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수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 팀 중심이다. 3~4년 전부터 쭉 핵심 노릇을 맡아왔다.
ST 포커스 ③ FIBA가 찜한 떡잎에서 국보급 센터로…"도쿄행 간절해요"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박지수(22, 청주 KB국민은행 스타즈)는 걸물이다.

국보급 센터다. 박신자-박찬숙-정은순-신정자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농구 센터 계보를 잇는 선수다.

키 198cm에 이르는 신체조건과 빼어난 블록슛, 양손 모두 슛을 올릴 수 있는 기본기를 지녔다.

국제농구연맹(FIBA)도 인정했다. FIBA는 지난 4일(이하 한국 시간) 2020년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B조에서 지켜봐야 할 선수 5인에 박지수를 뽑았다.

박지수는 4년 전 아픔을 털어내려 한다. 2016년 6월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아픔을 세르비아에서 만회하고자 한다.

"성인이 된 뒤 올림픽 무대를 향한 갈망이 커졌다. 도쿄 올림픽 진출에 올인하겠다. 4년 8년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현실, 지금 이 기회에 충실하겠다”며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될성부른 떡잎…초4 때 이미 160cm

화서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두 살 터울인 오빠 박준혁(23,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을 따라 자연스레 농구공을 쥐었다.

집안이 '운동 집안'이다. 아버지가 농구대잔치 시절 명 센터로 이름을 알린 박상관(51) 현 분당경영고 감독이다. 어머니는 배구선수로 청소년 대표까지 지낸 이수경(52) 씨. 유전자는 타고났다.

오빠와 달리 농구를 시작한 계기가 단순했다. 살을 빼고 건강 유지가 주 목적이었다. 하나 '체육인 피'가 박지수에게 흘렀다. 운동선수로서 승리욕이나 신체조건은 오빠보다 더 뛰어났다.

큰 기대 없이 입문한 농구. 박지수는 떡잎 기질을 유감없이 뽐냈다. 우선 키 크는 속도가 놀라웠다. 4학년 때 이미 오빠와 같은 160cm까지 성장했다. 체격 조건이 워낙 빼어나 상급생 언니와 비슷한 연습량을 소화해도 끄덕없었다.

그래서 성장세가 가팔랐다. 농구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코트를 밟았다. 농구 선수로서 신장과 재능, 마인드 모두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위기론 속에 핀 희망

8년 전 여름. 한국 여자농구 관계자는 너나 할 거 없이 '위기'를 말했다.

2012년 7월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오랜 기간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에 51-79로 완패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프로 리그도 삐걱댔다. 6개 구단으로 운영되던 WKBL은 신세계 쿨캣이 팀 해체를 선언하면서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가뜩이나 저변이 약한 여자농구 위기론을 부채질했다.

▲ 한국 여자농구 센터 계보에 이름을 올린 박지수(왼쪽)와 박찬숙 ⓒ 한희재 기자
호걸은 혼란기에 고개를 든다. 청솔중 2학년생 박지수가 그랬다. 모두가 위기를 말해도 '샛별' 박지수를 말할 때 얼굴은 활짝 폈다. "10년에 한 명 나올까 싶은 대형 센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플레이로도 증명했다. 박지수는 2012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17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눈부신 잠재성을 보였다. 국적이 다른 고등학생 언니들과도 당당히 맞섰다.

대회 7경기에서 평균 9점 8.1리바운드를 챙겼다. 백미는 림 보호 능력. 경기당 블록슛이 무려 3.9개에 달했다.

블록슛 27개로 대회 1위. 공동 2위(14개)보다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림 프로텍터로서 흠 잡을 데 없는 경기력을 보였다.

출전 시간이 24분에 불과했다. 이 점이 박지수가 지닌 재능을 더 돋보이게 했다. 짧게 짧게 코트를 밟으면서 적게는 한 살 많게는 세 살이나 많은 언니들과 겨뤄 일궈낸 숫자. "대단하다"는 호평을 들을 만했다.

당시 박지수를 향해 "공 잡으면 수비수 3명이 달려드는 센터" "고교 팀과 연습 경기 해도 박지수 덕에 청솔중이 이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낭설이 아니었다. 이 해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박지수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신없이 바빴다. 탁월한 운동 신경에 키 188cm를 자랑하는 열네 살 센터 박지수를 원하는 곳은 많았다. 같은 해 19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국가 대표로 뽑혔다.

이 대회서도 평균 13.2리바운드를 수확했다. 이 부문 1위. 한국 여자농구는 국제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귀한 센터 재능을 얻었다.

◆일찌감치 FIBA 눈에 포착…"믿기 어려운 16살"

주가는 꾸준히 올랐다. 분당경영고 진학 뒤에도 기량 상승은 멈추지 않았다. FIBA 레이더에 이때부터 포착됐다.

분당경영고 2학년 때인 2015년 2월. FIBA 홈페이지에 특집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한국의 10대 스타 박지수, 성년이 되다".

FIBA는 "16살 어린 나이에 터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유망주가 있다. 한국 빅맨 박지수다. (대표 팀 발탁과 출전) 사실만으로도 믿기 어려웠다. 더 놀라운 건 코트 위서 박지수가 보여 준 기량"이라고 적었다.

