빌려놓지 않으면 팬들이 옆방에서 나타난다. 요새는 숙소가 들여다보이는 맞은 편에 집을 구하거나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24시간 돌리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활동도 한 요인

K팝 시장의 확장과 함께 아이돌이 감당해야 하는 활동 범위가 확장됐다는 점도 아이돌이 불안장애를 갖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시장이 주 무대였던 초기 아이돌과는 달리 요즘아이돌은 2~3개월마다 새 음반을 낼 만큼 컴백 주기가 짧아졌을 뿐 아니라 해외투어 반경도 넓어졌다. 일명 '원톱' 아이돌들은 365일 컴백 체제다. 컴백 활동을 하는 동시에 다음 음반 녹음을 진행할 정도로 쉴 틈 없는 스케줄이 이어진다.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하는 '자체제작 아이돌'의 경우 잠 잘 시간은 더더욱 줄어든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어린 나이의 아이돌들이 소화하기엔 벅찬 스케일의 일정을 감당해야 한다.

아이돌의 평균 연령은 점차 어려지고 있다. 연습생 기간까지 감안하면 더 어린 나이에 연예 활동을 시작하는 추세다. 현재 현역으로 활동중인 최연소 아이돌은 2018년 데뷔한 아이즈원 장원영(2004년생), 2019년 데뷔한 로켓펀치 다현(2005년생) 등이다. 또한 1997년생인 트와이스 지효는 JYP엔터테인먼트에 2005년에 입사해 연습생 기간만 10년을 거쳤다.

▲ 아이즈원 장원영 ⓒ곽혜미 기자

지난 2018년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획업 분야 소속 연습생의 전체 인력 규모는 1440명으로 2014년 대비 240명 증가했다. 특히 만 13세에서 15세 연습생은 83명에서 118명으로 35명 증가했고, 만 16세에서 18세 연습생은 231명에서 529명으로 무려 298명 증가했다. 반면 만 19세 이상 연습생은 853명에서 775명으로 78명이 줄었다. 점차 나이 어린 연습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지하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사회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고 인기를 얻는다 해도, 사회인이자 유명인으로서 겪는 크고 작은 리스크를 감당하기엔 아이돌은 여전히 유약한 존재일 가능성도 크다.

◆활동중단, 소속감 높여주는 전화위복 되기도 

정신과 질환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도 주목해볼 부분이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생소한 질병이었던 공황장애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여러 연예인들이 사례를 털어놓으며 사람들의 이해도와 공감도가 높아졌다. 공황장애 및 불안장애로 인한 활동 중단이 유난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에서 밝은 에너지와 웃음을 주는 존재로 사랑받는 만큼 정신적 질환을 고백하기 어려운 측면이 강했다. 최근 들어서는 아이돌의 말 못할 고충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마음의 병'에 대한 팬들의 위로와 응원이 이어졌고, 회복기를 거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응원이 더해지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재충전을 선택하는 아이돌이 늘기 시작했다.

활동 중단 경험이 있는 아이돌을 보유한 한 기획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휴식기가 탈퇴의 수순이 됐던 경우가 많아 팬들이 불안해했지만, 잘 쉬고 극복해서 팀으로 돌아오는 가수들이 늘면서 팬들의 걱정도 조금은 덜게 된 것 같다. 휴식기 동안 제3자의 입장에서 소속 팀을 바라보게 된 멤버가 팀에 대한 애정은 물론 활동 의욕이 더 커져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 휴식기를 거쳐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한 강다니엘.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bestest@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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