▲ 박지수는 "성인이 된 뒤 올림픽 무대가 간절해졌다"고 힘줘 말했다. ⓒ 한희재 기자
"단지 대표 팀에 이름만 올린 게 아니다. 팀 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경기당 평균 11점을 넣어 한국 대표 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특집 기사가 실리기 1년 전인 2014년 7월. 박지수는 만 15세 7개월에 성인 대표 팀에 뽑혔다. 한국 농구 역대 최연소 성인 국가 대표 기록.

유망주 경험 축적을 위한 발탁이 아니었다. 박지수는 대회 내내 중용됐다. 개중 벨라루스 전(15득점 6리바운드)과 쿠바 전(16득점 7리바운드)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박지수는 FIBA와 인터뷰에서 "영광스러웠다.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수준 높은 선수와 겨룰 수 있어 많이 배웠다"면서 "목표가 생겼다.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몸 밸런스를 잘 잡아야 (농구) 기술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회 경험으로) 깨달았다"고 밝혔다.

테크닉이 국내 어지간한 성인 빅맨보다 뛰어났다. 슛 거리가 길고 속공 가담에도 성실했다. 안정적인 풋워크와 골 밑에서 자리를 잡는 감각이 좋아 쉬운 득점도 곧잘 쌓았다. 긴 리치를 활용한 블록슛은 박지수 최대 장점.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박)지수는 머리가 좋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친다. 그 점이 가장 다르다"고 극찬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고교 졸업도 하지 않은 선수가) 쌓은 경험치를 보라.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선수들, 특히 2~3살 많은 언니와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 좋은 습관, 기량이 풍부하다. 성인 대표 팀에서도 무조건 통할 센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수는 2012년 열네 살 나이로 U-17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이듬해 U-19 세계선수권대회, 2014년에는 두 번째 U-17 세계선수권대회와 성인 세계선수권대회, 윌리엄존스컵까지 경험했다.

2015년에도 또 한번 U-19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다. 한결 원숙해진 기량을 뽐냈다. 대회 평균 10점 10.2리바운드 2.8어시스트 4블록슛을 거뒀다. 블록슛 1위, 리바운드 3위.

그 사이 사이에도 박지수는 U-16, U-18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차출됐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달리 말하면 고교 졸업 전에 이미 엄청난 커리어를 쌓은 셈이다. 말(言)로는 깨칠 수 없는 사소한 디테일을 몸으로 기억하게 됐다.

◆프로 입단 뒤에도 '펄펄'…역대 2번째 WNBA 진출

2016년 10월. 박지수는 KB스타즈 품에 안겼다. 2017년 W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안덕수 감독 부름을 받았다.

예상된 결과였다. 안 감독은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있구나 싶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박지수를 호명했다. 박지수 이름이 새겨진 15번 유니폼을 손수 꺼내 입혔다. 이어 큰절을 올렸다. 박지수 영입 기쁨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데뷔 첫해부터 눈부셨다. 박지수는 2017-2018시즌 35경기에 나서 평균 14.2점 12.9리바운드 3.3어시스트 2.5블록슛을 챙겼다.

그러자 미국에서 반응이 왔다. 2018년 4월 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W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직전 시즌 우승 팀인 미네소타 링스가 2라운드 5순위, 전체 17순위로 박지수를 지명했다.

미네소타는 드래프트 당일 박지수와 2라운드 12순위 카리아 로렌스 우선 협상권을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 넘겼다. 대신 라스베이거스가 3라운드 8순위로 지명한 질 바르타, 2019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

박지수는 물론 KB스타즈도 놀랐다. 선수가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호명됐다며 얼떨떨해 했다. 일단 박지수는 라스베이거스와 협상, KB스타즈와 조율을 통해 WNBA에서 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KB스타즈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박지수 WNBA행을 허락했다. 박지수는 캘리포니아주로 넘어갔다. 과거 시애틀 스톰에서 뛴 정선민 이후 한국 선수로는 2번째 WNBA 진출.

트레이닝 캠프에서 인상적인 기량으로 라스베이거스 빌 레임비어 감독 눈도장을 찍었다. 캠프 기간 블록슛 팀 내 1위, 득점과 야투율 2위를 기록하며 합격점을 받았다.

결국 2018년 5월 18일. 한국 선수로는 15년 만에 WNBA 개막전 12인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 첫해 무난한 성적을 거뒀다. 32경기에 나서 평균 2.8득점 3.3리바운드 0.6블록슛. 평균 출전 시간(13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이듬해 성적이 뚝 떨어졌다. 25경기 출전해 평균 0.8득점 1.1리바운드에 그쳤다.

한국은 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꿈꾸고 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스페인(6일), 영국(8일), 중국(9일) 순으로 도쿄 올림픽 B조 예선을 치른다. 박지수는 대표 팀 중심이다. 3~4년 전부터 공수 핵심 노릇을 맡아왔다. 최하위만 하지 않으면 도쿄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상황. "올림픽 무대가 간절하다"는 박지수 바람대로 한국 여자농구가 동유럽에서 부활 청신호를 켤 수 있을지 팬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